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텍스트 면에서도 너무 많은 생략으로 설득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아쉽기는 하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귀신 이야기는 볼 수 있어도 피는 못 보기 때문에 슬래셔 무비나 하드코어 무비는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르고 본 <태극기 휘날리며>는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슬래셔 무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작품은 아닐지언정, 나에게 또 다른 느낌을 안겨 준 것이 <혈의 누>였다. 어차피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혈의 누>에 있어서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은 지극히 정적이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거나 거의 움직임이 없다. 잔혹한 장면은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면에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대한 분노까지 일어나게 만들어진다. 격동적이고 화려한 움직임이나 클로즈업으로 감정적인 면을 극대화 시킨다. 하지만 <혈의 누>에서는 필요에 의해 삽입되었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최소한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마지막 꽉 주여지는 이야기 구조 등이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번지 점프를 하다>를 좋아하는 탓에 감독에 대한 알 수 없는 신뢰였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이 영화는 누군가의 심허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서 그 강박관념을 극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적 상황은 조선시대에도 지금에 와서도 특별히 변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귀신 이야기는 볼 수 있어도 피는 못 보기 때문에 슬래셔 무비나 하드코어 무비는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르고 본 <태극기 휘날리며>는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슬래셔 무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작품은 아닐지언정, 나에게 또 다른 느낌을 안겨 준 것이 <혈의 누>였다. 어차피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혈의 누>에 있어서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은 지극히 정적이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거나 거의 움직임이 없다. 잔혹한 장면은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면에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대한 분노까지 일어나게 만들어진다. 격동적이고 화려한 움직임이나 클로즈업으로 감정적인 면을 극대화 시킨다. 하지만 <혈의 누>에서는 필요에 의해 삽입되었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최소한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마지막 꽉 주여지는 이야기 구조 등이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번지 점프를 하다>를 좋아하는 탓에 감독에 대한 알 수 없는 신뢰였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이 영화는 누군가의 심허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서 그 강박관념을 극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적 상황은 조선시대에도 지금에 와서도 특별히 변한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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