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 절정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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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합리주의 절정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von Leibniz])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생애와 저작

2. 인식론
 2.1. 방법론과 인식론
 2.2 본유관념과 인식의 원리
 2.3 모순율과 충족이유율
 2.4 진리의 종류
 2.5 경험과학

3. 라이프니츠의 존재론
 3.1 ‘단자’라는 실체
 3.2 인식의 원리와 세계창조의 원리
 3.3 영혼과 육체

4. 라이프니츠의 실천철학
 4.1 도덕의 가능성과 도덕 법칙
 4.2 변신론
 4.3 선과 악

5. 비판

본문내용

장 선한 세계도 악을 내포하게 된다.] 라이프니츠는 창조자가 악이 없는 피조물을 창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창조활동을 중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이 포함되어 있는 어떤 것을 만든 것은 창조자가 가장 좋은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명제를 분명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 명제는 증명될 수가 없으며, 둘째는 악이 보다 더 큰 선에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 부분의 불완전성은 전체의 보다 더 큰 완전성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악은 죄 안에서 성립된다. 죄는 선의 절대적인 조건으로서만, 하느님에 의해 허용된다. 그러나 필연적인 것의 원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다음으로 선한 것의 원리>에 따른다. 즉 하느님은 가장 선한 것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였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인간은 윤리적인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악을 소위 자유의 대가로서 허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악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는 하느님이 아니라, 선을 행하도록 얻은 자기의 자유를 남용하는 선택을 한 자에게 있다. 이러한 대결 전체를 꿰뚫고 있는 근본사상은,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보다 선이 더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여기서 매우 알맞은 심리학적인 관찰을 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악은 언제나 과장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감사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선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고, 사람들은 어쩌다 불행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며, 또 나쁜 경험을 통해 쉽사리 비참해지고 어두운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는 선이 더 많으냐 악이 더 많으냐 하는 물음에 대해 중요한 대답을 해주는 것은, 일종의 특별히 윤리적인 평가, 즉 성이 그 질에 있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악을 능가한다고 하는 통찰이다. 비록 나쁜 사람의 수가 착한 사람의 수보다는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의 악 전체보다 뛰어나다.
5. 비판 조지 맥도널드 로스 저 , 문창옥 역, 『라이프니츠』, 시공사, 156쪽
그의 변신론이 신학적으로는 옳을지 모르나, 자연적인 재해, 불행, 질병, 잔혹, 가는 등과 같은 상식적인 경험을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낙관론을 사실상 그릇된 믿음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잔인하고 사악한 자기 만족적 착상으로 간주할 것이다. 볼테르의 캉디드는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캉디드는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믿는 순진한 청년이었는데 우여곡절을 겪은 후 자신의 운명이 왜 이렇게 부조리한가를 사색하다가 가장 지혜로운 행위는 자기 밭을 가꾸는 것,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이 지혜의 비결이다는 결론을 맺으며 라이프니츠를 비판한다.
모나드론에서의 비판점은 모나드의 내부 역학과 지각의 단계적 구별이라고 하는 두 영역이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이 두 분야를 개념론적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도 존재하기는 한다. 라이프니츠는 때때로 개념들이 스스로 실재화 되려고 경쟁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모나드의 역동성을 해석하는 데 출발점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라이프니츠가 여러 차례 개념과 이념은 행위 하지 않고 정신만이 행위 한다고 강조한 사실과 모순된다.
칸트는 라이프니츠가 형이상학을 인식 가능성의 조건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고 이론적독단적인 방법으로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초감각적인 것으로 진행하는 학문으로 전개시켰다고 비판하였다. 그것은 모든 인식을 단순한 이성개념 위에 세우려 하는 ‘미궁’에 빠지게 되었고 예정조화는 ‘철학이 생각해낸 것 가운데 가장 기묘한 허구’라고 비판하였다.
헤겔은 라이프니츠를 절충주의자로 간주하고 그의 철학이 체계가 없음을 비난한다. 또 모나드의 다양성에 증명되지 않은 절대적 통일성을 대립시키고 이것을 신의 개념 속에서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의 철학에 대해 결정론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가 주장한 단자론은 완전 개체 개념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단자론에서 “단자 하나하나는 전우주를 반영한다. 따라서 단자 하나하나는 우주에 있어 존재하고 발생하는 모든 사상에 관한 관념들을 그 자체 안에 가지고 있다. 모든 단자들의 모든 경험은 그 단자 자체에 관하여는 완전히 자발적으로 그러나 다른 존재들에 대하여는 완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그 단자의 생에서 일어난다.“ 고 말했다. 완전 개체 개념이란 개념의 내포가 극대화됨으로써 거기에 포섭되는 대상이 오직 하나 밖에 없을 때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의 개념에는 알렉산더 한 사람만 포섭되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 개체 개념은 결정론으로 귀결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개체에 대한 모든 판단들이 분석적이며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개체 개념 안에 그 개체의 술어 개념이 이미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아르노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라이프니츠가 말한 각 개체 개념은 그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신은 자유롭게 아담을 창조했었을 수도 또 자유롭게 아담을 창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아담을 창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가정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인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인류에게 일어날 모든 일들은 운명 이상 가는 필연에 의해 일어났었고, 또 일어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개체 개념은 그가 얼마만큼의 자손을 가질 것인지를 포함하며, 또 그 자손들 각각의 개체 개념은 자신들이 앞으로 할 모든 일들을 포함할 것이며, 도 그 자손의 자손들 모두를 자신들의 개념 안에 포함할 것이다.
*참고문헌
시공사, 조지 맥도널드 로스 저, 문창옥 역,「라이프니츠」
한길사, 오트프리트 회페, 김석수외 역, 「철학의 거장들2」
UUP, 라이프니츠 저, 배선복 역, 「철학자의 고백」
을유사, 스털링 P.램프레히트 저, 김태길 외 역, 「서양철학사」
이문사,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저, 강성위 역, 「서양철학사(하)」
철학과 현실사, 배선복 저, 「라이프니츠의 삶과 철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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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5.07
  • 저작시기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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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66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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