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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간관, 성리학 인간관, 유교 인간관, 불교 인간관, 기독교 인간관, 육담 인간관, 노동자 인간관]성리학의 인간관, 유교의 인간관, 불교의 인간관, 기독교 인간관, 육담 인간관, 노동자 인간관, 니이버 인간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성리학의 인간관
1. 사람의 성, 즉 '生과 心'에서 生은 생명을 뜻한다
2. '사람의 性', 즉 生과 心에서 心은 '일신지주재'이다

Ⅱ. 유교의 인간관
1. 인간존재의 근원과 한계
2. 인간의 특성
1) 인간의 구조
2) 인간과 하늘(天)
3. 도덕적 인간관

Ⅲ. 불교의 인간관
1. 영혼설
2. 자유의지
3. 연기설

Ⅳ. 기독교의 인간관

Ⅴ. 육담의 인간관

Ⅵ. 노동자의 인간관

Ⅶ. 니이버의 인간관
1. 고전적 인간관
2. 기독교 인간관
3. 근대적 인간관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서 날마다 이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자아(self)는 자연과 자유라는 상호배타적인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하나의 자아로서 두 개의 수준 즉 자연적 수준과 정신적 수준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자연적 수준에서는 자아는 자연에 개입하여 참여한다. 그러나 정신적 수준에서는 자연을 훨씬 능가한다. 자아는 자연을 이성으로서 조정하여 재형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아는 이성까지도 초월할 수 있다. 자아는 자연과 이성을 초월하며 그것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자아의식을 통하여 자아 자체를 객관화하여 연구하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자아의식이란 경험적으로 영원의 차원 또는 자유의 궁극적 경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니이버는 말하기를 이 자아의식은 고등한 초극을 넉넉히 해낸다고 한다. 즉 자아가 자아를 객관화하되 자아는 항상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머무는 일을 달성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니이버의 인간관에 있어서는 인간의 실존적 갈등과 긴장 관계의 상존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수준에서 인간의 자아의식을 통한 초월의 달성이 인간의 제일가는 과제로 되어 있다.
니이버의 인간 이해는 두 자료에 기초했다. 고전적 인간관과 성경적 인간관이 그것이다. 전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인간 이해로 이성에 의한 철학적 접근을 의미하며 후자는 유대교와 기독교적 인간 이해로 계시에 의한 신앙적 접근을 의미한다. 그는 이성과 계시 가운데 어느 한편에만 기초하는 인간 이해의 방법을 거부했다. 그의 인간관은 두 가지 자료, 즉 인간 상황에 대한 철학적 분석과 기독교 계시에 대한 통찰에 근거했다.
1. 고전적 인간관
고전적 인간관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및 스토아 학파의 철학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합리주의와 이원론을 특징으로 한다. 인간은 본래 이성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확신이었다. 인간의 독특성과 독자성은 이성의 존재에 있다. 플라톤은 이성 혹은 정신을 영혼과 구별하지 않고 그것을 영혼의 최고 요소로 간주하는 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을 영혼과 구별하여 순수한 지적 활동의 매개물로 생각했다. 이들은 다같이 인간의 합리성을 강조했으며 이성과 감정을 대립시키고 인간을 육체와 정신으로 나누는 이원론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 플라톤 사상에서는 이원론이 명시되고 있는 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는 그것이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합리주의는 이성을 인간의 본질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신성에까지 연결시켜 인간을 신적인 것과 동일시했다. 따라서 인간의 개성이 상실되었다. 이원론은 육체는 약하고 정신은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인간관을 형성하게 했다.
고전적 인간관에서는 플라톤과 이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 요소 외에 에피쿠로스와 테모크리토스의 자연주의적인 요소도 있었다. 자연주의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나, 자연 질서로부터 독립된 정신 영역이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았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고전적인 인간관 형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고전적 인간관은 인간의 미래와 역사의 발전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이성의 능력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2. 기독교 인간관
니이버의 인간관의 또 다른 자료는 계시에 근거한 기독교 인간관이다. 기독교 인간관은 창조주 신앙에 기초한다. 그는 성경적인 인간론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통일체이다. 따라서 기독교 인간관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보는 헬라의 이원론적 인간관과는 입장을 달리한다. 둘째, 인간은 이성적인 기능과 관련해서나 자연과 관련지어 이해되기보다는 하나님의 견지에서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 각자는 그 자신과 세상 밖에 설 수 있는 자아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과 세상 안에서는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자아이다. 셋째, 인간은 죄인이다. 죄 때문에 인간은 사랑받아야 하나 신뢰되어서는 안 된다.
3. 근대적 인간관
니이버에 따르면 근대적 인간관은 고전적 인간관과 기독교적 인간관의 일부를 혼합한 것이다. 고전적 인간관으로부터는 자연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제2차적인 위치에 있던 자연주의가 합리주의를 압도하고 지배적인 요소가 되었다. 기독교 인간관으로부터는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것은 받아들였으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부정했다.
니이버는 근대 인간관이 세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근대 인간관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서로 모순 되는 입장을 취했다. 관념론자들은 인간을 피조물이나 죄인으로 간주하기를 거부하는 반면,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을 피조물로 취급하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둘째, 근대 인간관은 인간의 개성 문제에 혼란을 가져왔다. 개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이후 개성의 개념은 인간의 모든 유한성을 제거하고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에 기초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미숙한 운동은 오히려 자아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째, 근대 인간관은 악의 문제를 낙관적으로 취급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죄성이 내재해 있다고 믿는 기독교의 원죄 개념을 거부하고 이성의 힘에 의해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낙관주의적 역사관에 빠지게 되었다.
니이버에 따르면, 이러한 근대 인간관의 오류는 인간의 자기 초월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며 인간의 정신생활과 육체 생활 사이의 유기적 통일성을 공정하게 해석하지 못하는 데서 일어났다. 인간을 단지 이성적 존재로만 이해하여 그의 비이성적인 생명력을 간과하거나, 이와 반대로 인간을 생명력으로만 이해하여 이성적 능력을 간과했다.
참고문헌
김기현, 성리학의 인간관과 생활예절, 한국유교학회, 2007
곽만연, 불교의 인간관과 인성관, 동아대학교학생생활연구소, 2001
노상철, 라인홀트 니이버의 인간관, 건국대학교, 1988
방기환, 육담과 경륜 : 고속신담, 희망출판사, 1967
이기동, 유교의 인간관, 본질과현상사, 2005
은준관, 기독교의 인간관, 연세대학교 의학행동과학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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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27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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