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펜팔 퇴계이황과 고봉 기대승 (사단칠정론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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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의 펜팔 퇴계이황과 고봉 기대승 (사단칠정론정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사단칠정론이란?

2.사단칠정론의 기원

3.사단칠정론의 시대적 배경

4.사단칠정 논변의 발단

5.사단칠정논변의 전개

6.퇴계의 사단칠정론 해석

7.퇴계의 사단칠정론 해석에 고봉이 반대하는 이유

8.논변의 최후: 휴전인가? 타협인가?

본문내용

있다고 한다.
7.퇴계의 사단칠정론 해석에 고봉이 반대하는 이유
4단은 7정에 포함된다.
고봉은 퇴계에게 질의하고 회답하는 서신에서 “7정 외에 따로 4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는 말을 누차 강조한다. ‘4단’으로 불리는 정이나 ‘7정’으로 불리는 정이나 모두 모종의 외물에 대한 심기의 지각이므로 결코 본질적으로 전혀 달리하는 두 부류의 정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인간의 선은 인간이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명령 받은 본래의 그대로인 반면에, 악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이 작용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과 또는 불급이므로, 이른바 ‘4단’과 ‘7정’이라 불리는 것들이 처음부터 두 가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근래의 학자들이 맹자가 선한 것들만을 가려내어 짚어준 의도를 잘 살피지 못한 채 흔히들 4단과 7정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여 논의하곤 하는데, 저는 이것을 옳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집성,233)
고봉의 이러한 발언은 ‘4단’이라 불리는 정과 ‘7정’이라 불리는 정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사상을 충분히 확인시켜 준다.
8.논변의 최후: 휴전인가? 타협인가?
퇴계는 도덕우선주의의 신념을 결코 양보할 수 없었다. 한편, 고봉은 주자학의 정 이론에 바추어 볼때 퇴계의 사칠 해석은 옳지 않기 때문에 퇴계가 세우려는 사단칠정론의 이기분속설에 동의할 수 없었다. 기차의 철로처럼 한없이 이어지는 두 견해의 평행선은 8년에 걸친 논변이 종결되는 시점까지 계속된다.
논변의 말미에 고봉은 사단칠정후설과 사단칠정총론 이라는 제목의 길지 않은 서신을 보내고, 이에 퇴계도 답기명언, 중답기명언 이라는 제목의 역시 길지 않은 서신을 작성한다. 이 서신들에는 퇴계와 고봉 모두 이전과는 좀 다른 자세를 보여 상대방의 주장을 상당히 수긍하여 서술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고봉의 유화적 발언을 두고, 예컨대 퇴계를 추존하는 쪽에서는 “고봉이 최후에는 우리 퇴계 선생님께 승복했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 오늘날 객관적인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논변 말미에 고봉이 퇴계와 타협 . 절충하는 듯한 변론 태도를 보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퇴계의 사칠 해석을 전적으로 긍정하는 것 같이도 보이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결코 고봉이 ‘자기의 이론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도덕적 본성의 발로인 도덕적 자아의 자아실현과 관련하여 미처 실천의 측면을 깊이 고려하지 못했는데 이 점에 나아가 볼 때에는 퇴계의 사단칠정 해석을 수긍할수 있다는 관점이었던 것”으로 보는 차이가 있다.
이상은 선생이, 논변의 최후에 고봉이 퇴계의 사단칠정 해석을 일부 긍정하여 말한 것을 두고 “받아들이는 이유를 그(고봉)는 이론의 타당성에 두는 것이 아니라 수양 . 실천의 필요성에 둔다.”고 한 지적은 대단히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퇴계의 해석이 수양 . 실천의 공부론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는 것을 고봉이 알아차렸다면, 이후 고봉의 사단칠정 이해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는 없다.
그러나, 설령 퇴계와의 사칠 논변 이후 고봉의 사단칠정 이해에 모종의 변동이 있었다. 할지라도, 사단칠정 해석의 이론 면에서 고봉의 견해가 근본적으로 수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퇴계와 고봉간의 평행선은 표면상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일 뿐이지, 내용상 좁혀진 것은 없다. 더 이상 논의해봤자 진보된 내용이 있을 수 없어 ‘휴전’을 한 것이지, 각자 상대방의 주장을 일부 긍정하여 자신의 견해를 다소 수정하는 ‘타협’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선조를 뒤흔든 논쟁-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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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28
  • 저작시기2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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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49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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