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한국 독립군의 창립
(2) 한국독립군의 투쟁 내역
1) 쌍성보 전투
2) 경박호 전투
3) 사도하자 전투
4) 동경성전투
5) 대전자령 전투
6) 동녕현성전투
7)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간부의 관내 이동
(3) 의의
참고문헌
(2) 한국독립군의 투쟁 내역
1) 쌍성보 전투
2) 경박호 전투
3) 사도하자 전투
4) 동경성전투
5) 대전자령 전투
6) 동녕현성전투
7)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간부의 관내 이동
(3) 의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관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김구의 한인애국단의 활동의 영향으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원조에 의해 한인특별반을 설치하게 되어, 그 교관 겸 책임자로 이청천을 선정하여 1933년 10월 20일경 이청천과 주요 간부들이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다. 신용하,『한국 항일독립운동사연구』, 경인문화사, 2006, 285~297
(3) 의의
한국 독립군은 종래 신민주의 활동 지대인 북만주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신민부의 군사지도자였던 김좌진이 만주사변 직전인 1931년 1월 14일 암살당함으로써 군사적 리더십에 공백이 발생하여 군대 편성과 군사적 리더십이 즉각 형성되지 못하였다. 김좌진 별세후에 북만주의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은 한족총연합회와 동빈현주민회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 독립당을 창당했으나, 이것은 만주침략 2개월 전인 1931년 7월의 일이었다. 후에 서둘러 장정을 모집하여 1931년 11월에야 군대가 편성되었으나 다른 부대보다 약간 뒤늦은 것이었다. 그리고 1934년 중국 관내로 넘어가면서 해체되었으나 짧은 항일전 기간에 쟁취한 대승선들은 경탄할 만한 성과였다. 위의 책 313~316
참고문헌
신용하 저, 한국 항일독립운동사연구, 경인문화사 2006
(3) 의의
한국 독립군은 종래 신민주의 활동 지대인 북만주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신민부의 군사지도자였던 김좌진이 만주사변 직전인 1931년 1월 14일 암살당함으로써 군사적 리더십에 공백이 발생하여 군대 편성과 군사적 리더십이 즉각 형성되지 못하였다. 김좌진 별세후에 북만주의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은 한족총연합회와 동빈현주민회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 독립당을 창당했으나, 이것은 만주침략 2개월 전인 1931년 7월의 일이었다. 후에 서둘러 장정을 모집하여 1931년 11월에야 군대가 편성되었으나 다른 부대보다 약간 뒤늦은 것이었다. 그리고 1934년 중국 관내로 넘어가면서 해체되었으나 짧은 항일전 기간에 쟁취한 대승선들은 경탄할 만한 성과였다. 위의 책 313~316
참고문헌
신용하 저, 한국 항일독립운동사연구, 경인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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