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연방]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교역,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경제협력,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한인이주,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단독정부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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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비에트연방]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교역,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경제협력,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한인이주,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단독정부구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교역

Ⅲ.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경제협력
1. 제 1단계
1) 특징과 성격
2) 경제 및 기술원조
3) 교역
4) 과학기술협력
5) 임업협력
6) 어업협력
2. 제 2단계
1) 특징과 성격
2) 경제 및 기술원조
3) 교역
4) 임업협력
5) 어업협력
3. 제3단계
1) 특징과 성격
2) 교역
3) 과학기술협력
4) 기타
4. 제4단계
1) 특징과 성격
2) 교역
3) 인력수출

Ⅳ.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한인이주

Ⅴ. 소련(소비에트연방, 러시아)과 북한의 단독정부구성
1. 토지개혁
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부가 조직한 행정국들도 아직은 해당 경제분야에 대한 지도를 원만히 수행하지 못한다. 연해주군관구와 제 25군 군사평의회는 북조선에서 질서를 확립하고 지방자치기관을 조직하여 민주정당 사회단체 결성에 협조하기 위한 방대한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업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1945년 9월21일자 최고사령부의 훈령에 언급된 북조선에서 민주정당사회단체들의 광범한 블록에 기초한 부르조아민주 정권 결성을 겨냥한 노선이 대담하게 관철되지 못했다.
제25군 민정담당부 사령관의 기구는 너무 작고 북조선 6개도의 경제 및 정치생활을 조직할 능력이 있는 숙련된 간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기구는 새 부르조아 민주정권 기관과 민주주의 단체를 지도 할 능력이 있는 지방 민족간부의 발탁, 학습 및 천거 사업을 잘 못하고 있다.”
아울러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고 있다.
“ .....
2. 조선에서 우리 군대를 철수할 경우 우리의 국가적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고한 경제적 정치적 진지를 유리는 북조선에서 아직 쟁취하지 못했다.
......
3. 가장 빠른 시일내에 북조선 경제를 복구하고 민족간부를 양성하는 과업은 북조선 영토내에 정권을 중앙집권화하여 조선의 민주활동가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필요로 한다.
4. 인민민주주의 운동의 발전은 대지주의 토지소유로 인하여 저항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빠른 시일내에 농지개혁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두 번째는, 김일성의 1946년 2월8일자 보고를 인용해 본다.
“붉은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옴과 함께 북조선의 인민들은 자기의 민족적이며 민주주의적 지방행정기관을 조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단계에는 지방행정기관으로 되는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인민위원회는 질서정돈과 인민들의 생활의 안정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인민경제의 각 부분을 지도하며 북조선의 각도와의 경제적 연락을 실현하기 위하여 산업, 교통, 체신, 토지, 삼림, 상업, 재정, 교육, 보건, 사법 및 보안국을 조직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북조선의 각도의 우리 인민들의 자치 기관 조직의 둘째 계단입니다.
.........그러나.....오늘까지 하여온 사업은 원만치 못합니다..........우리는 지금 벌써 우리의 각局들과 지방인민위원회 사업에서 많은 난관들과 실제적 결점들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조선에는 各局들의 사업의 방향을 인도하며 지도할 유일한 조선중앙주권기관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각국과 지방인민위원회 사업을 지도하기와 북조선지방에서 경제, 정치, 및 문화적 생활을 지도하기에 대단히 곤란합니다.”
김일성의 연설을 통한 문제 제기로 토론을 거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된 것으로 이전에 공개된 공식문서들은 그 과정을 세련되게 설명하게끔 준비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날 소련의 문서보관소에서 새롭게 공개되는 문서들에 의해 더 한층 세련 된 과정이 복층으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두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에서 단독정권이 철저하게 소련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수립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토지개혁의 예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것은 애초 조선의 현실이나 문화, 역사 사회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었음이 유감스럽게도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소련에 의해 이식된 제도가 어떻게 북한에서 정착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마도 이후 오늘 날까지의 북한의 국가체제 내지 제도의 변천과 그 작동 메카니즘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기존의 여러 가지 모델들과 비교하는 전적으로 행정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의 협동연구의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필자는 정치학도로서 이러한 타율적인 ‘시스템 이식’이 가져 온 영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기하고 싶다.
Ⅵ. 결론
소련과 북한은 오랜 기간에 걸쳐 매우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소련은 북한의 경제적 재건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소한 1980년대 말 까지만 하더라도 양국은 기술이전, 협동생산, 위탁가공생산, 인력 교육 및 훈련, 과학기술교류 등의 형태로 경제협력관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두 나라의 긴밀한 협력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음을 조사를 통해 알았다. 그리고 러시아와 경제협력이 소원해진 것은 양국이 소연방 해체 이후 서로를 더 이상 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던 자세에서 비롯됐다. 현재에는 양국관계의 개선이 지속되고 있다. 양국간의 교역은 정치논리가 지배하는 쌍무협정에 기초해 실행되었다. 소련의 對북한 경제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연대와 군사안보를 목적으로 한 출혈지원이었으며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일방적인 원조를 요구하는 기생적 태도를 탈피하지 못했다. 또한 청산결제에 기초한 구상무역, 보상 프로젝트 등은 북한으로 하여금 채무상환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유발하지 못했고 북한 기업 및 노동자들의 규율을 강제하지도 못했다. 또한 소련의 對북한 기술원조는 실효성이 없었다. 그리고 북한 내부의 문제들, 즉 경제발전전략의 군사화, 전일적인 행정, 명령 경제체제에 의한 과도한 중앙집권화 및 경제 개입, 물질적 노동유인체계의 부재 등이 결정적으로 북한의 경제를 궁핍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장기적으로 러시아와 북한은 시간을 갖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경제협력관계를 점차 복원해나갈 것이라 전망된다. 또한, 소련의 실질적 계승자인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경제 건설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인식하고 남북화해협력시대에 맞게 남북한이 공동으로 러시아와의 이해관계를 증대시키고 현실성 있는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국회사무처, 소련 과 북한 의 교역관계 분석, 대한민국국회, 1982
박수영, 소련과 북한의 군사협력관계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1989
이철순, 소련의 북한 정치세력에 대한 정책, 21세기정치학회, 2010
이기탁, 소련의 극동군사정책과 북한과의 관계, 한국국방연구원, 1988
이동곤, 소련의 동북아정책에서본 소련.북한관계, 한국외국어대학교, 1986
조정남, 북한의 사할린 한인 정책, 한국민족연구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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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3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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