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론은 한 가지, 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희망이란, 특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란 집과 같은 뜻이었다. 이제 그 희망을 갖기 위해 서울에서 떠나게 되었다. 넓고 넓은 서울에서 여태껏 집을 갖지 못하고 살았다. 희망 없이 살았다는 말과도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제 집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것은 서울이 아니고 부천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집과 희망은 동의어인가. 나는 이미 아무것도 아니다. 족속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아브라함이라고 믿게 하려던 어머니의 간곡한 암시도 우울한 예감을 위한 변명일 뿐이다. 아브라함이라니, 나는 결코 아브라함이 될 수 는 없었다. 집을, 노모를, 어린 딸과 아내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어야 할 적금과, 밀린 월부금과 몇 분의 수당과 월급, 또는 갚아야 할 사소한 액수의 빚들과 어린 딸이 조르는 전자 장난감들. 그런 이름의 족쇄를 발목에 치렁치렁 달고서 서울을 떠다는 아브라함을 상상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끄러져 내리는 담요와 옷가지들을 다시 끌어올리면서 그는 행여 아내의 부은 얼굴과 마주칠까봐 일부러 딴 곳을 본다. 아내의 발치쯤에 녹색 나일론 끈을 열십자로 묶은 라면 박스들에 시선을 준다.
그(보퉁이마다 새겨놓은 주의문을 읽으며) 주의. 사기그릇 조심.
특히 주의. 유리 그릇!
아내(담요 속에서 신음처럼 가는 목소리로) 어디예요?
흠칫 놀라는 그.
아내어디예요?
그(안심하며) 이제 다 왔어. 조금만 참으라구. 춥지?
아내가 일어나 앉고 재채기를 해댄다.
그그것 봐, 추운데서 새우잠을 자니까 감기가 온 모양이군. 정 추우면 어머니하고 자리를 바꾸어 볼까?
아내(고개를 저으며) 견딜 만은 해요. 다 왔잖아요…‥.
(재채기를 하며) 연탄불 꺼뜨리지 말라고 부탁하셨죠?
그(초조해한 후 다른 말로 둘러대며) 그 집은 방이 커서 장롱 넣기가 수월할거야…‥.
아내(덤덤한 목소리로) 그깟 장롱이야 아무데다 넣으면 어때요…‥.
그, 낭독한다.
그장롱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맨 처음 신부를 맞아 들이고 보니 열 자짜리 장롱을 넣긴 넣어야겠는데 초라한 셋집인 탓에 도대체 방문으로 그게 들어가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새 신부의 장롱은 주인집 마루에 놓여졌다. 몇 년 안간힘으로 모은 돈이었지만 결혼식 치르고 나니 방 두 개짜리 셋집 얻는 데도 무리가 있었던 형편이었다. 그 다음 집에서는 방에 장롱을 다 들일 수 없어 네 자짜리 한 쪽과 두 자짜리 한쪽만 넣고 또 한 쪽은 어머니 방으로 넣었다. 그 와중에서 아직 새것이나 다름없는 농의 앞면에 길게 긁힌 자국이 생겨 버렸다. 그래도 아내 정성 때문에 저만큼이나 건사한 장롱이기는 하였다. 오늘 아침 새로 생긴 흠집을 알게 되면 아내는 또한번 짧은 비명을 지를 것이었다. 어쩌면 이미 보았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이제 흠집에조차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을 만큼 지쳐 있을지도 몰랐다.
아내(힘없이 웃으며) 저기 해태가 있어요. 이제 여기서부턴 서울이 아니래요…‥. (멀어져가는 해태를 보며) 안녕히 가십시오… (후렴구처럼 중얼거리며) 여기가 더 추운 것 같아. 발이 시려 죽겠어요. 여기가 더 추운 것 같아.. 발이 시려 죽겠어요…‥.
그는 담요 밑으로 손을 넣어 더듬더듬 아내의 발을 찾는다. 얼음을 만지는 듯한 차가운 감촉이 그의 손에 와 닿고, 그는 아내의 발을 문지른다. 아내의 발을, 얼음처럼 차가운 발을 녹여 주면서 그는 물끄러미 아내의 얼굴을 본다. 아내도 꺼칠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얼굴을 본다.
아내(발을 움츠리며) 이젠 됐어요.
그는 다시 담요를 다독인다. 그때, 부천시 표지판을 본다.
