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진실성에 대하여 (노자의 언어관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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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언어의 진실성에 대하여 (노자의 언어관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언어 지식과 언어 이해

Ⅱ. 노자의 언어관
 1. 진리와 언어의 관계
 2. 지식과 언어의 관계

Ⅲ. 도덕경의 음미
 1. 行不言之敎 (제2장)
 2. 唯之與阿相去幾何 (제20장)
 3. 希言自然(제23장)
 4. 知者不言 言者不知 (제56장)

참고 문헌

본문내용

도둑이 아니라는 식이고, 소위 지도자가 지도를 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일일이 예거할 필요도 없이 말로 상반되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는 하나인데 우리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보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한 쪽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다른 한 쪽을 미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똑 같다.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미워할 수도 없고, 미워하는 것은 깊은 의식에서의 사랑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똑같은 논의도 극히 간단히 그 반대의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모든 논리적 논의는 그 반대의 것으로 계속 바뀌어 왔다. 하느님에 관하여 증명하려고 하는 어떠한 것이든 하느님을 반증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모든 논의는 그 자체에 대립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논의라고 하는 것은 단지 게임에 불과하다. 논리라고 하는 것은 식자들이 가지고 노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유능한 변호사는 같은 사건에 대해서 어느 편을 위해서도 변론하고 또 이기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볼 때 혹은 너무 언어에 집착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많은 사물을 대립적 관계로 구분하고 진실로 그런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는 극복해야 할 형식 논리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된다.
3. 希言自然(제23장)
이는 들을 수 없는 말이 제 본래 모습이며, 큰 소리로 떠드는 말은 곧 끝장이 난다는 뜻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정말로 혼동 없이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언어적일 필요는 없다. 만일 그것이 언어적이라면 그것은 오해될 소지도 있고, 천박한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때로는 두 사람이 침묵 속에 앉아 손을 맞잡고,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정숙 속에 만나 융합한다. 논의, 토론이라는 것은 머리와 머리 사이의 일이지만, 합일이라는 것은 실존과 실존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식인들, 지도자들은 무엇인가 큰 소리로 말해야만 한다. 그들은 그들의 풍부한 지식을 증명하고, 혹은 야심적인 포부를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큰 소리로 외칠 아무런 지식도 그리고 아무런 포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안으로 만족해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에 충실하고 자기 자신만을 주시하므로 크게 외칠 필요도 없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도 심오하여 결코 말로 표현될 수 없다.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은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깊이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도처에서 떠들어 대는 말소리로 귀가 아플 지경이다.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큰 소리로 떠들고 큰 활자로 외치고 있다. 말로써 시비를 가리며 싸울 때, 큰 소리가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믿고 더욱 소리를 높이려 한다. 그러나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격언은 오늘날도 통하는 진리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씩씩하게 말하는 법만 가르치지 말고 그 허상과 폐단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4. 知者不言 言者不知 (제56장)
도를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으며, 도를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언어가 객관적인 것을 나타내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내면적인 것을 나타내는 데는 전혀 소용이 안 된다. 말이 내부의 경험을 전달할 수는 없다. 예수나 붓다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을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고작 사전에 실려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전은 우리가 살 수 있었던 순간의 체험을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종교는 언어를 초월한다.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내면적 현상에 대해서 언어는 역량 부족이다. 가령 사랑에 대하여 여러 권의 책을 읽는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해되어야 할 개념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지배되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사랑에 빠지는 것에 의해서만 알 수 있으며, 그 밖에 어떠한 설명에 의해서도 알 수 없다. 이를 설명한 말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노자에 의하면, 만일 알고 있다면 그것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며, 얘기한다면 그때는 잘 알지 못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노자 자신 큰 모순에 빠지게 된다. 만일 그가 알지 못한다면 어째서 이토록 엄청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가 의도하는 것은 말에 현혹되지 말고 아는 척 떠들어대는 사람에 대해서 조심하라는 것일 것이다. 오늘날도 자기 혼자만 진리를 아는 것처럼 외쳐 대는 사람이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자의 이 구절은 다시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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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16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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