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쿠로부네의 출현과 개항
2. 잇따른 막부요인의 피살과 막부의 붕괴
3. 메이지(明治)유신과 부국강병
4. 에필로그
2. 잇따른 막부요인의 피살과 막부의 붕괴
3. 메이지(明治)유신과 부국강병
4. 에필로그
본문내용
흠정헌법)이 발포되었다. 메이지헌법은 천황이 군의 통수권, 관리의 임명, 칙령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삼권(입법, 행정, 사법)의 위에 존재하는 막강한 군주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제한적이기는 하나 국민의 선거로 뽑는 중의원(衆議院)과 화족으로 이루어진 귀족원(貴族院)의 이원제가 채택되었다.
1872년에는 일본최초로 동경의 신바시(新橋)와 요코하마(浜)를 연결하는 철도<지도3>가 개통되었고, 부국강병을 위해 요코즈카(橫須賀)의 제철소를 해군 조선소<지도3>로 전환하고, 에도의 세키구치(關口)포병공창이 설치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서구와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는 외교적강화가 필요했던 일본정부는 문명국임을 보여주기 위해 로쿠메이칸<그림4>에서 상류 계층이 구미의 외교관과 연회, 무도회 등을 열어 서구의 환심을 얻어 1886년 치외법권을 폐지하였다.(그러나 외국인 재판관을 임명하고 국내 법률이 완비되었음을 사전에 통보하는 절충안적 성격이 있음.) 조약의 개정은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한 후 국제열강의 반열에 올라선 1911년 완전한 자주권이 회복되었다.
4. 에필로그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한다.
16~18세기 유럽의 열강들은 앞 다투어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동남아시아로 진출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의 열강은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을 잊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서구 열강은 식민지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고 이 노동력으로 물품을 생산하고 이 물품의 안전한 수송과 수출기지로써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를 필요로 하였다.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는 물자의 운송(물류) 및 병참기지(군수), 수출시장(경제)이었다. 직접 한 지역(국가)을 지배하기 보다는 연료와 식료품의 보급할 항구와 물품을 수출할 수 있는 지역(국가)이 필요했던 것이다.
거대한 인구와 구매력을 가진 중국과 물류와 병참기지로써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일본은 서구열강에게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로써 매력적인 지역임에 틀림없었다. 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도 역시 물류 및 군사적(러시아 견제)으로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였다.
막부말기에 일본은 분열된 듯이 보였지만 일련의 내부적 과정(대정봉환, 판적봉환, 패번칠현)을 통해 천황중심의 강력한 입헌군주제로 나아가게 되었다. 외부적 과정(개항, 이와쿠미사절단)을 통해서는 서구열강의 기술과 군사력을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길로 나아가게 된다. 청나라는 내부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이 분열되고 왕실과 정치는 부패되었고, 외부적으로는 몇 차례의 전쟁(1차,2차 아편전쟁, 청일전쟁 등)에서 패전하고 서서히 분열되어 난국(亂國)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인 조선은 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망국(亡國)이 되어버렸다.
사실 당시에 서구열강은 식민지를 필요로 했다기보다는 군사적으로는 항구를 원했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의 투자처(광산, 철도, 항만)와 새로운 수출시장을 필요로 했다. 정치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균형점을 찾으려 했다.(후발 열강(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등)의 견제와 우위를 위해)
서구열강의 개국, 개항의 압력 앞에 동아시아 3국의 상황인식과 대처방식을 보면 국민의 단일한 모습과 위로부터의 과감한 개혁을 한 일본과 국민의 소리를 멀리하고 허울뿐인 개혁과 왕실의 안전만을 도모한 청나라(중국), 그리고 친청이냐, 친일이냐를 놓고 스스로 소국의 자세를 취하고, 개국이냐, 쇄국이냐를 놓고 탁상공론과 국론분열을 야기했던 조선의 대응이 미래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대비된다.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과거의 모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것을 과감히 수용하고 내재화시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지도 및 그림
<지도1> http://maps.loco.yahoo.co.jp
<지도2> 「江東京の地理と地名」. 鈴木理生. 日本業出版社. 2006.
<지도3> http://maps.loco.yahoo.co.jp
<그림1>, <그림2>, <그림3>, <그림4> 「일본근세근현대사」. 구태훈, 조명철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5.
