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학사 ) 전목, 이윤화 역, 전목 선생의 사학명저강의, 신서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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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사학사 ) 전목, 이윤화 역, 전목 선생의 사학명저강의, 신서원, 2006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책 소개
Ⅱ.요약
1.『상서』부터 『후한서』까지
2.후한부터 수에 이르는 시기의 사학발전
3.이후 중국사학
Ⅲ.감상평

본문내용

문답>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은 <충현의 쟁의>라는 대목을 통하여 당태종이 하고 싶어 하였던 업적 중 잘못한 것에 대한 쟁의를 다루고 있다.
(4)『신오대사』와 『신당서』
구양수의 『신오대사』는 그것이 개인의 역사저술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당대 이후 중국인들의 수사는 모두 관찬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구양수의 『신오대사』는 『춘추』를 본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존재한다. 포폄은 『춘추』를 본받았으며, 서술은 『사기』를 본받았기 때문에 문장이 간결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인 정사가 4사 이후 그 문장이 좋지 못하였는데, 구양수의 『신오대사』가 사마천과 반고 이후 좋은 문장을 사용하고 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신당서』는 구양수의 두 번째 사서로, 당시 이미 『당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송 인종 때 와서 다시 송기와 구양수에게 명하여 새롭게 쓰도록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신당서』의 경우 일반적으로 지와 표가 좋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그 편찬에 있어서 송기가 책이 완성된 뒤 원고를 모두 구양서에게 넘겼을 때 그 내용이 좋다고 하여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는 미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하여금 역사의 편찬에 대한 견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5)『자치통감』
『자치통감』은 송대의 두 번째 사학명저로, 많은 비판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그것이 매우 많은 사실이 삭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통에 대한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연호의 기재방식 등이 당시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는 점에 있다. 이는 후세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사마광이 전부 삭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마광은 『자치통감』의 편찬에 있어서 자신만의 주장과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필요한 것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삭제하고자 하였던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자치통감』을 서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원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은 사마광이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라고 추측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를 가진다. 굴원은 중국의 역사적 인물인 것이 분명함에도 그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이유조차 나열되지 않았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6)『문헌통고』
마단림의 『문헌통고』는 현대로 하여금 정치 제도를 연구할 때에 대한 자세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정치제도를 연구할 때에 있어서는 당시의 규정된 제도를 연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당연히 당시의 그 제도의 기원과 변화와 발전과정을 모두 알 필요가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제도에 대하여 발휘한 각종 의견과 논의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마단림의 『문헌통고』는 당시 송원 교체기의 사학에 대하여 조금 늦게 편찬한 것이지만 송대의 사학, 혹은 송대 사학의 성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7)황종희의 『명유학안』
『명유학안』은 명나라 사람들의 문집으로 당시의 많은 사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명유학안』에서는 명대의 각 유가들이 각자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는 배움의 종지를 정리하고 있으며, 각 파별의 배움에 대한 언급에는 종지가 있으나, 편견 또한 존재하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학문에 있어서 책을 쓰는 것에 대한 의의를 제공한다. 책을 쓴다는 것은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하여 처방을 내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며, 학안 또한 학술에 대한 문제들 중에서 각 방안이 가지고 있는 병폐에 대한 처방으로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8)『문사통의』
『문사통의』는 청대의 세 번째 명저로, 문학과 사학에 대한 두 방면을 모두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사통의』를 서술하였던 장학성은 청대의 사학가로, 학술사 방면에 있어서 공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직접 역사와 관련한 책을 쓴 적이 없다는 점에서 학술사 방면으로 그 공헌을 한정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장한 역사는 전체 학술사 입장에서의 사학으로, 그의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Ⅲ.감상평
『사학명저강의』를 통하여 드러난 전목 선생의 기본적인 역사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생활과 경험, 그리고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에게 역사란 인간의 생활이었으며, 모든 인생의 경험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행해지고 있었던 사학은 그러한 가치를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고증에 집착하는 사학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사학이 가지고 있는 경세적 성격이 결여되는 것이며, 한편 현실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는 사학은 역사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전목 선생은 당시의 사학 분위기가 결국 자기 민족, 그리고 국가에 대한 애정의 결핍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직접적으로 저서에서 “자기 역사에 대한 일종의 온정과 경의”가 부족한 당대의 풍조에 대하여 비판하며, 국민이라면 당연히 자기 역사의 대략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으며, 자기 역사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역사 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전목 선생의 역사적 인식은 현실적 의의를 지닌 민족주의 관념에서 기반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전목 선생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활과 경험, 그리고 가치 있는 정신이 역사 그 자체라고 보았다. 여기에 역사 기록과 역사 지식을 합치면 역사를 구성하는 세 가지의 요소가 된다. 특히 역사 지식은 인생의 경험을 보존하며 전체의 인생 중에서 가치 있는 의의를 선정하여 후세에 전하는 것을 통하여 후세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근거로 하여 인생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전목 선생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것이 과거나 현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관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존재한다는 인간중심적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그의 ‘사람본위’적 역사인식을 인상 깊게 볼 수 있었다.

키워드

전목,   이윤화,   사학,   역사,   중국
  • 가격3,7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22.08.22
  • 저작시기2022.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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