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제국의 재편
2. 기독교의 등장과 승리
3.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
4. 게르만족의 침입과 서유럽 제국의 멸망
5. 서유럽 기독교 사상의 형성
6. 동로마와 서유럽
2. 기독교의 등장과 승리
3.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
4. 게르만족의 침입과 서유럽 제국의 멸망
5. 서유럽 기독교 사상의 형성
6. 동로마와 서유럽
본문내용
만족의 성공 이유
로마는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시작된 강압적 체제에 대해 더 이상 제국의 영토를 방어하는 의욕이 없었으며, 싸워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게르만족은 어렵지 않게 서로마를 정복
왜 동로마는 살아남고 서로마는 멸망했는가?
서로마가 멸망하고 동로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동로마가 서로마보다 한층 부유했기 때문
서로마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작은 규모로 축소되어 빈 껍데기뿐인 행정단위로 전락
반면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등의 도시들은 번영
게르만족 침입의 결과
서로마의 도시들은 이미 쇠퇴하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게르만족의 침입은 기껏해야 도시의 쇠퇴과정을 가속화시킨 정도에 불과
게르만족이 가져온 큰 변화는 서유럽에 단일한 통일 제국 대신 여러 개의 게르만 왕국들이 건설되었다는 것
500년 경의 서유럽 정치 지도
1) 게르만 부족인 앵글로-색슨족은 5세기 중반에 잉글랜드 해협을 건너 브리톤 섬에 대한 지배권을 확대
2) 갈리아 북쪽에서는 파리 근방 및 라인 강 동쪽 지방을 거점으로 프랑크 왕국이 지배
3) 서고트 족은 갈리아 남반부와 에스파냐 대부분을 지배
4) 반달족은 종전에 로마 영토였던 서쪽 아프리카 지역을 지배
5) 이탈리아 전역에는 데오도리크 왕의 지배하에 동고트족이 지배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크 왕국을 제외한 모든 게르만 왕국들이 사라짐
5. 서유럽 기독교 사상의 형성
서로마 쇠망기의 기독교
서유럽에서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멸망했던 시기에 소수의 기독교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향후 800년 동안 서유럽의 사상적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될 세계관과 신관을 형성
성 제롬
서유럽의 가장 위대한 네 명의 교부들 가운데 세 명은 동시대인
성 제롬, 성 암브로시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성 그레고리우스는 후대 인물)
성 제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
엄격한 금욕주의를 지지하면서 수도 생활을 적극 지원
여성은 자신의 벗은 몸을 보아서는 안 되므로 목욕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침
성 암브로시우스
암브로시우스는 밀리노의 대주교로서 서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관료로 교황보다도 영향력이 컸던 인물
암브로시우스는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신의 계율을 범했으므로 교회의 규제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
암브로시우스 대주교는 주권자인 황제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토록 하는데 성공
성직자가 로마의 세속 권력자를 도덕적인 문제로 굴복시킨 것은 이것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이 사건은 도덕 문제에서의 교회의 우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으며, 서유럽 교회의 자율성과 도덕적 우월성의 발전을 상징하는 사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신의 전능성과 인간의 죄악성이라는 두 가지 축을 기조로 삼음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신에게 등을 돌린 이래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악에 물들어 있음
신은 이 중에서 일부를 구원하고 나머지는 저주받도록 예정
예정설
아우구스티누스와 그 후의 중세 기족교인들은 예정설을 통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된 자들 가운데 속하기를 희망하면서 선을 행하기 위해 노력함
아우구스티누스가 선의 지침으로 제시한 것은 사랑
모든 인간은 신에 대한 사랑, 신을 섬기는 마음에서 우러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
『신국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이란 책에서 모든 인류는 두 개의 대립하는 집단으로 나뉜다고 주장
1)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 : 지상국
- 저주를 받게 됨
2) 신을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들 : 신국
- 축복을 받아 영생하게 됨
보에티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보에티우스
인간의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행복이란 부귀나 명예와 같은 현세적인 보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
따라서 인간의 삶은 신을 추구하는데 바쳐져야 함
6. 동로마와 서유럽