그어서 오십시오…‥. 부천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내(제법 기운을 차린 목소리로) 어? 소사라면 소사복숭아가 나는 곳 아녜요? 복숭아란 말만 들어도 은혜 가졌을 때 생각이 나요. 얼마나 복숭아를 먹어 댔는지. 다른 것은 다 싫고 복숭아만 먹히더라구요…‥. 그때 당신이 그랬죠. 뱃속에 든 이놈은 무릉도원에서 노닐 팔자인 모양이라고…‥.
트럭이 멈추는 소리가 난다. 가족 모두 내려 정면을 바라본다.
운전기사 트럭에서 내려 정면을 바라본다.
기사 이렇게 하여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의 한 주민이 되신 걸 축 하 드립니다.
함께 생각해 봐요
1. 제목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2. 부천으로 이사하는 것을 가나안 입성에 비유하여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가 느끼는 심정을 생각해 보자.
3. 그가 버리고 가도 되었을 물개를 챙기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4. 부천에 도착하여 아내가 복숭아 이야기를 꺼낼 때 그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자.
5. 부천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생각해 보자.
제 생각은요
1.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원미동(遠美洞)을 풀어쓴 말이다. 실패하고 재기
하려는 노력, 서울에서 한번 성공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좀 멀지만 서울의 생활을 추구하는 이주민들의 삶과 꿈을 드러내는 제목이다. ‘원미동’ 이란 힘든 삶 속의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
2. 그의 식구들이 살게 될 부처의 집은 구약성서에 묘사된 ‘젖과 꿀이 흐르 는 땅’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 하고 기도를 한 것에 반해 그는 씁쓸함과 암담함을 느낀다.
3. 이사는 곧 이별이기에, 평소 같았으면 고민 없이 버렸을 물개이지만 이사 를 가면서 떠난다는 아쉬움과 서울에서의 추억을 하나라도 더 챙기고 싶 은 마음에 챙겼을 것이다.
4. 아내는 부천의 ‘소사’라는 지명으로부터 소사에서 복숭아가 많이 나는 것 을 떠올림과 동시에 은혜를 가졌을 때 복숭아를 많이 먹었던 일을 떠올 린다. 이는 아내의 의지를 보여주는데, 이렇게라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 하려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자신들의 처지가 딱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 래서 그는 아내의 의지를 읽어내고 씁쓸해 하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5. 원미동 사람들 연작의 배경인 부천의 성격이 이 작품에 압축적으로 제시 되어있는데, 부천시 원미동은 서울에 인접해 있는 주변도시로서 존재하여 서울에서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근근이 집을 마련하여 거주하는 곳이 라는 성격이 강하다.
미끄러져 내리는 담요와 옷가지들을 다시 끌어올리면서 그는 행여 아내의 부은 얼굴과 마주칠까봐 일부러 딴 곳을 본다. 아내의 발치쯤에 녹색 나일론 끈을 열십자로 묶은 라면 박스들에 시선을 준다.
그(보퉁이마다 새겨놓은 주의문을 읽으며) 주의. 사기그릇 조심.
특히 주의. 유리 그릇!
아내(담요 속에서 신음처럼 가는 목소리로) 어디예요?
흠칫 놀라는 그.
아내어디예요?
그(안심하며) 이제 다 왔어. 조금만 참으라구. 춥지?
아내가 일어나 앉고 재채기를 해댄다.
그그것 봐, 추운데서 새우잠을 자니까 감기가 온 모양이군. 정 추우면 어머니하고 자리를 바꾸어 볼까?
아내(고개를 저으며) 견딜 만은 해요. 다 왔잖아요…‥.
(재채기를 하며) 연탄불 꺼뜨리지 말라고 부탁하셨죠?
그(초조해한 후 다른 말로 둘러대며) 그 집은 방이 커서 장롱 넣기가 수월할거야…‥.
아내(덤덤한 목소리로) 그깟 장롱이야 아무데다 넣으면 어때요…‥.
그, 낭독한다.
