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연구- 인물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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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연구- 인물대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연구- 인물대비
1.1. 소개의 글
1.2. 서론
1.3. 선조실록의 정확성
1.4. 선조수정실록
1.5. 결론과 평가

<표 차례>
표 1 원균이 등장하는 난중일기의 일부

본문내용

로 최선을 다해 싸웠다. 둘째, 후배인 이순신이 상관으로 임명되자 반발하였다. 셋째, 이순신이 투옥된 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넷째,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도원수 권율의 명령을 받아 재침하는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다섯째, 선조의 호의로 선무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
두사람다 맹장이고,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장수였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조정의 부산포 공격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부산포로 가는 길목 곳곳마다 이순신에게 패한 왜군이 성을 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군 선봉장 고니시가 평양에서 한 발짝도 더 못나간 것도 이순신 때문이다. 부산포가 공격당했을 때 왜군은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보급 기지가 조선 수군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한 것이었다. 왜군은 서해로 진출하여 평양에서 합류는 불가능 해졌고 그나마 있는 보급기지를 지켜야 하는, 즉 공세에서 수세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격이 없었다면 선조는 정말 요동 땅으로 넘어가야 했을 것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차는 사고방식에서 극명하게 갈라진다. 죽는 길임을 알고도 고뇌하며 조선의 유일한 함대를 지켜내는 장수와, 패전의 길임을 알고 또 거부도 했지만 결국 죽지 못하고 조정의 명령이라고 가버린 장수이다.
종합해 보면 원균은 불패의 신장은 아니지만 공적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한 사람의 용감한 장수이자 왜적에 맞서 싸워 목숨을 바친 공신일 뿐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그야말로 민족의 영웅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순신이 영웅이 되기 위해 꼭 원균이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등식도 성립이 될 수 있다.
첨고문헌
◈ 장학근, '충무공 이순신의 짧은 생애, 빛나는 삶(I)', "海洋戰略", 2002, 제114호(2002. 3), pp.129-160.
◈ 장학근, '충무공 이순신의 짧은 생애, 빛나는 삶(Ⅱ)', "海洋戰略", 2002, 제115호(2002. 6), pp.135-169.
◈ 정두희, '이순신(李舜臣) : 개인의 아픔을 넘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장군', "한국사 시민강좌", 2002, 제30집 (2002. 2), pp.109-123.
◈ 최영호, '문화사적 관점에서 '이순신학'의 정립을 위한 제언: 공정의 원리와 보편적 정신 가치를 중심으로', "충무공 탄신 제457주년 이순신연구소, 제4회 학술대회 논문집", 2002, pp.13-28.
키 원균, 임진왜란, 이순신, 이순신독후감, 난중일기
역사학 700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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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6.09.24
  • 저작시기2006.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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