<표1> 「일본근세근현대사」. 구태훈, 조명철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5.
* 참고문헌
「일본근세근현대사」. 구태훈, 조명철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5.
「江東京の地理と地名」. 鈴木理生. 日本業出版社. 2006.
http://ja.wikipedia.org/
http://www.yahoo.co.jp/
1872년에는 일본최초로 동경의 신바시(新橋)와 요코하마(浜)를 연결하는 철도<지도3>가 개통되었고, 부국강병을 위해 요코즈카(橫須賀)의 제철소를 해군 조선소<지도3>로 전환하고, 에도의 세키구치(關口)포병공창이 설치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서구와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는 외교적강화가 필요했던 일본정부는 문명국임을 보여주기 위해 로쿠메이칸<그림4>에서 상류 계층이 구미의 외교관과 연회, 무도회 등을 열어 서구의 환심을 얻어 1886년 치외법권을 폐지하였다.(그러나 외국인 재판관을 임명하고 국내 법률이 완비되었음을 사전에 통보하는 절충안적 성격이 있음.) 조약의 개정은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한 후 국제열강의 반열에 올라선 1911년 완전한 자주권이 회복되었다.
4. 에필로그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한다.
16~18세기 유럽의 열강들은 앞 다투어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동남아시아로 진출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의 열강은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을 잊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서구 열강은 식민지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고 이 노동력으로 물품을 생산하고 이 물품의 안전한 수송과 수출기지로써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를 필요로 하였다.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는 물자의 운송(물류) 및 병참기지(군수), 수출시장(경제)이었다. 직접 한 지역(국가)을 지배하기 보다는 연료와 식료품의 보급할 항구와 물품을 수출할 수 있는 지역(국가)이 필요했던 것이다.
거대한 인구와 구매력을 가진 중국과 물류와 병참기지로써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일본은 서구열강에게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로써 매력적인 지역임에 틀림없었다. 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도 역시 물류 및 군사적(러시아 견제)으로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였다.
막부말기에 일본은 분열된 듯이 보였지만 일련의 내부적 과정(대정봉환, 판적봉환, 패번칠현)을 통해 천황중심의 강력한 입헌군주제로 나아가게 되었다. 외부적 과정(개항, 이와쿠미사절단)을 통해서는 서구열강의 기술과 군사력을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길로 나아가게 된다. 청나라는 내부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이 분열되고 왕실과 정치는 부패되었고, 외부적으로는 몇 차례의 전쟁(1차,2차 아편전쟁, 청일전쟁 등)에서 패전하고 서서히 분열되어 난국(亂國)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인 조선은 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망국(亡國)이 되어버렸다.
사실 당시에 서구열강은 식민지를 필요로 했다기보다는 군사적으로는 항구를 원했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의 투자처(광산, 철도, 항만)와 새로운 수출시장을 필요로 했다. 정치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균형점을 찾으려 했다.(후발 열강(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등)의 견제와 우위를 위해)
서구열강의 개국, 개항의 압력 앞에 동아시아 3국의 상황인식과 대처방식을 보면 국민의 단일한 모습과 위로부터의 과감한 개혁을 한 일본과 국민의 소리를 멀리하고 허울뿐인 개혁과 왕실의 안전만을 도모한 청나라(중국), 그리고 친청이냐, 친일이냐를 놓고 스스로 소국의 자세를 취하고, 개국이냐, 쇄국이냐를 놓고 탁상공론과 국론분열을 야기했던 조선의 대응이 미래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대비된다.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과거의 모순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것을 과감히 수용하고 내재화시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지도 및 그림
<지도1> http://maps.loco.yahoo.co.jp
<지도2> 「江東京の地理と地名」. 鈴木理生. 日本業出版社. 2006.
<지도3> http://maps.loco.yahoo.co.jp
<그림1>, <그림2>, <그림3>, <그림4> 「일본근세근현대사」. 구태훈, 조명철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5.
<표1> 「일본근세근현대사」. 구태훈, 조명철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5.
* 참고문헌
「일본근세근현대사」. 구태훈, 조명철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5.
「江東京の地理と地名」. 鈴木理生. 日本業出版社. 2006.
http://ja.wikipedia.org/
http://www.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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