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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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5대 건축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만든 말 조각상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때문에 다빈치는 16년간 애를먹게 되고 실험삼아 진흙으로 조각상을 만들지만 결국 청동말 조각상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스포르차가 청동말 조각상을 만들기위해 모아놓은 60톤의 청동은 프랑스군이 쳐들어오면서 모두 포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진흙으로 만든 조각상도 그자체로도 엄청난 예술품이 될수 있었으나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밀라노에 있는 동안 다빈치는 자크모 카프로티 라는 어린 제자를 한명 두게 되고 어린 제자의 말썽투성이 행동에 다빈치는 세일라(악마)라고 부르게 된다. 하지만 다빈치는 세일라의 행동에 매우 관대했고 평생 가족과 자식이 없었던 다빈치에게는 딱히 애정을 쏟을 만한 대상이 없었고 세일라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붓게 된다.
세일라는 다빈치의 일생에 가장중요한 인물이며 장난기 많지만 사랑스런 소년이었다. 그리고 다빈치가 세상을 떠날때 그의 유산은 세일라에게 상속된다. 이때까지 다빈치는 중요한 작품 몇점을 남기게 된다.
\"동굴의 성모\"와 스포르차의 애첩을 그린 \"에르마인을 안고있는 숙녀\" 가 여기에 포함된다.
다빈치가 스포르차 밑에서 일한지도 13년, 항상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않기로 유명한 다빈치였지만 스포르차는 다빈치에게 큰일을 맡겨보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바로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 수도원에 최후의 만찬을 묘사하는 벽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최후의 만찬은 전에도 몇번 제작된바 있지만 다빈치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기로 한다.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너희들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 제자들의 표정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너무도 유명한 대작 \"최후의 만찬\"이 탄생하게 된다.
얼마후 프랑스군은 밀라노를 침공하게 되고 다빈치는 밀라노를 떠나게 된다
후원자를 잃은 다빈치는 일자리를 찾아 동쪽으로 발길을 돌려 베네치아로 가게 된다.
1500년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중 하나였다.
돈에 쪼들리던 그는 잔혹하기로 소문난 폭군이자 교황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지아를 찾아간다.
체사레 보르지아는 자기 형제를 죽였으며 누이를 범했고 사람을 만찬에 초대해 놓고 독살시키기 일수인 당대인들이 이름만 떨어도 떨정도의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그는 다빈치를 군 토목기사로 임명하고 막강한 권한을 보장해 주는가 하면 개인 호위병 까지 파견해 준다. 그밑에서 다빈치는 여러가지 대규모 공사를 벌이게 된다.
배수공사를 하는가 하면 도시를 둘러싼 성곽을 축조하고 심지어 프랑스로 흘러들어가는 강의 흐름을 바꾸는 계획까지 한다. 어느날 다빈치와 친해진 병사가 보르지아에게 살해되는 일이 발생되고 친구를 잃은 다빈치는 이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두달후 체사레 보르지아 곁을 떠나게 된다.
피렌체로 돌아온 다빈치는 그림에 진저리가 났다고 말하면서도 \"리사드 지오콘데\"라는 이름의 부인을 그리는 일을 착수하게 된다. 그후 10년에 걸쳐 완성된 이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화 작품으로 꼽히게 될 \"모나리자\"였다.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래걸린 이유는 다빈치가 여러가지 관심 분야의 연구를 동시에 추구했기 때문이다.
마침 다빈치의 관심을 끈 새로운 분야가 등장한다. 바로 \"인체\"였다.
그는 해부학을 공부하고 뼈와 근육의 움직임을 비롯한 많은 부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곧 근육보다 더 깊이 들어가 연구하게 된다. 다빈치는 사상 최초로 인체의 장기를 해부한 인물이다.
당시 인체해부는 교회의 허가를 얻어 이따금씩 이루어 졌다. 대개 범죄자들의 시체를 해부하고 예술가들이나 학생들이 곁에서 지켜보는 방식이었다.
1500년대 초 산타마리아 누오보 수도원 부속병원, 다빈치는 이곳에서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발견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훗날 20세기가 되서야 그의 발견은 의학계에서 재발견 된다. 바로 \"동맥경화\"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는 해부를 하면 할수록 인체가 놀랍도록 훌륭하게 만들어졌다는걸 깨닫게 된다. 그는 해부학을 통해 인간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원리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연구끝에 그는 인조인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을 계획한다. 해부학을 통해 쌓은 지식과 기계에 대한 열정을 합쳐 세계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설계한다.
실제로 오늘날 나사의 우주정거장에서 사용되는 로봇중 일부는 500년전 다빈치의 설계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도 있다.
하지만 1500년대 초에 다빈치에게는 후원자도 돈도 떨어져가면서 힘겨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1513년 그는 새로 즉위한 교황 레오10세 밑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다빈치를 불러 들인 것은 교황이 아니라 교황의 동생이었고 정작 교황은 다빈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교황은 다빈치에게 특별한 임무는 주지 않았고 조수라고 붙여준 자는 다빈치가 이상한 짓을 꾸밀까봐 파견한 교황의 첩자였다. 이 첩자는 해부학을 연구하던 다빈치를 음모에 빠뜨렸고 다빈치는 교황의 명으로 해부학을 더 공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부학 역시 다빈치의 또다른 실패중 하나였다. 다른 분야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역시 출판되지 못하고 파묻혀 있다가 인류가 비슷한 발견을 이룩한 후에야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많은 업적을 이루고도 정작 인류발전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 여인을 통해 가장 위대한 업적하나를 남겼다. 그녀는 다빈치가 로마를 떠날때도 함께했고 15년간을 그와 함께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날때도 곁을 지켰다. 그리고 온세상이 그를 잊고 말았을때 다빈치를 재발견하게 해준것은 바로 그녀였다.
\"모나리자\"를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이 다음세대로 전해지는 사이 어느덧 호기심이 더이상 죄가 되지 않는 시대, 자유로운 사고가 각광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모나리자의 오묘한 미소, 그안에는 모든것을 알고자 했던 영원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신비가 담겨있다.
<브루노 제비>
1930년대의 라이트, 제비(Bruno Zevi, 1918~)는 『유기적인 건축을 지향해서』를 써서 이것을 지지하고,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대주의 건축의 대립개념으로서 자주 쓰인다.
(22 January 1918 Rome, Italy - 9 January 2000 Rom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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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3.10.05
  • 저작시기2013.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4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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