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근대민족 형성에 관한 시론 & 한국민족운동사론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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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럽 근대민족 형성에 관한 시론 & 한국민족운동사론 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유럽 근대민족형성에 관한 시론>
1. 민족형성이란 무엇인가?
2. 이론적측면 : 마르크스주의적 민족형성론
3. 역사적측면

<대한민국 앞의 네가지 길>
1. 주체적 역사인식
2. 대륙세
3. 해양세
4. 남북분단
5. 한반도 중립화론
6. 외세의존과 정치의식 부족

<일제통치의 민족사적 피해>
1. 20c 전반기의 정치사적 위치
2. 일본 식민통치가 준 정치사적 피해
3. 20c 전반기의 경제사적 위치
4. 일본 식민통치가 준 경제사적 피해
5. 결론

본문내용

등장한 러시아를 끌어 들임
명성황후 시해(조선의 친러시화를 막고자 함), 그러나 아관파천을 단행(친러시아적 정권)
대한 제국은 대륙세로서의 러시아의 강력한 영향권 속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음
3. 해양세에 예속되는 길
-일본은 문호개방을 강요하면서도 정치적인 진출로는 번번이 실패 & 경제적 침략도부진
일본은 러시아가 주도한 ‘3국간섭’에 의해, 한반도에 대한 세력 확장이 순조롭지 못함.
아직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도발할 국력이 업었으므로, 러시아의 한반도 독점을 협상만을 통해 저지.
영일동맹을 계기로 전쟁을 통해 오히려 그것을 독점하려는 방향으로 바뀜
미국역시 러시아의 한반도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가쓰라-태프트 밀약, 포츠머스 강화조약)
일본은 영국, 미국과 동맹체를 형성하고 외교적 경제적 일체를 함.
러일전쟁 후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또 따른 대륙세의 저지가 없는 한 이미 그 때부터 기정사실화 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님.
4. 남북으로 분단되는 길
-19c후반~20c초에 대륙세와 해양세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될 가능성이 있었음(둘이 어느정도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일본은 불안을 느낌. 그러나 전쟁을 도발할 국력이 없었음. 협상수준의 견제
그러던 중 일본이 먼저 한반도 분할론 제시. 그러나 러시아는 한반도 전체를 강력한 영향권 아래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므로 거절.
영일동맹과 미국의 조약 등으로 지원사격을 받은 일본이 공세적 성격으로 바뀜. 이번에는 러시아가 주춤하며 분할론을 제시. 일본은 러시아의 제의에 찬성하지 않고 전쟁을 도발. 승리 후 한반도를 식민지화.
-제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분단되었지만, 40여년 전에도 해양세와 대륙세의 세력균형을 위해 분단이 제기되었다는 점이 중요.
5. 중립지대화
-중립지대화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점으로 살려 국제 세력 간의 충돌을 해소하는 완충지대화, 중립지대화하는 길로 나아가 주권을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었음(광해군의 중립정책이라는 역사적 경험도 있었음)
-영국의 거문도 점령 후, 조선 주재 독일 부영사 부들러가 ‘한반도의 중립화론’을 제기
: 3국 사이의 국제 협약에 의한 한반도의 영세중립화가 바람직한 구상이라는 것.
-유길준의 ‘중립론’ : 중국의 제의에 의한 한반도의 중립화론을 주장(실질적 종속관계를 감
감안한 부분이다)
-하지만 중립화론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음
-중립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주민들이 수준 높은 정치 의식이 필요했지만, 오랜 전제주의와 사대주의적 지배체제의 영향으로 불가능.
6. 외세의존과 정치의식 부족
-대한민국은 가장 나쁜 길인 해양세에 의한 완전식민지화가 됨
-이유? why?
a. 외부적 - 영국, 미국의 지원사격을 받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점령
b. 내부적 - 지배층의 무능과 외세의존정책
국민의 낮은 정치의식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릴 수 없었던 국제정치 감각의 미숙성과 주체 성 결여)
04. 일제통치의 민족사적 피해
-식민지시대의 피해를 지적하는 목적
a. 일본제국주의의 잔악성을 공개
b.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해 온 역사적 사실을 강조
c. 하나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마련.
-민족사적 피해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통계적 수준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역사가 실제로 근대사회로의 진입을 방해했다는 더 높은 차원의 역사적 손실의 관점에서 봐야 함.
20c 전반기의 정치사적 위치
-국민주권체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지향하던 시기.
-독립협회의 공화주의론은 절대군주제에 대항하는 정치적 변화의 흐름이었음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화가 본격화되면서, 군주 주권, 국민주권을 가지기 이전에 국권 자체를 수호하려는 운동이 중심이 됨(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 운동이 왕정복고운동이 아닌 공화주의, 민주주의 운동 중심으로 발전한 것은 역사적 방향을 옳게 잡은 것이라고 가치 판단할 수 있다)
일본 식민통치가 준 정치사적 피해
a. 민주주의적 정치훈련을 받을 기회 박탈
-어떤 형태의 정치활동도 보장x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한적
-기회가 박탈된 것은 해방되었을 때 그 정치사적 위치를 대한제국 시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만드는 계기가 됨. (변형된 독재정치체제로 나아가게 만듦)
b. 민족분열 - 식민지 지배로 인한 근대적 정치훈련 미숙과 일본 측의 집요한 분열정책의 결과로 민족분열이 일어남
-좌우익연합에 의한 임시정부의 유지 불가능
-독립운동이 오히려 민족분단의 요인을 만드는 과정이 됨
20c 전반기 경제사적 위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음
-이제 막 상업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한 시기에, 보호무역주의가 적용되지 않은 외국자본주의의 유입은, 우리나라의 경제체제를 파탄으로 몰고감
-식산흥업정책이 제시됐지만 제약적
a. 전제주의 정치가 시민계급의 성장을 방해
b. 외세의 의존과 이권침탈로 민족자본의 성장이 어려움
-이런 상황에서도 도시에서는 일종의 산업자본가가 성장했고, 농촌에서는 일부의 자소작 및 자작 상농층이 성장. 이 모습은 본격적인 외세 침략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유지될 성장조짐이 있었음. but 러일전쟁에서 일보의 승리로 한반도의 식민지화(민족자본의 성장가능성이 소멸!)
일본 식민통치가 준 경제사적 피해
-일본은 민족 부르주아의 성장을 방해 : 식민지지배와 상충될 것이고, 민족 부르주아는 독립운동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
-일본의 성장저해정책
a. 산업 부르주아지 방해 -화폐 정리 사업 : 산업자본가적 요소 방해
-회사령 : 산업자본화 저지 (일부 남은 기업은 민족자본적 성격
을 잃고 일제에 예속화)
b. 농촌 부르주아지 방해 - 토지조사 사업 : 자소작농 상층부 제거, 대부분을 소작인화, 지주권 강화. 식민지 지주제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
-따라서 한국자본주의가 식민지적 독소만을 안은 채 자본이 전무한 상태에서 광복을 맞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결론 - 민족사적 피해를 주체적인 역사 이해태도의 관점에서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 앞으로 민족사가 지향해야 할 역사적인 방향을 찾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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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4.25
  • 저작시기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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