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예전(禮典)음악과 비(非)예전음악 _ 비예전음악(복음적 교회음악)의 형식, 예전(예배)음악의 형식, 에토스 이론과 경배와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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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회음악] 예전(禮典)음악과 비(非)예전음악 _ 비예전음악(복음적 교회음악)의 형식, 예전(예배)음악의 형식, 에토스 이론과 경배와 찬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비(非)예전음악(복음적 교회음악)의 형식

2. 예전(예배)음악의 형식
2-1. 기독교예배의 정의
2-2. 예전음악의 형식
1) 에토스(Ethos) 이론
2) 에토스 이론과 ‘사랑의 파장’

3. 에토스 이론과 ‘경배와 찬양’
3-1. 복음적 교회음악으로서의 ‘경배와 찬양’
3-2. 예전음악으로서의 ‘경배와 찬양’

본문내용

대교회의 예배가 오늘날 현대교회의 예배형태가 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예배는 주제가 있는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제에 맞춰서 말씀과 성찬, 그리고 음악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음악 지도자나 교역자들은 이러한 예배의 주제에 맞춰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자기가 선곡한 음악과 준비된 말씀이 그 날의 예배주제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예배의 순서 하나하나는 각각의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음악 또한, 그 자체의 의미와 기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예배와 음악을 따로 분리하여 설명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예전음악은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 예배가 지향하고 있는 목적에 부합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기독교예배의 순서 하나하나가 각각의 의미와 기능을 가지게 된 것처럼 예배의 음악 또한 자체의 의미와 예배에서의 그 기능이 규정되어져야 한다.
‘경배와 찬양’도 치유음악 목회차원에서 필요한 찬양집회이다. 이 집회를 통하여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며 영적으로 방황하는 심령들에게 새로운 영적인 기쁨을 제공하여 삶에 대한 긍정적인 안목을 소유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찬양을 통하여 새로운 기쁨의 자리로 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항상 ‘경배와 찬양’의 열정 속에만 빠져 있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의 형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는 영적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경배와 찬양’의 집회로부터 얻은 이러한 영적인 기쁨이 진정한 예배로의 인도자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찬양집회는 공예배로의 과정이 되어야지 예배자체로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정적이면서 거룩하고 경건한 예배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만찬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새로이 경험하며 기억하게 하고, 에토스 이론에서 제시한 좋은 종류의 음악인, 조용하고 경건한 찬양을 통해 우리에게 보다 높은 차원의 영적인 평안과 치유의 경험을 제공하여 준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0)”라고 신앙의 점진적인 단계를 언급하고 있다. 즉, 마음으로 믿는 감성적인 단계에서 입으로 시인하는 이성적인 단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때 이성으로 판단해 보고 난 뒤에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도 알 수 없는 어느 순간에 우리의 가슴이, 우리의 감성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성도들은 이러한 구원의 감격을 항상 간직하고 기억하면서 이후로는 자신의 이성의 도움으로 성경 말씀을 통해 더욱 더 삼위일체 하나님을 깊이 알아 가기 위해 노력하여, 보다 차원 높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 성장하지 아니하고 항상 구원의 첫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 것이며,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 아니다. 모유와 부드러운 음식을 받아먹기만 하는 유아기의 신앙에서 정체되어 있는 성도가 아니라, 딱딱한 음식을 씹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해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독수리는 참새가 높은 공중으로 따라 올라갈 수 없을 만큼 하늘 높이 올라간다. 모름지기 신앙의 성장을 원하는 성도들은 더 이상 참새 신앙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라는 말씀처럼, 독수리의 날개 치고 올라가는 수준의 신앙을 갈망하고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교회성장 프로그램에서 항상 표본으로 삼으며 연구대상이 되어왔던 새들백교회의 예를 들어보자. 새들백교회의 ‘구도자예배’는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의 모델이 되어왔다. 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은 교회성장의 모델이 되는 이 ‘구도자예배’야 말로 열린 예배의 표본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적으로 새들백교회는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에 드리는 ‘구도자예배’를 통하여 많은 믿지 않는 자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데에 성공하였다. 한국교회는 여기에 혼돈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리하여 일부 성격이 급한 목회자는 ‘열린 예배’라는 이름아래 새들백교회의 ‘구도자예배’형식으로 주일예배를 시도하였으나 새들백교회와 같은 성공적인 교회성장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릭 워렌 목사가 집필한, 『새들백교회 이야기』를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교회의 ‘구도자예배’에만 관심을 기울였지, 한 페이지 정도에만 간단하게 언급된 수요일 저녁에 드리는 ‘헌신된 자’들의 예배에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 새들백교회가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구도자예배’에만 머물게 하였다면 오늘날의 새들백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도자예배’에 참석한 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훈련시켜 결국에는 교회의 핵심멤버인 ‘헌신된 자(The committed)’로 만들어, 보다 성숙되고 거룩한 헌신된 자들만이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요예배를 별도로 드리고 있는데서 새들백교회의 숨겨진 성장요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실제적으로 초대교회로부터 4, 5세기까지는 기독교회의 예배가 말씀 중심의 초신자를 위한 예배와 성만찬 중심의 결신자 예배로 구분되어 드려져 왔다. 예배의 시작은 함께 하였지만 말씀이 끝난 후에는 결신자들만이 남아 별도로 성만찬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경배와 찬양’은 우리의 가슴에 즉, 감성에 호소하는, 마음으로 믿게 하는 신앙경험이자 표현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경배와 찬양’에서 정체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지향해야 할 다음 단계는 입으로 시인하는 단계 즉,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보다 성숙된, 이성에 의하여 주도되는 경건한 예배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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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18
  • 저작시기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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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42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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