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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인식하는 자는 산을 가지고 건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신이 산을 옮기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대들은 일찍이 이 일을 알았던가?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자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이 도대체 무엇을 안단 말인가? 군중 속에 살면서 살이 쪄 비대해지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따르면서 존경이나 받으려는 그대들이! 그대들은 아는가? 인식하는 자는 산을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대는 깨어있는 의식의 산,별까지 닿는 의식의 에베레스트를 세워야 한다. 정신이 산을 옮기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그대들은 일찌기 이 일을 알았던가? 그대들은 단지 정신의 불티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정신 그 자체인 모루와, 그 쇠망치의 무자비함을 보지 못한다.! 진실로 그대들은 정신의 긍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정신의 겸손함이 행여 말이라도 하게 된다면,그대들은 그 겸손함을 한층 더 견디지 못하리라.... 그대들은 독수리가 아니다. 짜라투스트라에게 있어서 독수리는 훌륭한 상징이다. 그는 두 가지의 상징을 좋아한다. 그것은 독수리와 뱀이다. 그에게 있어, 뱀을 지혜를 상징하며 독수리는 자유를 상징한다. 독수리는 가장 높이 난다. 독수리는 태양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자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독수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지금껏 정신이 공포 속에서 갖는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다. 독수리만이 높이 나를 때의 외로움을 안다. 독수리만이 그 고요함과 위험을 안다. 위험이 없이는 아무 것도 성장하지 못한다.
짜라투스트라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위험스럽게 살라는 것이다. 먼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살라.두려워하지 말라. 그대 내면의 '자기(self)'는 영원불멸이다. 위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멸하는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의 두려움은 무지를 드러낼 뿐,그 밖의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새가 아닌 자는 심연 위에 보금자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심연 위에 집을 짓는 즐거움....그 즐거움은 극소수의 용기있는 영혼만이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짜라투스트라에 따르면, 종교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종교는 독수리 같은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종교 는 위험스럽게 살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진리와 삶의 의미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만이 초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너무 미지근하다. 그러나 모든 깊은 인식은 차갑게 흘러 나오는 것이다. 정신의 가장 깊은 샘은 얼음처럼 차갑다. 그것은 뜨거운 손과 뜨겁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상쾌하게 한다. 군중은 미지근한 삶을 산다. 그들의 삶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다. 군중은 극단을 모른다. 그들은 항상 중간에서 안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안전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탐험가나 발견자가 될 수 없다. 참된 지식은 깊이 흐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차갑다. 그대는 미지근한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도 죽음도 아닌 삶, 식물인간 같은 삶, 살아남기에 급급한 삶, 그대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대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살아남느냐, 어떻게 안전을 보장받느냐 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대는 무덤으로 가고 있다. 그대의 모든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무덤으로 가고 있다. 무덤으로 가기 전에 춤과 축제를 즐기라. 기쁨이 넘치는 가슴으로 노래를 부르라.
위험하게 살아라!
위험하게 살든 미지근하게 살든 상관없이 그대는 무덤으로 간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위험한 삶을 산 사람,전적이고 강렬한 삶을 산 사람은 자신 안의 '죽음없음(deathless)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엔 무덤으로 간다 해도 죽음은 없을 것이다.
전체적인 삶을 살지 않은 사람, 자기 자신 안에 깊이 들어가지 않은 사람, -왜냐하면 그곳은 얼음장처럼 차갑기 때문이다.-그런 사람 또한 무덤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삶의 원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이 다가왔다!
전적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음을 축하하며 반길 것이다. 그 죽음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마지막 도전으로 그에게 왔기 때문이다. 그의 전 생애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제 그는 죽음을 환영할 것이며, 노래하고 춤추며 죽음의 세계로 들어 갈 것이다. 그는 자신 안에 파괴될 수 없고 죽음을 모르는 어떤 것이 있음을 안다.
그대들은 근엄하게, 그리고 뻣뻣한 자세로 거기에 서 있다. 그대들 유명한 철학자들이여! 제아무리 강한 바람 혹은 강한 의지라도 그대들을 넘어뜨리지 못한다. 그대들은 일찌기 돛이 둥글게 부풀어 사나운 바람 앞에 떨며 바다를 지나는 배를 본 적이 없는가? 그 범선처럼 정신의 사나운 바람에 떨며 나의 지혜는 바다를 건너간다.-나의 거친 지혜는!
지혜는 항상 거칠다.
지혜는 항상 사납다.
지혜는 언제나 자발적이다.
