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육] 전통 율격 교육의 난맥상 _ 음보율의 이론적 타당성, 7·5조와 3음보의 관계, 7·5조의 전통 율격적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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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교육] 전통 율격 교육의 난맥상 _ 음보율의 이론적 타당성, 7·5조와 3음보의 관계, 7·5조의 전통 율격적 가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음보율의 이론적 타당성

2. 7·5조와 3음보의 관계

3. 7‧5조의 전통 율격적 가능성

본문내용

이고, 조선에는 3·4, 4·3, 4·5(제주도민요에 있음) 등이 있되 4·4나 3·4가 거의 전부.”라는 설명이나, “조선민요의 正體 4·4조이고 7·5조는 아니다.”라는 주장이 1920년대와 30년대를 거쳐 꾸준히 제기되었다. 간혹 어떤 이가 “4·4조나 8·8조는 좋아하지 않고 7·5조는 좋아한다.”는 식으로 75조에 대한 선호를 표출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75조가 재래의 율격의 변용이라는 주장은 찾아 볼 수 없다. 말하자면 김소월 당대로나 이 이후에나 75조는 일본에서 들어온 외래의 율격이고, 조선 고유의 율격은 44조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요시파 가운데 유독 김억과 같은 이가 외래의 율격인 75조에 대한 애정을 표방하며 75조로 된 시를 열정적으로 창작하고 있었다. 김억은 44조가 “朝鮮사람의 思想과 感情에 는 呼吸에 가장 갓갑은” 형식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대 우리의” 생활과 감정이 여실하게 담겨질 만한 시형(詩形)을 발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75조에 주목하였다. 75조가 보드랍고 경쾌(輕快)한 리듬이어서 어떠한 것을 물론(勿論)하고 서정적(抒情的)인 것은 다 이 형식에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대의 신문자료들을 보면 75조로 씌어진 시들에 대한 평가가 김억의 생각처럼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던 사정이 엿보인다. 최남선의 75조는 뻑뻑한 교훈적 느낌을 준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김동환의 75조 시편 가운데는 성공한 것이 별고 없고 그의 말씨와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평이 있었다. 김억의 경우는 양주동에 의해 “안서 김억의 사상의 침체와 함께 7·5조의 固定化는 실로 보는 자로 하여금 苦笑를 금치 못하게 한다.”는 혹평까지 받았다.
그에 반해 조선의 가장 자연스러운 리듬이 ‘44조’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이 율격이 지나치게 단조로운 형식이라는 지적들도 적지 않았다. 75조는 외래의 율격이라서 우리 민족의 자연스러운 호흡과 말씨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면, “누백 년 간 우리 선조의 오장육부에 침윤”되어 온 시조의 절주나 민요의 리듬은 현금(現今)의 복잡다단한 사회사상과 인간심상을 담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할 만한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김억은 75조를 새로운 조선시의 모범으로 내세운 것인데, 그의 시도는 당대에도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들에서 김소월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것은 의외이다. 김소월이 김억처럼 드러내 놓고 75조를 쓴다고 표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김소월의 시가 너무 뛰어난 나머지 75조를 이식한 시들이 지닌 어색함이 없었기 때문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김소월 당대나 이후의 시인이나 비평가들 중에 누구도 ‘75조’가 전통적인 율격이라고 생각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75조가 전통율격인 3음보격과 통한다.”는 논리는 75조로 씌어진 김소월의 시를 전통 율격으로 편입시키고 싶은 1970년대 이후 연구자들의 열망이 만들어낸 논리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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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0.20
  • 저작시기2014.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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