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1.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 관한 소개
2. 저작에 관한 소개
3. 『박학한 무지』와 신플라톤주의
4.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수학적 신학
5. 부정의 방법과 부정의 신학(Negativa Theologia)
6. 『De ludo globi』와 신비적 합일
7. ‘앎’과 ‘봄’
맺음 말
1.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 관한 소개
2. 저작에 관한 소개
3. 『박학한 무지』와 신플라톤주의
4.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수학적 신학
5. 부정의 방법과 부정의 신학(Negativa Theologia)
6. 『De ludo globi』와 신비적 합일
7. ‘앎’과 ‘봄’
맺음 말
본문내용
364 참고.
인간을 통해서 만물은 제한성의 시작과 끝을 수용하게 되어, 그렇듯 제한적으로 가장 큰 것으로 간주되는 그 인간을 통해 절대적으로 가장 큰 것에 힘입음으로써 만물이 제한된 차원의 ‘있음’으로 나아가게 되고 또 그 인간의 중재로 말미암아 절대적인 것으로 되돌아가게 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유출(emanatio)의 시원이자 환원(reductio)의 목적인 그 인간을 통해 존재하는 셈이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앞선 책, 338.
이것은 단순히 그가 스콜라주의적인 사변에 새로운 것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능력을 정당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근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은재, 앞선 글, 360 참고.
인식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동형(同形)에서 근거를 삼을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의 인식은 유한한 것에 국한되며 최종적인 통찰이 아닌 임시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는 계몽주의의 중심 사상을 선취하면서도 인식의 낙관주의를 급진적인 방식으로 비평하기도 한 것이다. 위의 글, 361 참고.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전통의 ‘존재’(esse)중심의 신 이해에서 벗어나 ‘지성’(intellectus) 중심의 신 이해로 전환한 그의 시도는 질료와 형상, 현실태와 가능태, 존재와 본질처럼 고정되고 정적인 신 이해로부터 실재의 역동적이고 잠재적인 생명성과 연속적인 움직임을 중심으로 한 인식의 활동으로의 전환이었다. 김형수, 앞선 글, 42 참고.
맺음 말
오늘날에는 자명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이론은 근대에 이르러 데카르트에 의해 수용되었고, 비로소 임마누엘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통해 철학을 혁명으로 이끌어갔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게 있어서 인식의 과정은 주관적이고 관점적이며, 다원적이고 의사소통적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미결적이고 미완적이다. 이은재, 앞선 글, 365 참고.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동일론을 높게 평가했던 요한 게오르크 하만(Johann Georg Hamann)은 임마누엘 칸트에 반대하여 인식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의사소통의 과정과 연결된다고 보았으며 그런 한에서 미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위의 글, 366 참고.
20세기에 들어서 칼 포퍼(Karl Popper)는 동일 인식론을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인식의 진보는 추측과 논박을 통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식은 언제나 ‘추측’(coniectura)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실재에 다가서며 언젠가는 이것이 없이도 결정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위의 글, 같은 쪽 참고.
열려있는 인식의 가능성은 동일론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살의 존재로서의 지각이론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봄’에 대해서 몸과 연관하여 그 능동성과 수동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몸은 주위 환경과 지향적 끈들로 묶여 있기 때문에 지각하는 주체가 곧 지각되는 세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메를로-퐁티는 말한다. ‘보는 자’는 그가 보고 있는 것에 의해서 동일하게 그 자신도 포착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보는 것은 그 자신이 된다. 즉, 모든 봄에는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즘이 있는데 보이는 자와 보이는 것이 서로 환위된다는 것, 따라서 어느 것이 보는 자이고, 어느 것이 보이는 자인지를 알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거대 가시성’(cette Visibilite)은 ‘거대한 감각적인 것 자체’(le Sensible en soi)의 그 일반성(cette generalite)이다. 메를로-퐁티는 대상-지평의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 지각 대상과 지각 주체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오히려 숨겨진 면이 없이는 아예 드러나는 면도 없을뿐더러 지각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대상-지평의 구조를 통해 우리는 대상을 종합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서울: 문학과지성사, 2002)을 참고하라.
메를로-퐁티의 사유에서 우리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인식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감추어진 것과 드러난 것의 상관성,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이중성 등의 단초들이 이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사유에서 충분히 전개된 바 있다.
이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마지막 중세인으로, 또한 최초의 근대인으로 지니고 있는 탁월한 중간자로서의 지위를 잘 보여준다. 그의 인식은 여전히 중세의 한계에 머물러있었지만, 그는 중세를 넘어서 근대적 사유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설정하는 작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인식능력을 정당화했다. 이는 중세가 단순히 어둠의 시기가 아니라 다양한 빛을 가지고 있었던 찬란한 시기였음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참고문헌
강동수. “르네상스 철학의 명상과 신비적 합일에 대한 연구.” 「철학논총」 제77권 2014, 7: 3-21.
김형수. “지성적 신비주의의 요체로서 쿠자누스의 intellectus 개념.” 「신학전망」 (197). 2017, 6: 39-70.
들뢰즈, 질.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메를로-퐁티, 모리스.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2.
백훈승.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와 헤겔의 절대자관.” 동서철학연구 제70호, 2013, 12:
344- 373.
이은재. “중세에서 근대에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신학과세계」 (63). 2008, 12: 354-374.
조규홍. “니콜라우스와 플로티노스의 절대자 개념 비교 연구-De non-aliud와 Enn. Ⅵ9를 토대로,” 「한국중세철학회」10권0호, 2004, 12: 159-205.
