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독후감(기록을 남기지 않은 자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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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독후감(기록을 남기지 않은 자의 비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았다. 오늘 날 그에 관한 기록은 매우 희소하다. 그가 임진해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올렸다는 숨 낳은 전공 장계를 비롯해서 뒷날 그의 일대기를 상세히 썼다는 이선의 소저인「원균전」등이 모두 오늘에 전하지 않고 있으니, 그에 고나한 정확한 평가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사실에 입각한 민족사를 편찬하는 데도 매우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진실이란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며, 가식이란 어느 시기엔가 벗겨지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다. 비록 원균에 관해 종합적으로 정리된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사관이 쓴『선조실록』이 남아있고, 그것과 좋은 대비가 되는『선조수정실록』이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는 적지 않은 기록이 남아 있으니, 그것들을 한자리에 병렬시켜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보면 그 진상을 가려내는데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분석, 조명하여 본 결과 다음과 같은 논리적 귀결을 얻게 되었다.
첫째, 원균은 임진해전 이전에 북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 명장이었으며, 그들 오랑캐를 토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중략)
둘째, 외적의 침공 직전인 임진년에 경상우수사로 부임하였으니 미처 군비를 갖출 겨를도 없이 적의 급습을 받았다.(중략)
셋째, 선조 27년에 육장으로 전임했다가 선조 30년에 경상도우수사 겸 경상도통제사로 부임했다. 그해 3월에 이순신이 하옥되자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전 수군을 지휘했다.(중략)
넷째, 원균이 비록 패전을 했으나 뒷날 논공행상에서 그가 임진해전에서 세운 혁혁하였던 전공과, 패전이 그가 전적으로 책임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 이순신, 권율과 함께 선무 일등공신으로 책록 되었다.
이와 같은 원균의 전공은 마땅히 기리 청사에 빛남직도 하거니와 오늘날 그는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임진란이 종식 된 뒤 선조 34년부터 3년여에 걸쳐 모든 전공기록을 검토하여 결정한 일동공신 원균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마치 국가에 해독을 끼친 악장이나 겁장등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략) 선조수정실록은 우선 그 형식면에서 실록으러서는 가치가 없는 기록이다.
였는지가 나온다. 다음은 지은이의 결론이다.
나는 선조 수정실록이 있는지도 몰랐다. 실록을 수정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존경하는 이순신의 이미지가 사실은 그리 멋지지가 않다는 것과, 이순신과 대립을 이루던 원균은 알고 보니 다만 성격이 불같고 괄괄할 뿐, 훌륭한 무장이었다는 것 과 더불어 기록의 중요성 사료의 중요성을 더더욱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무엇이든 한쪽면만 보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쪽 면만 보았을 때,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오류를 다시 고치려면 더더욱 힘이 들고 다른 한쪽에서 억울하고 기분이 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때 국사 선생님께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역사는 살아있는 자의 것”과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라는 것이 그것인데, 만일 지금 원균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아마 이순신이 신격추앙까지는 받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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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3.06.04
  • 저작시기201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0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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