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들어가면서
- 본론
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1-1. 인간본성에서 출발한 ‘시는 맛을 낸다’
1-2. 행복과 관련한 ‘시의 개연성’
1-3. 시의 ‘내적 미’와 독자들이 보는 ‘크기’의 뜻
1-4. 재현(mimoumenon) 안에서 시적인 ‘아름다움’
2. 칸트의 미학
2-1. 미적 감각인 ‘재현과 자유’
2-2. 시는 예술 중에 ‘으뜸’
2-3. ‘시와 철학’의 관계
2-4. 시작(詩作, Dichten)의 즐거움
-나가면서
-참고문헌
- 본론
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1-1. 인간본성에서 출발한 ‘시는 맛을 낸다’
1-2. 행복과 관련한 ‘시의 개연성’
1-3. 시의 ‘내적 미’와 독자들이 보는 ‘크기’의 뜻
1-4. 재현(mimoumenon) 안에서 시적인 ‘아름다움’
2. 칸트의 미학
2-1. 미적 감각인 ‘재현과 자유’
2-2. 시는 예술 중에 ‘으뜸’
2-3. ‘시와 철학’의 관계
2-4. 시작(詩作, Dichten)의 즐거움
-나가면서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유(思惟)’에 대해 ‘지(theoria),’ ‘행(praxis),’ ‘제작(製作, poiesis)’으로 구분하였다. 이 제작 가운데 어떤 것은 대상에 대한 ‘모방(imitation)’ 또한 ‘재현(reappearance)’으로 나누어 생각하였으며 이 중심에는 운문, 노래, 춤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시’에 대해서만큼은 그 본질이 규범적이면서 기술적이라고 보았다.1) 아리스토텔레스는 ‘시 예술’을 이해하려면 현존하는 비극의 실제 특징을 기술이나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무엇이 훌륭한 비극을 만드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2) 특별히 비극’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만의 참신하고 독특하며 생의 역설(패러독스)이 돋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니코마크스의 윤리학’에서 인간의 목적인 선을 규정하는 것과 맥락이 같은 것으로 비극이 하나의 ‘고유한 쾌(oikeia hedonē)’가 여타의 ‘모방물’들과 함께 공유한 것으로 이해했다.여기에서 참으로 묘한 특징은 ‘꽤’라는 것이 어떻게 ‘연민과 공포에게 비롯되는 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에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청중의 공포와 연민을 강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주인공은우리와 닮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물 중에는 그것을 직접 마주대할 때는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재생해 놓았을 때는 쾌를 느끼게 된다”고 했다.
이 말을달리 표현해보면 비극이란 아무리 고통스럽고 연민의 정이 느껴질지라도 인간의 정서의 고통이 쾌를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곧 흥미롭고 중요한 모방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과 같다.3)조금 더 살펴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령 어떤 사람을 심히 미워하다가 갑자기 그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해방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수사학』에서는 이를 ‘정상’에로의 ‘회복’이라고 한다.4) 또한비극에서 멜로디와 리듬을 즐기게 되는데, 이는 곧 감각활동이나 시를 낭송하는 데 있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비극에서도 이와 같은 ‘사유나 관조’에서 발생하는 가능성으로 보았다.5)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진정한 시로 이해할 때 독자적인 방법과 정도로 성취될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상 모든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미학(‘시,’ ‘예술’)을 말했다. 단지 플라톤은 시는 모방
에서 나오는 또 다른 모방이기 때문에 무시하기는 했다. 플라톤이 말하는 진정한 미는 예술을 뛰어넘는 형이상학적 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는 철학적 사색과 함께 언어적 ‘제작製作poiesis’이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만일 이를 무시한다면 진정한 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해서 동류의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고 그것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일을 ‘쾌’라고 보았다. 즉 ‘시’는 곧 사람의 내면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비극悲劇적인 출발선에서 본 것이다.
1-1. 인간본성에서 출발한 ‘시는 맛을 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재현하는 동물이며 본성적으로 선율과 리듬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기 때문에 시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6) 시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담론에서 ‘역사적으로 기술하는 관점’과 ‘철학적으로 추론하는 관점’이 공존한다.7)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대해 연민과 두려움을 재현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어떠한 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이 가지는 연민이나 두려운 감정에 대한 카타르시스(katharsis)8)를 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특별히 ‘맛을 낸언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리듬과 선율, 그리고 노래가 있는 언어를 뜻한다고 할수 있다.
