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분석과 의의 중심으로 - 고산 윤선도<견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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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작품분석과 의의 중심으로 - 고산 윤선도<견회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서 론



제 1 장 생애



제 2 장 작품 분석
2.1. 현대어 풀이
2.2. 배경 분석과 의의



결 론

본문내용

제5수>는 <제4수>에서 부모를 언급함과 같이 계속해서 부모님을 통해 임금에 대한 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금 향한 뜻은 ‘하늘’이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자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임을 암시한다.
2.2. 배경 분석과 의의
당대 작품의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왕조실록에서의 고산선생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광해8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 이이첨의 횡포를 상소해서 함경도 경원에 유배되었던 그의 정치일대기의 첫 시작이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건이다.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해 110 08/12/21(정사) / 진사 윤선도의 상소문
진사(進士) 윤선도(尹善道)가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임금이 아랫사람들을 통제하는 방도로는 권강(權綱)을 모두 쥐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도 이르기를 ‘오직 임금만이 상도 줄 수가 있고 벌도 줄 수가 있다.’고 하였으며, 송(宋)나라의 진덕수(眞德秀)도 말하기를 ‘임금된 자가 어찌 하루라도 권위의 칼자루를 놓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뜻깊은 말입니다. 신하된 자가 참으로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쥐게 되면 자기의 복심(腹心)을 요직에 포열(布列)시켜 상과 벌[威福]을 자기에게서 나오게 합니다. 설령 어진 자가 이렇게 해도 안 될 일인데, 만약 어질지 못한 자가 이와 같이 한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훌륭하신 상께서 위에 계시어 임금과 신하가 각기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있으니 이러한 자가 없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신이 삼가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의 하는 짓을 보니 불행히도 이에 가까우므로 신은 삼가 괴이하게 생각합니다.
신은 하찮은 일개 유자(儒者)로서 어리석고 천박하여, 비록 도성 안에 살지만 외방에 사는 몽매한 백성과 다를 바가 없으니, 조정의 일에 대해서는 백 가지 가운데 한 가지도 알지를 못하지만,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가지고 성상께 우러러 진달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유념해 주소서.
…중략…
신이 조정의 격례(格例)를 알지 못하여 말이 대부분 차서가 없으니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였다. 그 뒤에 양사의 합계로 전교하기를,
“윤선도를 외딴 섬에 안치(安置)하라. 윤유기(尹惟幾)는 윤선도와는 전혀 다르니 단지 관작을 삭탈하기만 하여 시골로 내려보내라.”
이와 같은 역사적 사료에서 알 수 있듯이 고산선생은 당시 권신이던 이이첨 등의 죄를 규탄하던 병진소(丙辰疏)를 올림으로써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게된다. 견회요는 당시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간 고산선생이 30세때 지은 작품이다.
작품의 창작 배경과 함께 연시조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견회요>의 시작은 작자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슬프거나 즐겁거나, 남들의 말이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하거나 간에 자신의 신념에 맞도록 자신의 일을 갈고 닦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상소를 올림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다했다는 선생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한 병진소를 올림으로 인해 유배를 오게 되었으니 임금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으나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일을 하였으니 마음이 어리석다며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나 그것은 임금을 위한 일이었으며, 누가 어떤말을 하든지 임금께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작자가 귀양 와 있는 추성진호루 밖에 흐르는 시냇물을 제재로 하여 시냇물이 울면서 흐르며 밤낮으로 그치지도 않음에 자신의 마음을 빗대어서 우는 것처럼 표현하였고, 이것은 곧 임금을 향하여 쉬지 않고 울며 지내는 자신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길고 긴 산, 멀리멀리 흘러가는 물, 울고 가는 외기러기에 작자의 모습을 투영시킴으로써 어버이를 그리는 정을 드러내며 이는 그대로 이어져서 충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사대부의 기본덕목인 충을 잘 나타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를 연시조의 관점에서 분석하지 않는다면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참뜻을 ‘효(孝)와 충(忠)의 일치’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연시조의 관점에서 상세히 분석한다면 계속해서 ‘임’이 등장하거나 작품의 말미에 ‘불효(不孝)를 통해 결론적으로 ‘충(忠)’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견회요>는 연시조의 아름다움 속에서 볼 수 있는 주제의식과 더불어 한결같은 작품 속 작자의 모습과 절의가 드러난다. 또한 임금을 향한 충절이 작품전체에 흐르고 있음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결 론
이처럼 고산선생의 <견회요>는 당대 어지러운 붕당정치의 현실 속에서도 나라를 염려하며 임금을 향한 충(忠)을 잃지 않았던 고산선생의 정신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고산선생의 졸기는 ‘현종 <개수실록> 12년(1671)’에 ‘윤선도가 죽었다.’ 단 한 문장이다. 당대 다른 인물들의 졸기에 비하면 부족할지 모르나 결코 선생의 삶만은 초라하지 않았다. 선생은 옳다고 여긴 가치나 신념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고, 이치를 숭상했으나 말의 기교는 숭상하지 않았다. 또한 선생의 수준 높은 인식의 결과로 인해 아직까지 후대에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견회요>에서 고산은 자연을 제재로 하여 ‘절대자’, ‘최선의 것’, ‘최고의 경지’등을 의미하였고, 이는 작품전체에 흐르는 ‘충(忠)’을 부각시키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우리는 고산선생이 살아계실 때의 어지러운 붕당정치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관복이 바뀌었고, 관직도 달라졌으나 파벌은 존재하고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고산선생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셨던 사대부의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시기다.
■ 참고문헌
· 원용문, 『윤선도문학연구』, 국학자료원, 1989.
· 이용숙, 『고산 윤선도의 시가 연구』, 원광대학교 , 1986.
· 문영오, 『고산윤선도연구(孤山尹仙道硏究)』, 태학사, 1983.
· 이재수, 『윤고산연구(尹孤山硏究)』, 학우사, 1955.
· 박준규, 『유배지에서 부르는 노래』, 중앙M&B, 1997.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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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8.21
  • 저작시기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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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7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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