그장롱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맨 처음 신부를 맞아 들이고 보니 열 자짜리 장롱을 넣긴 넣어야겠는데 초라한 셋집인 탓에 도대체 방문으로 그게 들어가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새 신부의 장롱은 주인집 마루에 놓여졌다. 몇 년 안간힘으로 모은 돈이었지만 결혼식 치르고 나니 방 두 개짜리 셋집 얻는 데도 무리가 있었던 형편이었다. 그 다음 집에서는 방에 장롱을 다 들일 수 없어 네 자짜리 한 쪽과 두 자짜리 한쪽만 넣고 또 한 쪽은 어머니 방으로 넣었다. 그 와중에서 아직 새것이나 다름없는 농의 앞면에 길게 긁힌 자국이 생겨 버렸다. 그래도 아내 정성 때문에 저만큼이나 건사한 장롱이기는 하였다. 오늘 아침 새로 생긴 흠집을 알게 되면 아내는 또한번 짧은 비명을 지를 것이었다. 어쩌면 이미 보았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이제 흠집에조차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을 만큼 지쳐 있을지도 몰랐다.
아내(힘없이 웃으며) 저기 해태가 있어요. 이제 여기서부턴 서울이 아니래요…‥. (멀어져가는 해태를 보며) 안녕히 가십시오… (후렴구처럼 중얼거리며) 여기가 더 추운 것 같아. 발이 시려 죽겠어요. 여기가 더 추운 것 같아.. 발이 시려 죽겠어요…‥.
그는 담요 밑으로 손을 넣어 더듬더듬 아내의 발을 찾는다. 얼음을 만지는 듯한 차가운 감촉이 그의 손에 와 닿고, 그는 아내의 발을 문지른다. 아내의 발을, 얼음처럼 차가운 발을 녹여 주면서 그는 물끄러미 아내의 얼굴을 본다. 아내도 꺼칠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얼굴을 본다.
아내(발을 움츠리며) 이젠 됐어요.
그는 다시 담요를 다독인다. 그때, 부천시 표지판을 본다.
그어서 오십시오…‥. 부천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내(제법 기운을 차린 목소리로) 어? 소사라면 소사복숭아가 나는 곳 아녜요? 복숭아란 말만 들어도 은혜 가졌을 때 생각이 나요. 얼마나 복숭아를 먹어 댔는지. 다른 것은 다 싫고 복숭아만 먹히더라구요…‥. 그때 당신이 그랬죠. 뱃속에 든 이놈은 무릉도원에서 노닐 팔자인 모양이라고…‥.
트럭이 멈추는 소리가 난다. 가족 모두 내려 정면을 바라본다.
운전기사 트럭에서 내려 정면을 바라본다.
기사 이렇게 하여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의 한 주민이 되신 걸 축 하 드립니다.
함께 생각해 봐요
1. 제목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2. 부천으로 이사하는 것을 가나안 입성에 비유하여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가 느끼는 심정을 생각해 보자.
3. 그가 버리고 가도 되었을 물개를 챙기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4. 부천에 도착하여 아내가 복숭아 이야기를 꺼낼 때 그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자.
5. 부천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생각해 보자.
제 생각은요
1.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원미동(遠美洞)을 풀어쓴 말이다. 실패하고 재기
하려는 노력, 서울에서 한번 성공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좀 멀지만 서울의 생활을 추구하는 이주민들의 삶과 꿈을 드러내는 제목이다. ‘원미동’ 이란 힘든 삶 속의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
2. 그의 식구들이 살게 될 부처의 집은 구약성서에 묘사된 ‘젖과 꿀이 흐르 는 땅’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 하고 기도를 한 것에 반해 그는 씁쓸함과 암담함을 느낀다.
3. 이사는 곧 이별이기에, 평소 같았으면 고민 없이 버렸을 물개이지만 이사 를 가면서 떠난다는 아쉬움과 서울에서의 추억을 하나라도 더 챙기고 싶 은 마음에 챙겼을 것이다.
4. 아내는 부천의 ‘소사’라는 지명으로부터 소사에서 복숭아가 많이 나는 것 을 떠올림과 동시에 은혜를 가졌을 때 복숭아를 많이 먹었던 일을 떠올 린다. 이는 아내의 의지를 보여주는데, 이렇게라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 하려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자신들의 처지가 딱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 래서 그는 아내의 의지를 읽어내고 씁쓸해 하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5. 원미동 사람들 연작의 배경인 부천의 성격이 이 작품에 압축적으로 제시 되어있는데, 부천시 원미동은 서울에 인접해 있는 주변도시로서 존재하여 서울에서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근근이 집을 마련하여 거주하는 곳이 라는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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