보에티우스의 처형 : 전환점
보에티우스는 524년 동고트 왕국의 데오도리크에 의해 처형
이 사건은 이탈리아 동고트 왕국의 멸망을 알리는 전조가 됨
보에티우스의 처형은 아리우스파의 동고트 왕국이 카톨린 신자와 완벽한 조화 속에서 살 수 없음을 보여줌
이 시간은 동로마와 서유럽이 궁극적으로 결별하게 된 그리고 그 결과 고대 로마 세계가 해체되고야 마는 중요한 요인 됨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
동고트 왕국 정복은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기획하고 주도한 로마 부흥 계획 중 일부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정한 동로마는 외부적으로는 야만인들로부터의 압력에, 내부적으로는 종교 불화에 직면해 있었으나, 5세기를 경과하면서 기력을 상당히 회복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을 로마 제국의 상속자로 생각하고, 로마 제국이 가졌던 과거의 힘과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서유럽을 회복하기로 결심
그러나 그의 서유럽 회복 정책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
로마법의 편찬과 개정 : 로마법 대전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 중 하나는 그가 로마법을 편찬했다는 것
3세기와 6세기 사이에 법령의 양이 계속 불어나서 방대한 규모의 법규들 중에는 서로 모순되거나 이미 쓸모없게 된 요소들이 많이 있었고, 여러 조건들이 변화하여 종래의 법률 원칙들 중 상당수가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되었기에, 유스티니아누스는 527년 제위에 오르자마자 현존 법률들을 개정 및 편찬하여 자신의 지배의 확고한 근거로 삼기로 결심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의 의의
로마법 대전은 그 후의 법제사와 정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
11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부활되고 다시 연구됨으로써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은 유럽 각국에서 법률과 법제의 기초가 됨
유스티니아누스의 서유럽 재정복 정책
유스티니아누스는 지리적으로도 완전한 로마 황제가 되고자 했기에, 서유럽 재정복을 위해 군대를 파견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투입된 노력이 너무나도 컸기에 동로마 제국은 존립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에 빠짐
로마 통합의 종말
유스티니아누스에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영토는 피폐
유스티니아누스가 사망한 후 게르만 부족인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입
또한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 쪽으로 침입
서쪽 갈리아에서 프랑크족의 내란 발생
로마의 통합은 영원히 끝남
로마는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시작된 강압적 체제에 대해 더 이상 제국의 영토를 방어하는 의욕이 없었으며, 싸워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게르만족은 어렵지 않게 서로마를 정복
왜 동로마는 살아남고 서로마는 멸망했는가?
서로마가 멸망하고 동로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동로마가 서로마보다 한층 부유했기 때문
서로마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작은 규모로 축소되어 빈 껍데기뿐인 행정단위로 전락
반면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등의 도시들은 번영
게르만족 침입의 결과
서로마의 도시들은 이미 쇠퇴하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게르만족의 침입은 기껏해야 도시의 쇠퇴과정을 가속화시킨 정도에 불과
게르만족이 가져온 큰 변화는 서유럽에 단일한 통일 제국 대신 여러 개의 게르만 왕국들이 건설되었다는 것
500년 경의 서유럽 정치 지도
1) 게르만 부족인 앵글로-색슨족은 5세기 중반에 잉글랜드 해협을 건너 브리톤 섬에 대한 지배권을 확대
2) 갈리아 북쪽에서는 파리 근방 및 라인 강 동쪽 지방을 거점으로 프랑크 왕국이 지배
3) 서고트 족은 갈리아 남반부와 에스파냐 대부분을 지배
4) 반달족은 종전에 로마 영토였던 서쪽 아프리카 지역을 지배
5) 이탈리아 전역에는 데오도리크 왕의 지배하에 동고트족이 지배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크 왕국을 제외한 모든 게르만 왕국들이 사라짐
5. 서유럽 기독교 사상의 형성
서로마 쇠망기의 기독교
서유럽에서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멸망했던 시기에 소수의 기독교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향후 800년 동안 서유럽의 사상적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될 세계관과 신관을 형성
성 제롬
서유럽의 가장 위대한 네 명의 교부들 가운데 세 명은 동시대인
성 제롬, 성 암브로시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성 그레고리우스는 후대 인물)
성 제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
엄격한 금욕주의를 지지하면서 수도 생활을 적극 지원
여성은 자신의 벗은 몸을 보아서는 안 되므로 목욕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침
성 암브로시우스
