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나아오는 것일까요?
열 명의 사람들이 나병에 걸렸을 때는 사회생활도 할 수 없고 격리되어 생활했고,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기에 그들이 살아있긴 하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급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급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적극적으로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캄캄한 밤에 한 줄기 촛불과 같은 희망이 있다고 한다면 병고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병자들에게 캄캄한 밤에 촛불과 같은 희망의 빛이 비춰져서 병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병에서 치유된 나머지 9명은 병으로 힘들어하면서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것 같은 때 그토록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기는커녕 병고침이란 선물만 받고 유대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유대 사회로 돌아가는 대신에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온갖 죄악으로 인해 멀리서서 예수님을 불러야 했던 나병환자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또한 나병환자들이 몸에서 피가 나거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육체의 정욕대로 살고 있음에도 그것이 죄인지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나병에 걸린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영적인 나병에 걸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온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나병환자들과 똑같이 육체적인 병 고침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입사시험을 보는데 꼭 붙었으면 좋겠다. 우리 딸이 남자를 만나야 하는데 돈 많고 좋은 집안으로 시집갔으면 좋겠다라는 등의 육체적인 고민을 가지고 나아옵니다.
그것을 위해 나아왔다가 그것이 만족된 후에는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가 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슈퍼맨과 같이 되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병환자들이 병을 치료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장애물이 제거되어서 인생의 탄탄대로가 펼쳐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의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사모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의 초청장을 보여주십니다. 그 초청장을 가지고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초청장은 버려두고 다른 곳에 다시겠습니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문제의 해결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초청장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축제에 참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다시 돌아와 감사의 축제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열 명의 사람들이 나병에 걸렸을 때는 사회생활도 할 수 없고 격리되어 생활했고, 철저한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기에 그들이 살아있긴 하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급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급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적극적으로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캄캄한 밤에 한 줄기 촛불과 같은 희망이 있다고 한다면 병고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병자들에게 캄캄한 밤에 촛불과 같은 희망의 빛이 비춰져서 병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병에서 치유된 나머지 9명은 병으로 힘들어하면서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것 같은 때 그토록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기는커녕 병고침이란 선물만 받고 유대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유대 사회로 돌아가는 대신에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은 온갖 죄악으로 인해 멀리서서 예수님을 불러야 했던 나병환자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또한 나병환자들이 몸에서 피가 나거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육체의 정욕대로 살고 있음에도 그것이 죄인지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나병에 걸린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영적인 나병에 걸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온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나병환자들과 똑같이 육체적인 병 고침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입사시험을 보는데 꼭 붙었으면 좋겠다. 우리 딸이 남자를 만나야 하는데 돈 많고 좋은 집안으로 시집갔으면 좋겠다라는 등의 육체적인 고민을 가지고 나아옵니다.
그것을 위해 나아왔다가 그것이 만족된 후에는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가 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슈퍼맨과 같이 되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병환자들이 병을 치료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장애물이 제거되어서 인생의 탄탄대로가 펼쳐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의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사모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의 초청장을 보여주십니다. 그 초청장을 가지고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초청장은 버려두고 다른 곳에 다시겠습니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문제의 해결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초청장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축제에 참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다시 돌아와 감사의 축제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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