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라(잭 브래드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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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라(잭 브래드포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내용 요약
2. 삶의 적용

본문내용

마찬가지이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패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가? 물론 하나님의 시선에선 모두 같은 죄인이고 사랑하는 자녀이겠지만,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특별히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회의 속에서 성령의 임재와 내주, 즉 능력과 인격의 각기 다른 차원을 짚어준다는 것은 좋은 가르침으로 보인다. 능력은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개발하는 것보다 순간적으로 충만하게 임해야 한다. 하지만 각 개인을 위한 인격의 변화는 고유한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스스로 책임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자신의 노력도 요구된다. 이 두 가지 차원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각 요소를 모두 추구하며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한다. 신앙에서도 그와 같은 성향이 적용되어 내면의 변화보다는 외적인 능력과 기적을 추구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다. 기도원이나 집회, 찬양콘서트 등을 찾아다니며 소위 말하는 ‘한방’을 찾는다. 물론 성령께선 그렇게 한 순간에 역사하시지만 그것보다 일상에서 체험하며 교제해나갈 성령을 먼저 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다는 것은 그의 기적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내적인 일이다. 그것은 자연스레 행동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령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날 사로잡아 변화시켜 버리는 강력한 성령이 아니라, 교제를 통해 나를 성장시키시고 변화시키는 인격의 성령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또한 능력을 얻을 것이다. 기도원과 집회, 찬양콘서트를 가서 새 힘을 공급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우리의 삶 전반에서 성령님과 함께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해야겠다.
2.2. 성령님만을 의지: 개방된 인격적 신앙
저자는 안정된 주류인 자유주의 신학의 틀을 깰 것과 전통의 우상화를 막아야 함을 주장한다. 물론 한국의 상황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은 안정된 주류인 보수신학의 틀을 깨야 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혹은 복음주의 중 어떤 것을 택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신학의 사조를 절대화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는 전통을 우상화 시키지 말라는 두 번째 말과 일맥상통한다. 전통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절대’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이다.
IVF 사역 중 믿음이 약한 성도들에게 무조건 성령을 받으라고 다그치며 그들의 말은 듣지도 않던 리더. 결국 사람들은 상처 입고 떠나갈 뿐이었다. 그와 같은 폐쇄적 신앙은 결국 율법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이 믿는 어떤 것을 절대화 시켜서 그 구조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미숙하거나 이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편협하고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성령님만 의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통성으로 기도하고 방언하며 기도원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령께선 인격이시기 때문에 그와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 그에게 인도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일률적인 것이 아니다. 성령께선 각자에 맞게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인도하신다. 그 음성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이 성령에 의지하는 것이지, 자신의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곧 길이요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
2.3. 방언의 중요성
하나님의 성회에서는 방언을 성령침례의 육체적 증거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주장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방언이 성령침례의 증거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저자의 말대로 성령침례의 증거는 내적 확신이지 어떤 증거를 통해 확신해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증거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방언의 유익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영산 조용기 목사는 방언을 표적방언과 은사방언으로 구분하며, 성령침례의 증거로 주어지는 표적방언에 머물지 말고 그것이 계속되기 위해 은사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용기, 『성령론』 (서울: 서울말씀사, 1998), 166-169.
증거로서의 방언보다는 그것이 은사로서 사용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저자는 방언에 대해 “성령이 우리를 통해 기도하게 하시는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가 자신의 방법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지배하시고 기도하게 하심을 의미한다.
성령께선 인격이시다. 다시 말해 지정의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방언은 감성적이고 의지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성적이지 않은 것 아닌가? 왜 유독 성령께선 방언을 통해서만 -어쩌면 비인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을 배제하시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말’의 중요성 때문으로 보인다. 말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것으로 영적인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조용기, 『4차원의 영성』 (서울: 교회성장연구소, 2005), 44-45.
현대 신학자 폴 틸리히(P. Tillich)는 말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그것이 계시의 유일한 매개체임을 강조한다. P. Tillich, 『조직신학1』 유장환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1), 203.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모든 요소는 타락했고 그 중 하나가 언어의 타락이다. 독일의 예술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바벨탑 사건 때, 인간의 언어는 타락하여 최초의 언어인 ‘아담의 언어’를 잃고, ‘바벨의 언어’로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W. Benjamin,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최성만 역 (서울: 길, 2008), 88-95; 참조. 진중권, 『현대미학 강의』 (서울: 아트북스, 2003), 22-23.
성령께서는 방언이라는 특수한 방법을 통해서 언어를 회복시키시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영적 세계의 능력은 말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방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회복된 하늘의 언어라는 것이고 우리는 방언기도를 하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방언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초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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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6.02
  • 저작시기2011.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03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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