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노무현이 만난 링컨 _ 노무현 전 대통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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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노무현이 만난 링컨 _ 노무현 전 대통령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청소년기의 스승들
젊은 날의 길 찾기
꿈꾸는 지방의원
영광과 그늘
혹독한 담금질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갈등이 전쟁으로
탄환으로 정권을 세울 수 없다
외교를 보는 눈
연방 통합과 노예해방
하나 된 미국으로

본문내용

다. 뿐만 아니라 남부지역 내에서도 노예의 반란행위가 없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출발점이 되었고 전술적으로도 연방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연방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노예들은 주인에게 버림받거나 갈 데가 없어 군 막사로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이들 해방된 노예들은 다시 남군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하지 않았고, 남군의 전력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세에 밀려 북부의 노예해방 반대론은 그 입지가 약화되었으며 노예해방은 역사의 필연으로 굳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1865년 1월 31일, 전국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헌법 제 13조가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노예해방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노예해방은 곧바로 백인과 흑인의 평등을 뜻하지는 않는다. 피부색이 다른 인종 간의 갈등과 반목은 미국 역사의 일부분으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링컨은 누구보다도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노예해방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필연적인 인종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링컨은 노예해방 선언의 포고를 기다리는 동안 몇몇 흑인 인사를 백악관에 초대해 이 문제를 상의하기도 했다.
하나 된 미국으로
링컨의 제청으로 연방 의회는 그랜트를 육군 소장에 임명했다. 도넬슨전투 이후에도 그랜트 장군은 동료 장교들에게서 따돌림 당하고 시기를 받았다. 그런 그랜트를 끝까지 지켜준 것은 바로 링컨이었다. 링컨은 주위에서 그랜트를 면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때마다 “그는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말로 변호했다. 링컨의 기대대로 그랜트는 빅스버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링컨은 비로소 장군다운 장군을 만났고 그에게 모든 작전과 임명권한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를 끝까지 믿고 지원했다. 링컨은 최대한 그랜트 장군의 요구에 따라주었다.
1864년 6월 7일, 링컨은 볼티모어에서 국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4년 전 링컨은 공화당 후보였다. 이제 그는 연방주의에 동의하는 민주당원들까지 포용하기 위해 국민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꿔 재선의 격전장을 헤쳐 나갔다. 링컨의 대통령 재도전은 연방의 고수냐, 아니면 남부 연합과 공존이냐를 가늠하는 미국역사상 중요한 대논쟁의 과정이었다. 동시에 노예문제와 남북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를 판가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링컨이 국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길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당내 파벌을 결속시켜야 했다. 당내 파벌을 결속시킨 후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링컨은 선거에 돌입했지만 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나아가 패배를 예상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기도 했다. 링컨은 전 국무위원들에게 백지서명을 요청했다. 링컨을 신뢰했던 장관들은 전원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서명했다. 선거 결과가 나온 후에 비로소 각료들에게 공개되었다. 내용은 민주당 후보 매클렐런에 대한 충성 서약이었다. 전쟁의 상황에서 비상대권을 휘두를 수 있던 링컨은 정권 재창출에 몰두하기보다 자신의 소임에 충실하면서 새로 선출될 대통령과 정부를 걱정했던 것이다. 전쟁 와중에서 협상론자인 매클렐런이 당선될 경우, 장관과 장군들이 그에게 협조하지 않거나 나아가 그를 공격하는 행위까지 예상되었기 때문에 국무위원 전원에게 대통령 당선자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미리 받았던 것이다. 선거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의사에 따라 임기 만료 이전에도 당선자의 정책을 받들겠다는 겸손한 권력자 링컨의 자세야말로 오늘날까지 미국 민주주의의 모범이자 뿌리가 되었다. 결국 링컨은 재선에 성공하였다.
링컨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국민에 의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남부 연합을 힘으로 깨부수지 못하면 미국은 영원히 분단된 채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다. 링컨은 신병을 보충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노력했다. 결국 미국의 남북전쟁은 연방군의 와이첼 장군이 선봉으로 리치먼드에 진격해서 남부 연합의 항복을 시청에서 받아냈다. 하지만 전쟁은 비록 끝이 났지만 상처는 너무나 크고 심했다.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었고, 국토는 황폐해졌다. 링컨은 이제 국가를 재건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터진 그날부터 줄곧 전쟁의 후유증을 해소할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 증오와 원방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의 국민으로 재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링컨은 당연히 이 과제를 해결하는 소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는 국민통합의 절대명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관용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승자의 아량이 절실하다는 것이 링컨의 생각이었다. 링컨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국가 재건계획과 대사면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재건 안은 어떠한 보복행위나 보상행위도 인정하지 않는 그야말로 관용의 정신을 밝힌 것이다. 강경파 공화당원이나 과격한 국민은 이러한 조치를 수긍하지 않았다. 링컨은 꿋꿋하게 강경론과 맞섰으며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링컨은 관용을 통한 국민 통합의 대의 앞에서 조금도 유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링컨은 선거를 목전에 두고도 관용을 통한 국민통합 방침을 철회하거나 약화시키지 않았다. 링컨은 자신의 신념을 국민의 마음속에 각인하기 위해 노력했고 국민통합을 통한 국가의 재건만이 미국의 미래를 약속한다는 사실을 호소했다. 국민통합당의 후보로 대통령에 재선된 링컨은 취임사에서 남부의 분리주의자를 응징하자고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남북전쟁을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대결로 보지도 않았다. 그는 차원 높은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화해와 관용으로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해결하자고 촉구했다.
링컨은 모처럼 전쟁 종식의 안도감에 빠졌다. 그날 저녁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그는 아내 메리와 함께 포드극장에 도착했다. 그때 발소리를 죽이고 귀빈실에 도착한 존 월크스 부스는 문을 살며시 열고 링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는 링컨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렇게 링컨은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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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24
  • 저작시기2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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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3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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