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그 절묘한 이중주-‘소통·참여·창의’의 문화적 원형을 찾아서 (소통과 참여의 원형으로서의 굿, 신끼와 끼, 참여의 길 찾기-풀이 중심의 문화에서 놀이 중심의 문화로, 소통과 참여는 창의의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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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굿, 그 절묘한 이중주-‘소통·참여·창의’의 문화적 원형을 찾아서 (소통과 참여의 원형으로서의 굿, 신끼와 끼, 참여의 길 찾기-풀이 중심의 문화에서 놀이 중심의 문화로, 소통과 참여는 창의의 밭이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1.1. ‘소통․참여․창의’라는 당황스러운 과제
 1.2. 생존의 세계에서 풍요의 세계로

2. 소통과 참여의 원형으로서의 굿
 2.1. 굿은 풀이와 놀이의 이중주다.
 2.2. 소통을 위한 두 가지 능력: 신끼와 끼

3. 참여의 길 찾기-풀이 중심의 문화에서 놀이 중심의 문화로-
 3.1. 다중이 참여하는 소통 문화
 3.2. 작두타기도 점복(占卜)도 놀이다.
  3.2.1. 작두타기: 놀이가 풀이를 동반하는 예
  3.2.2. 점복: 풀이가 놀이를 동반하는 예

4. 소통과 참여는 창의의 밭이다.
 4.1. 굿은 ‘창안’과 ‘공유’의 과정이다.
 4.2. ‘용하다’와 ‘장하다’

5 ‘정성’에서 ‘좋다’까지

[참고문헌]

본문내용

는 일정한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정성은 굿중이 아무런 전문성이 없이도 굿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래서 굿은 정성에 의해서 준비되고 그 문이 열린다. 사실 모든 의례에는 정성을 모으도록 만드는 기술이 존재한다. 무당이 제상이나 의상 등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유교 의례에서 제관이 음식을 진설하는 규칙 등이 그것이다.
이를 무(巫)라는 글자를 풀어보며 도식화하면 이렇다.
숨은 세계로부터 마음을 얻는 능력이 ‘신끼’이고, 드러난 세계를 무대로 몸을 쓰는 능력이 ‘끼’다. 풀이는 신끼를 통해 마음을 얻고 그것을 다시 굿중(public)과 공유하는 행위이며, 놀이는 끼를 발휘해 몸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신명(神明)에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풀이가 보이지 않는 숨은 세계 곧 신과의 소통이라면 놀이는 드러난 세계에서의 몸과 몸의 맞부딪힘이다. 그러나 신과의 소통에도 끼의 영역이 존재하고 몸과 몸이 부딪는 속된 과정에서도 신끼의 영역이 열린다. 그러므로 풀이의 과정은 어느 순간에라도 놀이로의 전환이 가능하며 그 역도 그렇다. 실제로 이 두 과정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풀이인가 하면 놀이이고 놀이인가하면 풀이다.
이렇게 풀이와 놀이가 하나 된 시간과 공간 즉 굿판을 경험한 굿중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또는 추임새는 ‘좋다’ 김영주, 앞의 책, 15-17쪽, 참조. 김영주는 ‘좋다’가 곧 ‘아름답다’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나 좀 더 광의의 의미로 절묘함에 대한 피드백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한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보자면 영어로는 good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바로 굿과 그 발음과 의미가 상통한다. 영어의 good은 그 어원이 god에 있다. 아마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성서의 기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말 굿의 유래를 터키어의 gut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는데 그 gut의 의미는 ‘행복’이다.
이다. 오늘의 일상언어로 풀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는 말이다. 의미와 재미라는 개념을 가지고 비슷한 논의를 전개한 글을 보려면 다음의 글을 참고하시길.
강준만, 「의미와 재미 사이의 갈등」, 『인물과 사상 19』, (서울: 개마고원, 2001). 342쪽 참조.
에듀테인먼트라는 신조어나 힐링캠프와 같은 예능프로에 이루어지는 정치인 인터뷰 같은 것이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추임새는 수용미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문학이나 시각예술에서와는 달리 공연예술에 있어서는 피드백이 즉각적이며 지속적이며 반복적이다. 달리 말하면 행위에 대한 해석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며 행위자의 다음 단계는 이 즉각적인 해석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지점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데 이러한 유동성과 역동성 그리고 즉흥성의 여지는 이미 풀이와 놀이의 구조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앞서 필자는 앞에서 ‘놀이에서 출발했지만 어느덧 풀이가 되고 종국엔 그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끼와 신끼의 협동’이 이루어지는 이 지점을 ‘절묘’라 하고 일원적인 미적 범주로 제시한 바 있다. 조동일은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의 ‘융합’과 ‘상반’ 관계를 살펴 문학의 네 가지 기본적인 미적 범주인 숭고·우아·비장·골계를 이끌어낸다. 조동일, 「한국문학의 양상과 미적 범주」, 『한국문학 이해의 길잡이』, (서울: 집문당, 1996).
여기에서 융합에 해당하는 범주가 ‘숭고와 우아’인데 이 개념이 변증법적인 합을 말하는 것이라면 절묘는 역설적인 긴장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이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개념이 굿에서의 풀이와 놀이라 할 때,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마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말하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의 관계와도 같다. 양자역학에서는 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어느 범위 내에서는 입자의 측면에서 보고, 다른 범위 내에서는 파동의 측면에서 본다. 여러 물리적 양을 측정한 결과가 반드시 확정된 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여러 값이 각각 정해진 확률을 가지고 얻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시적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고,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에는 불확정성원리가 성립한다. [출처] 네이버 백과
소통을 시도할 때 풀이의 관점에 서면 공유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며 놀이의 관점에 서면 풀이의 내용이 희미해진다. 따라서 이 두 방향이 일치하는 지점을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며 따라서 이 지점은 융합이 아닌 양 방향이 긴장을 이루는 협동의 지점이며 ‘유동성’을 지닌다. 절묘함이 지니는 이 ‘유동성’이 바로 칙센트미하이와 맥컬룬(John MacAloon)이 말하는 흐름 또는 몰입(flow)이 발생하는 지점이며 빅터 터너, 『제의에서 연극으로』, 이기우김익두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1996), 93쪽 참조.
, 신내림 또는 신명을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깊은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참고문헌]
강준만, 「의미와 재미 사이의 갈등」, 『인물과 사상 19』, (서울: 개마고원, 2001)
김선풍, 『한국축제의 본질』, (서울: 국학자료원-관동민속학 제3집, 1998)
김열규, 『엔터테인먼트』, (서울: 아이디얼북스, 2008)
김영주, 『신기론으로 본 한국미술사』, (서울: 나남신서, 1992), 20쪽~30쪽
김택규, 『한국농경세시의 연구-농경의례의 문화인류학적 고찰』, (경북: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민족문화연구총서11, 1991)
리프킨, 제러미, 『유러피언 드림』, 이원기 옮김, (서울: 민음사, 2005)
임선하, 『창의성에의 초대』 (서울: 교보문고, 1996)
조동일, 「한국문학의 양상과 미적 범주」, 『한국문학 이해의 길잡이』, (서울: 집문당, 1996).
콕스, 하아비, 『바보제』, 김천배 옮김, (서울: 현대사상사, 1973)
터너, 빅터, 『제의에서 연극으로』, 이기우김익두 옮김, (서울: 현대미학사, 1996)
하위징아, 요한, 『놀이하는 인간/호모루덴스』, 이종인 옮김, (서울: 연암서가, 2010)

키워드

굿,   무속,   풀이,   놀이,   창의,   참여,   소통,   샤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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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12.24
  • 저작시기2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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