그러나 지식은 길들여진 노예와 같다.지식은 매우 천하다.컴퓨터는 지혜를 가질 수 없다.지혜는 인간의 특권이다.인간의 의식만이 지혜를 갖는다.그러나 그때,그대는 사납고 길들여지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말하지만 자유를 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는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노예는 편안하다. 다른 사람이 그의 삶을 책임져 준다. 그러나 지혜는 자유롭다.그대는 다음 순간에 무엇을 알게 될지 미리 알 수 없다.그대는 그것을 예행연습할 수 없다.그렇게 그것은 돌발적으로 온다. 그러나 길들여지지않은 거친 지혜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대들 민중의 종인 유명한 철학자들이여!-그대들이 어찌 나와 함께 갈 수 있겠는가?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자와 신학자, 성직자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나와함께 갈 수 없다. 그대들은 나와 더불어 야생의 세계, 미지의 세계로 여행할 수 없다.그대들은 너무 겁쟁이이다. 그대들에겐 영혼이 없다. 그리고 그대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 저 어둡고 깊은 세계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대들은 일찍이 이 일을 알았던가?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자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이 도대체 무엇을 안단 말인가? 군중 속에 살면서 살이 쪄 비대해지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따르면서 존경이나 받으려는 그대들이! 그대들은 아는가? 인식하는 자는 산을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대는 깨어있는 의식의 산,별까지 닿는 의식의 에베레스트를 세워야 한다. 정신이 산을 옮기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그대들은 일찌기 이 일을 알았던가? 그대들은 단지 정신의 불티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정신 그 자체인 모루와, 그 쇠망치의 무자비함을 보지 못한다.! 진실로 그대들은 정신의 긍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정신의 겸손함이 행여 말이라도 하게 된다면,그대들은 그 겸손함을 한층 더 견디지 못하리라.... 그대들은 독수리가 아니다. 짜라투스트라에게 있어서 독수리는 훌륭한 상징이다. 그는 두 가지의 상징을 좋아한다. 그것은 독수리와 뱀이다. 그에게 있어, 뱀을 지혜를 상징하며 독수리는 자유를 상징한다. 독수리는 가장 높이 난다. 독수리는 태양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자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독수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지금껏 정신이 공포 속에서 갖는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다. 독수리만이 높이 나를 때의 외로움을 안다. 독수리만이 그 고요함과 위험을 안다. 위험이 없이는 아무 것도 성장하지 못한다.
짜라투스트라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위험스럽게 살라는 것이다. 먼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살라.두려워하지 말라. 그대 내면의 '자기(self)'는 영원불멸이다. 위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멸하는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의 두려움은 무지를 드러낼 뿐,그 밖의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새가 아닌 자는 심연 위에 보금자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심연 위에 집을 짓는 즐거움....그 즐거움은 극소수의 용기있는 영혼만이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짜라투스트라에 따르면, 종교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종교는 독수리 같은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종교 는 위험스럽게 살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진리와 삶의 의미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만이 초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너무 미지근하다. 그러나 모든 깊은 인식은 차갑게 흘러 나오는 것이다. 정신의 가장 깊은 샘은 얼음처럼 차갑다. 그것은 뜨거운 손과 뜨겁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상쾌하게 한다. 군중은 미지근한 삶을 산다. 그들의 삶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다. 군중은 극단을 모른다. 그들은 항상 중간에서 안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안전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탐험가나 발견자가 될 수 없다. 참된 지식은 깊이 흐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차갑다. 그대는 미지근한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도 죽음도 아닌 삶, 식물인간 같은 삶, 살아남기에 급급한 삶, 그대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대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살아남느냐, 어떻게 안전을 보장받느냐 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대는 무덤으로 가고 있다. 그대의 모든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무덤으로 가고 있다. 무덤으로 가기 전에 춤과 축제를 즐기라. 기쁨이 넘치는 가슴으로 노래를 부르라.
위험하게 살아라!
위험하게 살든 미지근하게 살든 상관없이 그대는 무덤으로 간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위험한 삶을 산 사람,전적이고 강렬한 삶을 산 사람은 자신 안의 '죽음없음(deathless)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엔 무덤으로 간다 해도 죽음은 없을 것이다.
전체적인 삶을 살지 않은 사람, 자기 자신 안에 깊이 들어가지 않은 사람, -왜냐하면 그곳은 얼음장처럼 차갑기 때문이다.-그런 사람 또한 무덤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삶의 원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이 다가왔다!
전적인 삶을 산 사람은 죽음을 축하하며 반길 것이다. 그 죽음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마지막 도전으로 그에게 왔기 때문이다. 그의 전 생애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제 그는 죽음을 환영할 것이며, 노래하고 춤추며 죽음의 세계로 들어 갈 것이다. 그는 자신 안에 파괴될 수 없고 죽음을 모르는 어떤 것이 있음을 안다.
그대들은 근엄하게, 그리고 뻣뻣한 자세로 거기에 서 있다. 그대들 유명한 철학자들이여! 제아무리 강한 바람 혹은 강한 의지라도 그대들을 넘어뜨리지 못한다. 그대들은 일찌기 돛이 둥글게 부풀어 사나운 바람 앞에 떨며 바다를 지나는 배를 본 적이 없는가? 그 범선처럼 정신의 사나운 바람에 떨며 나의 지혜는 바다를 건너간다.-나의 거친 지혜는!
지혜는 항상 거칠다.
지혜는 항상 사납다.
지혜는 언제나 자발적이다.
그러나 지식은 길들여진 노예와 같다.지식은 매우 천하다.컴퓨터는 지혜를 가질 수 없다.지혜는 인간의 특권이다.인간의 의식만이 지혜를 갖는다.그러나 그때,그대는 사납고 길들여지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말하지만 자유를 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는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노예는 편안하다. 다른 사람이 그의 삶을 책임져 준다. 그러나 지혜는 자유롭다.그대는 다음 순간에 무엇을 알게 될지 미리 알 수 없다.그대는 그것을 예행연습할 수 없다.그렇게 그것은 돌발적으로 온다. 그러나 길들여지지않은 거친 지혜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대들 민중의 종인 유명한 철학자들이여!-그대들이 어찌 나와 함께 갈 수 있겠는가?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자와 신학자, 성직자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나와함께 갈 수 없다. 그대들은 나와 더불어 야생의 세계, 미지의 세계로 여행할 수 없다.그대들은 너무 겁쟁이이다. 그대들에겐 영혼이 없다. 그리고 그대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 저 어둡고 깊은 세계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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