9)아리스토텔레스는 ‘맛을 낸다’라는 말이 ‘기분 좋은(hèd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말은 음악에도
적용되며 요리의 맛을 내는 ‘양념’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양념’이라는 은유는 사실상 시에 대한 언어이론을 내포한다. 이 말은 군더더기도 장식도 없는 벌거벗은 언어는 기본 재료로써 외연적인 기능을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유(思惟)’에 대해 ‘지(theoria),’ ‘행(praxis),’ ‘제작(製作, poiesis)’으로 구분하였다. 이 제작 가운데 어떤 것은 대상에 대한 ‘모방(imitation)’ 또한 ‘재현(reappearance)’으로 나누어 생각하였으며 이 중심에는 운문, 노래, 춤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시’에 대해서만큼은 그 본질이 규범적이면서 기술적이라고 보았다.1) 아리스토텔레스는 ‘시 예술’을 이해하려면 현존하는 비극의 실제 특징을 기술이나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무엇이 훌륭한 비극을 만드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2) 특별히 비극’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만의 참신하고 독특하며 생의 역설(패러독스)이 돋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니코마크스의 윤리학’에서 인간의 목적인 선을 규정하는 것과 맥락이 같은 것으로 비극이 하나의 ‘고유한 쾌(oikeia hedonē)’가 여타의 ‘모방물’들과 함께 공유한 것으로 이해했다.여기에서 참으로 묘한 특징은 ‘꽤’라는 것이 어떻게 ‘연민과 공포에게 비롯되는 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에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청중의 공포와 연민을 강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주인공은우리와 닮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물 중에는 그것을 직접 마주대할 때는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재생해 놓았을 때는 쾌를 느끼게 된다”고 했다.
이 말을달리 표현해보면 비극이란 아무리 고통스럽고 연민의 정이 느껴질지라도 인간의 정서의 고통이 쾌를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곧 흥미롭고 중요한 모방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과 같다.3)조금 더 살펴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령 어떤 사람을 심히 미워하다가 갑자기 그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해방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수사학』에서는 이를 ‘정상’에로의 ‘회복’이라고 한다.4) 또한비극에서 멜로디와 리듬을 즐기게 되는데, 이는 곧 감각활동이나 시를 낭송하는 데 있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비극에서도 이와 같은 ‘사유나 관조’에서 발생하는 가능성으로 보았다.5)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진정한 시로 이해할 때 독자적인 방법과 정도로 성취될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상 모든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미학(‘시,’ ‘예술’)을 말했다. 단지 플라톤은 시는 모방
에서 나오는 또 다른 모방이기 때문에 무시하기는 했다. 플라톤이 말하는 진정한 미는 예술을 뛰어넘는 형이상학적 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는 철학적 사색과 함께 언어적 ‘제작製作poiesis’이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만일 이를 무시한다면 진정한 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해서 동류의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고 그것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일을 ‘쾌’라고 보았다. 즉 ‘시’는 곧 사람의 내면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비극悲劇적인 출발선에서 본 것이다.
1-1. 인간본성에서 출발한 ‘시는 맛을 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재현하는 동물이며 본성적으로 선율과 리듬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지기 때문에 시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6) 시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담론에서 ‘역사적으로 기술하는 관점’과 ‘철학적으로 추론하는 관점’이 공존한다.7)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대해 연민과 두려움을 재현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어떠한 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이 가지는 연민이나 두려운 감정에 대한 카타르시스(katharsis)8)를 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특별히 ‘맛을 낸언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리듬과 선율, 그리고 노래가 있는 언어를 뜻한다고 할수 있다.
9)아리스토텔레스는 ‘맛을 낸다’라는 말이 ‘기분 좋은(hèd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말은 음악에도
적용되며 요리의 맛을 내는 ‘양념’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양념’이라는 은유는 사실상 시에 대한 언어이론을 내포한다. 이 말은 군더더기도 장식도 없는 벌거벗은 언어는 기본 재료로써 외연적인 기능을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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