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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 아시아문화 개념, 아시아문화 형성, 정체성, 교류, 민족의식, 유교관]아시아문화의 개념, 아시아문화의 형성, 아시아문화의 정체성, 아시아문화의 교류, 아시아문화의 민족의식, 아시아문화의 유교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아시아문화의 개념

Ⅲ. 아시아문화의 형성

Ⅳ. 아시아문화의 정체성

Ⅴ. 아시아문화의 교류

Ⅵ. 아시아문화의 민족의식

Ⅶ. 아시아문화의 유교관
1. 유교의 세계상
2. 전통적 세계상의 해체
3. 아시아 연대관념의 등장
1) 아시아 연대관념의 형성 배경
2) 일본의 아시아 연대 관념
4. 아시아 멸시관 형성
5. <중화>의 나라에서 <공론>의 나라로
6. 대아시아관 구조 변화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으로 통계상에 보이지만, 만주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 더 좋은 예는, 재일 및 재미 동포 2세들이다. 그들이 한국어를 모른다고 부모가 속한 한국 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은 민족어의 소실 현상이 선사시대나 고대에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우리 나라 성씨 중에는 중국위구르 등지의 귀화인이 창시한 본관 있는 사실이 기록으로 잘 전해져 내려와 있다. 그러나 그 후예들은 스스로 ‘한민족’으로만 의식할 뿐이다.
결국 ‘민족’의 확실한 성립 근거는 \'민족의식\' 하나로 귀착된다. 즉, 민족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자신이 속하는 민족의 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민족의 구성원들은 현재의 입장에서 자신이 소속하는 민족이 다른 민족과 혈통적문화적역사적으로 다르다고 의식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민족의 운명과 결부시키는 공동체의식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모여서 민족을 성립시켰고 존속시켜 왔다고 이해함이 온당할 것이다.
민족의 成立根據를 이상과 같이 ‘민족의식’ 한 가지로 파악하면, ‘民族의 起源’은 民族意識이 形成된 時期로 잡아야 당연하다. 그렇다면, 민족의 형성은 반드시 先史時代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역사시대에도 본래 다양한 근원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단일한 민족으로 통합될 수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인류사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Ⅶ. 아시아문화의 유교관
1. 유교의 세계상
○ <중화>ㆍ<중국>이 당위로서 가치체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음
- 華夷思想은 <夷>의 관념을 전제로 한 유교의 규범적 도그마티즘의 표현
2. 전통적 세계상의 해체
○ 아편전쟁(1840-42)
- 幕末에 학문관의 전환을 촉진시키고 전통적인 세계상의 해체를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국제관ㆍ아시아관 형성의 주요한 계기를 만듦
- 전통적인 세계상의 回
서양 = <이적> → 서양 = <강국>, 이러한 국력을 낳을 수 있는 실증적 <기술>의 습득자
- 국제정치를 일관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추구이며, 이에는 권력이 매우 큰 작용을 함
3. 아시아 연대관념의 등장
1) 아시아 연대관념의 형성 배경
- 아편전쟁, 유럽 여러 나라의 국제 관념이 일본의 경우의 상이
2) 일본의 아시아 연대 관념
: <외부의 필요>에 의하여 <외발적>으로 유발
- 일본에 있어서 아시아연대 관념은 서양열강에 대한 공포의 반사로서 형성
4. 아시아 멸시관 형성
○ 서양 선진 여러 나라의 새로운 지식ㆍ학문의 수용
- 새로운 학문의 관제 =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한 단 하나의 길
- 서양 선진 여러 나라에 대하여 일본의 국가적 통일과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로, 서양
여러 강국에 대항하여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
5. <중화>의 나라에서 <공론>의 나라로
○ 청국 쇠잔의 원인
- 부국강병을 실시하여 왕성한 세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양 여러 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한 결과(서양의 뛰어난 문물을 배우려하지 않았음)
→ 이러한 청국의 태도를 막말의 선구적 사상가들은 <고루(固陋)>라 부르고 <愚>라 경멸.
6. 대아시아관 구조 변화
: 연대 → 선진과 후진, 선각과 고루라는 종적 관계
○ 서양 여러 나라에 대한 일본의 후진성과 약소성에 대한 통렬한 자각과 반성
→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선각자>의 의식이 되어 굴절된 아시아관 구조 형성
선진과 후진, 선각과 고루라는 종적 관계로서 받아들여지는 경향을 낳음
cf) 서양 여러 나라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공통의 이해관계 → 아시아연대 개념 형성
=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대등한 의식
Ⅷ. 결론
마르코 폴로는 어린나이에 중국을 방문했었다. 미처 서양의 모든 것을 보기도 전이고, 아직은 세상의 많은 문물을 접하기에도 어렸으며, 견식도 좁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그가 바라본 사막 넘어 펼쳐진 새로운 나라는 정말로 경이롭기만 한 나라였을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의 인상은 나이를 먹은 후에도 꿈속의 나라처럼 환성적으로만 느껴졌을 것이다. 까만 눈, 까만 머리에 키 작은 민족과 그런 민족들이 가진 문화의 우수성은 \'Culture Shock\'로 다가와 이후 바라보는 모든 중국의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경이로움으로 비추어 졌을 것이다. 중국의 미흡한 점과 서양인으로 느끼는 다소 야만적이고 미개한 듯한 문화조차도 이미 중국과의 \'사랑\'에 빠져버린 그의 눈에는 용인될 수 있는 민족만의 고유한 특수성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는 훗날 중국에 대한 여러 사실을 미리 접하고 공부하고 기대하고 떠났던 콜럼버스나 기타 많은 현실주의적 대항해 시대 사람들의 중국방문과 엄연히 다르며, 보나 많은 정보와 철학 사조의 영향을 받은 계몽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본 중국과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런 기반 지식이 없던 Polo의 중국에 대한 인상은 그야말로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뿐이었을 것이다. 이런 Polo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스스로가 Polo가 되어서 상상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막과 목초지를 더위와 갈증 굶주림에 허덕이며 지나 온지 수개월. 우린 작은 언덕 위에 올라서 있었고 그 아래 내려다보이는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대한 도시 그리고 그 안에는 전혀 본적이 없던 양식의 건물, 그 사이를 누비는 키가 작고 까만 눈 까만 머리의 사람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은 귀하기 그지없는 비단으로 된 옷들, 내가 살던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훌륭한,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참고문헌
▷ 강성원(2011), 아시아 문화유산의 국제협력프로젝트에 대한 현황, 한국건축역사학회
▷ 김후련(2008), 아시아문화연구소 설립을 위한 과제와 전망, 한국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 김상헌 외 1명(2008), 아시아문화지도 문화분류체계와 기반기술 연구, 한국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 문화관광부 외 1명(2008), 아시아문화시대, 아시아문화연구소의 비전, 한국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 신광철(2008), 아시아문화연구의 현재 지점과 아시아문화연구소의 방향, 한국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 이종열(2010), 문화정책과정의 주체에 관한 연구 : 아시아문화전당사례를 중심으로, 서울행정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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