암브로시우스는 밀리노의 대주교로서 서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관료로 교황보다도 영향력이 컸던 인물
암브로시우스는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신의 계율을 범했으므로 교회의 규제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
암브로시우스 대주교는 주권자인 황제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토록 하는데 성공
성직자가 로마의 세속 권력자를 도덕적인 문제로 굴복시킨 것은 이것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이 사건은 도덕 문제에서의 교회의 우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으며, 서유럽 교회의 자율성과 도덕적 우월성의 발전을 상징하는 사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신의 전능성과 인간의 죄악성이라는 두 가지 축을 기조로 삼음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신에게 등을 돌린 이래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악에 물들어 있음
신은 이 중에서 일부를 구원하고 나머지는 저주받도록 예정
예정설
아우구스티누스와 그 후의 중세 기족교인들은 예정설을 통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된 자들 가운데 속하기를 희망하면서 선을 행하기 위해 노력함
아우구스티누스가 선의 지침으로 제시한 것은 사랑
모든 인간은 신에 대한 사랑, 신을 섬기는 마음에서 우러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
『신국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이란 책에서 모든 인류는 두 개의 대립하는 집단으로 나뉜다고 주장
1)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 : 지상국
- 저주를 받게 됨
2) 신을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들 : 신국
- 축복을 받아 영생하게 됨
보에티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보에티우스
인간의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행복이란 부귀나 명예와 같은 현세적인 보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
따라서 인간의 삶은 신을 추구하는데 바쳐져야 함
6. 동로마와 서유럽
보에티우스의 처형 : 전환점
보에티우스는 524년 동고트 왕국의 데오도리크에 의해 처형
이 사건은 이탈리아 동고트 왕국의 멸망을 알리는 전조가 됨
보에티우스의 처형은 아리우스파의 동고트 왕국이 카톨린 신자와 완벽한 조화 속에서 살 수 없음을 보여줌
이 시간은 동로마와 서유럽이 궁극적으로 결별하게 된 그리고 그 결과 고대 로마 세계가 해체되고야 마는 중요한 요인 됨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
동고트 왕국 정복은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기획하고 주도한 로마 부흥 계획 중 일부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정한 동로마는 외부적으로는 야만인들로부터의 압력에, 내부적으로는 종교 불화에 직면해 있었으나, 5세기를 경과하면서 기력을 상당히 회복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을 로마 제국의 상속자로 생각하고, 로마 제국이 가졌던 과거의 힘과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서유럽을 회복하기로 결심
그러나 그의 서유럽 회복 정책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
로마법의 편찬과 개정 : 로마법 대전
유스티니아누스의 업적 중 하나는 그가 로마법을 편찬했다는 것
3세기와 6세기 사이에 법령의 양이 계속 불어나서 방대한 규모의 법규들 중에는 서로 모순되거나 이미 쓸모없게 된 요소들이 많이 있었고, 여러 조건들이 변화하여 종래의 법률 원칙들 중 상당수가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되었기에, 유스티니아누스는 527년 제위에 오르자마자 현존 법률들을 개정 및 편찬하여 자신의 지배의 확고한 근거로 삼기로 결심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의 의의
로마법 대전은 그 후의 법제사와 정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
11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부활되고 다시 연구됨으로써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은 유럽 각국에서 법률과 법제의 기초가 됨
유스티니아누스의 서유럽 재정복 정책
유스티니아누스는 지리적으로도 완전한 로마 황제가 되고자 했기에, 서유럽 재정복을 위해 군대를 파견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투입된 노력이 너무나도 컸기에 동로마 제국은 존립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에 빠짐
로마 통합의 종말
유스티니아누스에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영토는 피폐
유스티니아누스가 사망한 후 게르만 부족인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입
또한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 쪽으로 침입
서쪽 갈리아에서 프랑크족의 내란 발생
로마의 통합은 영원히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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