[세계의역사A]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관련 자료 3건을 선정하고, 그 자료를 근거로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에 대한 비판적이되 주체적인 논평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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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의역사A]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관련 자료 3건을 선정하고, 그 자료를 근거로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에 대한 비판적이되 주체적인 논평을 작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간디의 <소금 사티아그라하(소금행진)>를 통해 바라본 비폭력불복종 운동에 대한 비판적이되 주체적인 논평
  1) <소금 사티아그라하>의 경과
  2) 비폭력이라기 보다는 공격적 저항인 <소금 사티아그라하>
  
 2.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에 영향을 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과연 옳은 것인가?> 와 관련한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에 대한 비판적이되 주체적인 논평
  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2)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을 통해 본 비폭력불족종 운동의 비판
  
 3.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운동을 지향하는 <촛불집회>에 대한 비판적이되 주체적인 논평
  1)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운동을 지향하는 <촛불집회>의 성격
  2) 비폭력불복종운동을 지향하는 <촛불집회>의 논평


Ⅲ. 결 론


[참고 자료]

본문내용

항하는 모든 시위대는 그것이 폭력적이든 비폭력적이든 오직 목을 취해야 할 싸움터의 병사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후의 독립운동은 김구 선생을 주축으로 한 임시정부를 통해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일제와의 무장투쟁이 그 내용이었다.
그러면, 최근의 촛불 시위대 앞에 있는 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친일파를 옹호하고, 군사정권에 아부하면서 부와 출세의 발판을 쌓은 이들은 영국과 일본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사고를 하는 이들일까?
4.19와 5.18 그리고 6.10 민주항쟁으로 부터 그 이후에도 우리들이 관심 없었을 뿐 민주주의를 향하는 길에는 수많은 시민들의 꽃다운 희생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절에도 노동자라는 무언가 꺼림칙한 이름을 내세우고 있었기에 거부감이 들었겠지만, 결코 북한이 내려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요구하기 위해서 싸워온 시민들의 피가 산업현장과 거리 곳곳에서 뿌려지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추상적인 문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실제 하는 현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촛불시위대는 단순히 대통령이라는 개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거대한 구시대의 역사적 실체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평화적인 집회를 시작했던 바로 그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배후세력, 불법, 좌파 등등의 모욕적인 험담과 음해와 같은 정치공세가 멈추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시민들의 간절한 요구에 대하여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하다가 마침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하겠다는 자신들만의 결정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기로 했던 것이다.
간혹 과거와 지금의 상황이 같지 않다고 주장하는 의견들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일제치하의 식민지 시절과 친일파들이 활발했던 자유당 시절,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군사정권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민주주의는 변화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뿌듯할지도 모르는 카드를 먼저 내밀어야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같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그 차이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같은 점은 모르고 있다.
광우병에 걸려 뇌가 반쯤 제 기능을 못하는 좀비들과 같이 민주주의를 이룩한 이들이 누구인지, 민주주의를 가로막은 이들은 또 누구인지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촛불은 비폭력불복종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과거의 쇠고기 협상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없다.
3.1운동과 같은 평화집회는 일본제국주의의 사생아들에게 과연 얼마나 영향을 줄 수가 있을까? 인도의 민족전체의 완전한 불복종 운동도 아닌 비록 소수라고 할지라도 반대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이루어지는 시위 역시 큰 효과를 줄 수 있을까?
과거에 구사대와 백골단에게 화염병과 보도블럭으로 대항한 민주투사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물론 이런 폭력시위를 절대로 두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경찰들이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진정한 민주주의를 찾는 길은 언제나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Ⅲ. 결 론
이상으로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관련 자료를 인터넷을 활용하여 3건을 선정하고, 그 자료를 근거로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에 대한 비판적이되 주체적인 논평을 작성하였다.
간디는 대표적인 비폭력의 아이콘이며, 평화로운 방법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냈으니 ‘목적 달성을 위한 폭력’이란 주제를 놓고 비교 대상으로 삼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간디는 인도인의 정신을 고양시킨 도덕적 이상향을 추구했다.
간디는 힌두교의 아힘사(불살생)에 바탕을 둔 비폭력 정신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공격적인 투쟁을 했다.
아무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명명된 영국이지만 3억 인도인을 직접 통치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소수의 영국인이 무력으로 억누르고는 있었지만, 사회 전반을 100% 좌지우지할 수는 결코 없었다. 그러므로 인도를 원활하게 지배하기 위해서는 인도인의 협력이 꼭 필요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복종과 같은 형태의 저항이 큰 효과를 발휘할 수가 있었다.
비폭력 불복종과 경제적 자립 운동은 인도인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 영국의 지배체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가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셈이다. 물론 폭력적 방법 밖에 몰랐던 당시의 인도인들 사이에서 비폭력 불복종이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가 있음을 일깨운 간디의 안목은 실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간디는 왜 비폭력 불복종을 주장했을까? 위에서 말했듯이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독립을 쟁취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전에서는 간디가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영국인의 양심(문화인으로서의 양식?)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란 말도 있었지만, 아마도 간디가 지닌 사상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을 한다. 힌두교의 아힘사(불살생)에 공감한 간디는 폭력은 결국 폭력을 낳을 뿐이며 진정한 정신 혁명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란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우연찮게 간디의 비폭력 노선은 인도의 독립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의 비폭력 사상이 독립이란 성과를 달성함으로써, 비폭력 노선으로도 목표를 달성할 수가 있다는 모델은 제시가 되었다.
물론 독립 이후 비폭력의 최종 목표인 인도인의 도덕적 정신 향상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참고 자료]
마하트마 간디, 박홍규 역, 간디 자서전(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 문예출판사, 2007
카트린 하네만, 김지선 역, 간디 폭력을 감싸안은 비폭력, 한겨레아이들, 2009
김종철,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녹색평론사, 2010
이옥순, 위대한 영혼 간디, 창작과비평사, 2000
앤드류 커크, 유강은 역, 시민 불복종(세계를 뒤흔든), 그린비, 2005
한국법철학회, 법치국가와 시민불복종, 법문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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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15
  • 저작시기2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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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34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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