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유하지 못한다. 물신이 지배하는 시대에 태어난 우리에게 물질은 악하다. 물질을 사용하는 의도에 대해 관심 하지 않고 다만 돈 그 자체로 인해 자격지심이 생기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흐트러진다. 이런 차원에서 청부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질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김동호 목사가 이야기했던 하나님의 몫을 떼어 두는 것, 즉 십일조와 구제의 헌금에 대한 계명에 대해서 집중하자면, ‘계명’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일상생활의 법이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질 가운데 하나님의 몫을 정확히 떼는 것보다 후하게 떼어 주님께 드리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몫을 정확히 떼는 것보다 후하게 떼어 그들을 돕기를 권면하는 것이 보다 불공평하고 불평등함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흐름의 원칙을 아름답게 준수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자칫 김동호 목사의 주장에만 따르면 몫 가르기에 대한 율법을 지켰으므로 스스로 의로운 바리새인들이 생길 위험성이 있으리라고 본다.
2) 김동호 목사가 주장하는 청부론은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결국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 아닌 돈을 목적으로 두게끔 하며 그것을 정당화해주고 있다. 결국 하나님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끌어내려 진다. 성서가 돈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돈의 사용에 있어서 성서는 결코 십일조를 낸 이후의 돈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청부론이 주장하듯이 십일조 이외의 나머지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사용함에 있어서 결코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사용될 수 없다. 주님은 헌금과 구제를 ‘최대’가 아닌 ‘최소’로 요구하신다는 말로 최소 이외의 것이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최소를 넘어 최대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주장일 것이다.
김영봉 목사가 주장하는 청빈론은 자발적 가난을 이야기 한다. 자발적 가난을 통해 세상의 가난을 치유하는 것이야 말로 물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넘치도록 많은 재산의 일부로 세상의 가난을 치유하는 것과, 스스로 가난해 짐으로 세상의 가난 속으로 뛰어들어 가난을 치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청부론과 청빈론 모두가 공통되게 주장하는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주장은 그 소유 전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김동호 목사가 이야기했던 하나님의 몫을 떼어 두는 것, 즉 십일조와 구제의 헌금에 대한 계명에 대해서 집중하자면, ‘계명’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일상생활의 법이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질 가운데 하나님의 몫을 정확히 떼는 것보다 후하게 떼어 주님께 드리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몫을 정확히 떼는 것보다 후하게 떼어 그들을 돕기를 권면하는 것이 보다 불공평하고 불평등함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흐름의 원칙을 아름답게 준수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자칫 김동호 목사의 주장에만 따르면 몫 가르기에 대한 율법을 지켰으므로 스스로 의로운 바리새인들이 생길 위험성이 있으리라고 본다.
2) 김동호 목사가 주장하는 청부론은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결국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 아닌 돈을 목적으로 두게끔 하며 그것을 정당화해주고 있다. 결국 하나님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끌어내려 진다. 성서가 돈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돈의 사용에 있어서 성서는 결코 십일조를 낸 이후의 돈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청부론이 주장하듯이 십일조 이외의 나머지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사용함에 있어서 결코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사용될 수 없다. 주님은 헌금과 구제를 ‘최대’가 아닌 ‘최소’로 요구하신다는 말로 최소 이외의 것이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최소를 넘어 최대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주장일 것이다.
김영봉 목사가 주장하는 청빈론은 자발적 가난을 이야기 한다. 자발적 가난을 통해 세상의 가난을 치유하는 것이야 말로 물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넘치도록 많은 재산의 일부로 세상의 가난을 치유하는 것과, 스스로 가난해 짐으로 세상의 가난 속으로 뛰어들어 가난을 치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청부론과 청빈론 모두가 공통되게 주장하는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주장은 그 소유 전부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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