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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 방향으로 삶을 지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전나무나 단풍나무라는 타자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냉혹함을 넘어 처절함에 이르는 입시위주의 교육 현장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소위 ‘인성교육’이 지향하는 건강한 지향점이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입시위주의 지향점에 밀리는 현실 속에서 ‘행복’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존재를 포기하지 않고, 비인간적인 경쟁의 질서에 맞설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배태하고 있는 고유의 덕을 발휘하도록 하라!”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리고 명문대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학생들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냉혹함을 넘어 처절함에 이르는 입시위주의 교육 현장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소위 ‘인성교육’이 지향하는 건강한 지향점이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입시위주의 지향점에 밀리는 현실 속에서 ‘행복’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존재를 포기하지 않고, 비인간적인 경쟁의 질서에 맞설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배태하고 있는 고유의 덕을 발휘하도록 하라!”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리고 명문대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학생들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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