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가 받은 일제 말기의 갈등문제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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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기독교가 받은 일제 말기의 갈등문제에 관한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전쟁하의 일본기독교
2.1. 종교단체법의 성립
2.2 일본기독교단의 설립
2.3. 일본 기독교의 수난과 저항
 1) Holiness
 2) 救世軍
 3) 無教会
 4) 灯台社

3. 일제 말기의 한국 기독교의 저항과 수난
3.1. 일제 말기 국가의 성격
 1)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국가신도’의 종교성 검토
 2) 국가신도에 대한 기독교의 저항
3.2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
 1) 황국신민화 정책
 2) 일제하 한국에서의 종교단체법

4.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손승호 「일제말 한국장로교회와 해방후 죄책고백에 관한 연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07), 20.
이 법률의 기본이 되는 ‘인가제’의 특성상 일제는 종교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제 16조부터 제 18조에 여실히 드러난다.
“제16조 종교단체 또는 종교교사의 행하는 종교교의선포 또는 의식집행 혹은 종교상 행사가 안녕질서를 방해하며 또는 신민된 의무에 배치될 때는 주무대신이 이를 제한 또는 금지하며 교사의 업무를 정지하고 혹은 종교단체의 설립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
제17조 종교단체 또는 그 기관의 재직자가 법령 또는 교규·종제·교단규칙·사원규칙을 위반하며 기타 공익을 해할 만한 행위를 행한 때는 주무대신은 이를 취소하고 정지 또는 금지하며 또 기관에 재직자의 개임(改任)을 명할 수 있다. 교사가 법령을 위반하며 기타 공익을 해할 만한 행위를 행한 때는 주무대신은 그 업무를 정지할 수 있다.
제18조 주무대신은 종교단체에 대하여 감독상 필요한 경우에는 보고를 징수(徵收)하여 실황을 조사할 수 있음” “종교단체법”, 김승태 편역, 『일제강점기 종교정책사 자료집- 기독교편, 19101945』(서울: 한국 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손승호 「일제말 한국장로교회와 해방후 죄책고백에 관한 연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07), 20. 재인용
즉 조선총독부는 제16조와 제17조에 의거하여 한번도내 종교단체의 존폐,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자격 정지 및 박탈에 대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18조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는 인제든지 종교단체를 감시, 감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종교단체의 살생권까지 장악”하는 강력한 종교통제의 권한이었고 조선 총독부는 이를 한국종교탄압의 근거로 사용하였다. 손승호 「일제말 한국장로교회와 해방후 죄책고백에 관한 연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07), 20.
4. 결론
일본의 파시즘기에 있어서 종교정책은 정치적 권위와 종교의 갈등이 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천황제 정치체제 속에서 종교적 신앙체계의 갈등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전쟁하에서의 일본기독교단의 성립은 국가권력에 대한 교회의 노예이고 의존이었다.
즉, 그것은 경제적 뿐만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있어서도 자립할 수 없고 허상한 모양만의 교회를 옹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노예가 되어 가는 교회의 본질이 보였다고 생각한다. 金田隆一, 『時下キリストの抵抗と受難』(東京: 新出版者, 1985), p.210.
그와 달리 저항자나 수난자는 개인적인 차원의 행동이었고 그들이 속한 교단, 교회전체로서는 국가 체제에 대항하지 않았다. 국가권력의 문제가 된 저항자, 수난자들의 사상은 1. 천황과 기독교 어느 쪽이 위인지라는 기독교적 주권사상. 2. 재림시에는 천황도 신판을 받는가라는 재림사상. 3. 반전론과 평화사상. 4. 국제적 제휴이었다. 澤正彦, 『日本キリスト史』(東京: 草風館,2004), 124.
이러한 경향은 이른바 일제 말기로 이행하면서 더욱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났고, 일본 내 기독교와 천황제와의 관계 모형이 한국기독교에도 그대로 전이되는 확산과정을 보이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조선 총독부는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여 한국의 물자와 인력의 수탈을 극대화하고, 한편 일제의 ‘종교단체법’을 통해 종교에 대한 실제적인 통제가 가능하게 된 조선총독부는 종교중 특히 기독교에 대한 별도의 통제를 시도하였다.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일제는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일제말기의 조선총독부와 한국교회와의 갈등구도는 총교신념과 총교신념 간의 갈등인의 ‘교교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서정민, 『한일 기독교 관계사 연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한국기독교사연구회,「하국기독교의 역사Ⅱ」서울: 기독교문사, 1991
基督大百科事典10, 서울:文社, 1983
日本基督史編集委員, 『日本基督史』東京: 日本基督出版部, 1967
土肥昭夫,『日本プロテスタントㆍキリスト史』東京: 新出版者, 1980
澤正彦, 『日本キリスト史』東京: 草風館,2004
金田隆一, 『時下キリストの抵抗と受難』東京: 新出版者, 1985
原誠『家を越えられなかった』東京:日本キリスト出版局, 2005
-논문
구라타마사히코 「일제하 한국기독교와 일본의 천황제와의 갈등간계에 대한 역사적 고찰」연세대학교 대학원, 1989
손승호 「일제말 한국장로교회와 해방후 죄책고백에 관한 연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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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1.11
  • 저작시기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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