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가톨릭(카톨릭) 순교사 : 18-19세기 중심으로(The martyrology of the Catholic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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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후기 가톨릭(카톨릭) 순교사 : 18-19세기 중심으로(The martyrology of the Catholic in the Joseon Dynasty)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1. 연구방법

Ⅱ. 순교의 과정
 1. 신해박해(辛亥迫害, 1791)
  1.1. 중국의 상황
  1.2. 조선의 상황
   1.2.1. 제사문제
   1.2.2. 정치 문제
 2.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
 3. 을해교난(乙亥敎難, 1815)
 4. 정해교난(丁亥敎難, 1827)
 5. 기해박해(己亥迫害, 1839)
 6.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
  6.1. 철종 통치기의 부흥
  6.2. 대원군과 병인박해

Ⅲ. 나가는 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름에 먹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가히 악마적인 발상이라고까지 평가할 수 있겠다. 침략과 정복을 통해서라도 기독교를 받아들이도록 해달라는 소고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김양재는 그러한 비판이 편협하다고 반론하며, 몇 가지로 천주교를 변증한다. “첫째, 천주교가 한국에서 행한 선교 방법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일반적으로 사용한 선교 방법이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인도 등지에서는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는 등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회가 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둘째, 개신교가 선교를 시작할 무렵과는 시대적인 상황이 다르다. 셋째, 천주교에서는 한국인들이 선교를 서두르고 앞장을 섰다는 점이다. 넷째, 붕당의 정쟁과 어쩔 수 없이 관련을 맺게 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김영재, 『한국교회사』, 62.
어쨌든 아무리 완고한 조선이라고 해도 세계적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1873년 대원군이 하야하고,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다시 1884년 미국과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더 이상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히 천주교의 교세는 점차 회복되었다. 그리고 1886년 6월 4일 프랑스는 조선과의 조약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허락받았다. 1891년 새로운 금교령이 포고되긴 했으나, 과거처럼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독교는 조선 왕국 전역에 자유롭게 전파되도록 허용하며,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기독교 목회자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고 전파할 자유를 갖는다. 그들이 또한 교회, 대학, 그리고 병원을 세우고 건축할 것을 허락하며,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다는 이유로 어떤 조선인이 고문 혹은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되며, 어떤 개종자들도 자신들의 새로운 신앙에 따른 종교 예식을 금지당해서도 안 되며 …… 지방 관리들 혹은 어떤 개인들이 극심한 형벌로 어떤 조선 그리스도인들 혹은 그들의 가족을 못살게 굴거나 혹은 해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Ernest Oppert,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 with an Account of Its Geography, History, Productions, and Commercial Capabilities (London: Sampson, Low, Marston, Seale, and Rivington, 1880), 323-24.
Ⅲ. 나가는 말
지금까지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봤다. 선조들의 아름다운 순교의 현장을 봤을 때, 오늘날 가톨릭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박해의 길을 걸었던 과거와 달리, 여러 면에서 ‘좋은 이미지’를 쌓고자 노력하듯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과의 대화는 중요하다. 비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함께해야 한다. 비-그리스도인이든 타종교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제사를 허용하고, 타종교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등의 모습은 그들의 선조가 남긴 유산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에 대해서는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기에, 문제제기만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해야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가톨릭은 우리와 다른 집단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형제라는 점이다. 다르다고 해서 이단시 해선 안 된다. 어쨌든 그들의 피가 있었기에 지금의 한반도 복음화가 가능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마지막은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의 말로 마무리해야겠다. “본질엔 일치를, 비본질엔 자유를, 모든 것엔 사랑을.”
Ⅳ. 참고문헌
-직접 인용 자료
김명혁. 『한국교회와 제사문제』서울: 도서출판엠마오, 1985.
김영재. 『한국교회사』서울: 이레서원, 2004.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안철구. 『한국천주교 200년』서울: 세문사, 1983.
이원순. 『한국교회사의 산책』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8.
이충우/전대식. 『우리 신앙유산 역사기행』 서울: 사람과 사람, 2005.
조광. 『조선후기 천주교사 연구의 기초』서울: 경인문화사, 2010.
____. 『조선후기 사회와 천주교』서울: 경인문화사, 2010.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대교구사』서울: 천주교 서울대교구, 2011.
-재인용 자료
김우겸. “한국교회와 제사문제” 감리교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6.
Dallet, 『韓國天主敎會史 中』안흥렬/최석우 역. 서울: 분도출판사, 1979.
『순조실록』
『정조실록』
Charles Allen Clark. Religions of Old Korea. New York: Fleming Revell Co., 1932.
Ernest Oppert.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 with an Account of Its Geography, History, Productions, and Commercial Capabilities. London: Sampson, Low, Marston, Seale, and Rivington, 1880.
Harry Rhodes, ed.,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1884-1934. Seoul: Chosen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1934.
Joseph Chang-mun Kim and John Jae-sun Chung, ed. Catholic Korea Yesterday and Today. Seoul: Catholic Korea Publishing Co., 1964.
Laurent Youn. Mission of Korea and Formosa. New York: The American Press, 1947.
William Elliot Griffis. Corea: The Hermit Nation. New York: Charles Scribners's Sons,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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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09
  • 저작시기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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