추정희. “상징형식으로서 쿠자누스 사상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원근법.” 「미술사학보」 44권. 2015, 6: 93-110.
쿠자누스, 니콜라우스. 『박학한 무지』. 조규홍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 지식, 2013.
현우식. “니콜라스 쿠자누스의 수학적 신학 - 「De docta ignorntia」를 중심으로.”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인간을 통해서 만물은 제한성의 시작과 끝을 수용하게 되어, 그렇듯 제한적으로 가장 큰 것으로 간주되는 그 인간을 통해 절대적으로 가장 큰 것에 힘입음으로써 만물이 제한된 차원의 ‘있음’으로 나아가게 되고 또 그 인간의 중재로 말미암아 절대적인 것으로 되돌아가게 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유출(emanatio)의 시원이자 환원(reductio)의 목적인 그 인간을 통해 존재하는 셈이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앞선 책, 338.
이것은 단순히 그가 스콜라주의적인 사변에 새로운 것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능력을 정당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근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은재, 앞선 글, 360 참고.
인식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동형(同形)에서 근거를 삼을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의 인식은 유한한 것에 국한되며 최종적인 통찰이 아닌 임시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는 계몽주의의 중심 사상을 선취하면서도 인식의 낙관주의를 급진적인 방식으로 비평하기도 한 것이다. 위의 글, 361 참고.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전통의 ‘존재’(esse)중심의 신 이해에서 벗어나 ‘지성’(intellectus) 중심의 신 이해로 전환한 그의 시도는 질료와 형상, 현실태와 가능태, 존재와 본질처럼 고정되고 정적인 신 이해로부터 실재의 역동적이고 잠재적인 생명성과 연속적인 움직임을 중심으로 한 인식의 활동으로의 전환이었다. 김형수, 앞선 글, 42 참고.
맺음 말
오늘날에는 자명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이론은 근대에 이르러 데카르트에 의해 수용되었고, 비로소 임마누엘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통해 철학을 혁명으로 이끌어갔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게 있어서 인식의 과정은 주관적이고 관점적이며, 다원적이고 의사소통적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미결적이고 미완적이다. 이은재, 앞선 글, 365 참고.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동일론을 높게 평가했던 요한 게오르크 하만(Johann Georg Hamann)은 임마누엘 칸트에 반대하여 인식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의사소통의 과정과 연결된다고 보았으며 그런 한에서 미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위의 글, 366 참고.
20세기에 들어서 칼 포퍼(Karl Popper)는 동일 인식론을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인식의 진보는 추측과 논박을 통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식은 언제나 ‘추측’(coniectura)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실재에 다가서며 언젠가는 이것이 없이도 결정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위의 글, 같은 쪽 참고.
열려있는 인식의 가능성은 동일론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살의 존재로서의 지각이론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봄’에 대해서 몸과 연관하여 그 능동성과 수동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몸은 주위 환경과 지향적 끈들로 묶여 있기 때문에 지각하는 주체가 곧 지각되는 세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메를로-퐁티는 말한다. ‘보는 자’는 그가 보고 있는 것에 의해서 동일하게 그 자신도 포착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보는 것은 그 자신이 된다. 즉, 모든 봄에는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즘이 있는데 보이는 자와 보이는 것이 서로 환위된다는 것, 따라서 어느 것이 보는 자이고, 어느 것이 보이는 자인지를 알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거대 가시성’(cette Visibilite)은 ‘거대한 감각적인 것 자체’(le Sensible en soi)의 그 일반성(cette generalite)이다. 메를로-퐁티는 대상-지평의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 지각 대상과 지각 주체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오히려 숨겨진 면이 없이는 아예 드러나는 면도 없을뿐더러 지각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대상-지평의 구조를 통해 우리는 대상을 종합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서울: 문학과지성사, 2002)을 참고하라.
메를로-퐁티의 사유에서 우리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인식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감추어진 것과 드러난 것의 상관성,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이중성 등의 단초들이 이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사유에서 충분히 전개된 바 있다.
이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마지막 중세인으로, 또한 최초의 근대인으로 지니고 있는 탁월한 중간자로서의 지위를 잘 보여준다. 그의 인식은 여전히 중세의 한계에 머물러있었지만, 그는 중세를 넘어서 근대적 사유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설정하는 작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인식능력을 정당화했다. 이는 중세가 단순히 어둠의 시기가 아니라 다양한 빛을 가지고 있었던 찬란한 시기였음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참고문헌
강동수. “르네상스 철학의 명상과 신비적 합일에 대한 연구.” 「철학논총」 제77권 2014, 7: 3-21.
김형수. “지성적 신비주의의 요체로서 쿠자누스의 intellectus 개념.” 「신학전망」 (197). 2017, 6: 39-70.
들뢰즈, 질.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메를로-퐁티, 모리스.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2.
백훈승.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와 헤겔의 절대자관.” 동서철학연구 제70호, 2013, 12:
344- 373.
이은재. “중세에서 근대에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신학과세계」 (63). 2008, 12: 354-374.
조규홍. “니콜라우스와 플로티노스의 절대자 개념 비교 연구-De non-aliud와 Enn. Ⅵ9를 토대로,” 「한국중세철학회」10권0호, 2004, 12: 159-205.
추정희. “상징형식으로서 쿠자누스 사상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원근법.” 「미술사학보」 44권. 2015, 6: 93-110.
쿠자누스, 니콜라우스. 『박학한 무지』. 조규홍 옮김. 서울: 지식을만드는 지식, 2013.
현우식. “니콜라스 쿠자누스의 수학적 신학 - 「De docta ignorntia」를 중심으로.”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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