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학인가 - 베리-트레벨리언 논쟁, 계량사학, P. Bagby의 역사 과학 유사점, 차이점, E. H. Carr의 역사 과학성 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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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는 과학인가 - 베리-트레벨리언 논쟁, 계량사학, P. Bagby의 역사 과학 유사점, 차이점, E. H. Carr의 역사 과학성 논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베리-트레벨리언 논쟁
3. 계량사학(計量史學:cliometrics)
4. 역사는 과학인가 ①
5. 역사는 과학인가 ②
6. 역사는 과학인가 ③
7. 맺음말

본문내용

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료는 과거 사실을 전해주는 데 있어 얼마만큼 결함과 오류가 있을까? 정말로 객관ㅈㄱ인 사실에 접근하여 역사의 과학성을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일까? 역사의 과학성에 대한 반박을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
백잔신라구시속민유래조공이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신]라이위신민
위의 글은 「광개토대왕비문(廣開土大王碑文)」의 일부로 32자로 이루어져있다. 광개토대왕 일대의 무훈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로 된 글자는 판독이 불가능한 문자이다. 일단 인용비문 앞부분 12자는 뜻이 분명한 문자이다. ‘백잔과 신라는 본디 속민이었으므로 원래 조공을 했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비문의 뒷부분 20자는 몇몇 문자의 판독 불가능으로 해석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해석이 다양하다.
① 그런데 왜는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과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② 그리하여 왜는 일찍이 신묘년에 [고구려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격파했다. 백잔이 [왜와 연결해] 신라를 [침략했다. 신라는 고구려의] 신민이었기에 [영락 6년 병신년에 왕이 군대를 이끌고 백잔을 토벌했다].
③ 그리하여 왜가 신묘년에 [고구려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백잔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④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고구려에] 오니, [고구려는] 바다를 건너가 [왜를] 격파했다. 백잔이 신라를 [침략해] 신민으로 삼았다.
⑤ 그런데 왜를 신묘년 이래로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격파했다. 백잔은 [왜와 연결해] 신라를 침략해 신민으로 삼았기에, (영락6년 병신년에 오아이 군대를 이끌고 백잔을 토벌했다.
위의 해석들을 보면, 비문은 동일한데 해석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를 예속했다는 뜻도 되고, 고구려가 일본을 쳐부수었다는 뜻도 된다. 사료해석은 이렇듯 극과 극을 달리는 모습이다. 20개의 글자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4세기 말과 5세기경 고구려 · 백제 · 신라 · 왜 네 나라의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달라진다. 그때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크고 작은 전투와 정치 · 외교 등 엄청난 일들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게다가 이 부분은 1880년 가을,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주도하에 신묘년 기사를 포함해 모두 25자를 변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정부는 비문 변조를 은폐하기 위해 비면에 석회를 발랐다고 한다. 따라서 그 이후의 탁본은 모두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료는 그 자체로 결함이 있을 수 있다. 또 완벽에 가까운 사료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불완전해질 수도 있다. 광개토대왕비문과 같은 경우를 보면 말이다. 게다가 사료는 잔존여부에 있어서 선택적 성격을 가지기도 하고 과거에 정치적으로 오염된 사료도 있을 수 있다. 객관적 진리를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는 밝혀지지 않으며, 밝혀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모든 역사가들의 역사적 해석이 동일한가의 문제는 성립될 수 없으며, 동시에 역사가 과학인가의 문제는 다시한번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7. 맺음말
한 세기에 걸쳐 계속되어온 역사의 과학성문제는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1903년 시작된 베리-트레벨리언 논쟁에서부터 콜링우드와 카, 백비가 가세하여 논의를 확대시키고, 1980년대 계량사학의 문제에서 포겔과 엘튼의 논쟁까지, “역사는 과학인가?”의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역사학계의 논제가 아닌가싶다. 또한, 발표를 준비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도 과학이다, 아니다를 계속해서 오갔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머리말에서 이 논제를 해결하겠다며 발표를 시작했지만, “역사는 과학이다! 혹은 아니다!” 의 명쾌한 답을 내지못한 채 양쪽의 의견을 모두 소개해야만하는 한계를 가지면서 발표를 맺는다. 정확히 적용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역사이론에 의해 이 역시도 결국엔 역사가 과학인지, 아닌지의 진리가 판가름날지는 아직도 머릿속에서는 미지수다.
※ 참고문헌
Richard Evans, 『역사학을 위한 변론』, 소나무, 1999
E. H. Carr(역 : 권오석), 『역사란 무엇인가』, 홍신문화사, 1988
안건훈, 『역사와 역사관』, 서광사, 2007
차하순, (새로 고쳐 쓴)『역사의 본질과 인식』, 학연사, 1998
김한종 외, 『역사교육과 역사인식』, 책과 함께, 2005
조지형,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김영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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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6.07
  • 저작시기2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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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5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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