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학기 방송통신대 역사의현장을찾아서 기말과제물)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체제상 특징 일제강점기 감포 개항과 지역의 변천 과정 교재를 참고하여 자신이 거주하는 주변 지역을 답사한 후 답사기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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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23년 2학기 방송통신대 역사의현장을찾아서 기말과제물)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체제상 특징 일제강점기 감포 개항과 지역의 변천 과정 교재를 참고하여 자신이 거주하는 주변 지역을 답사한 후 답사기를 작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교재를 참조하여 아래 문제에 대해 각각 서술해주세요.(총 2문제. 문제별 10점. 20점 만점).

(1)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체제상 특징을 서술해주세요.
(2) 일제강점기 감포 개항과 지역의 변천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2. 교재를 참고하여 자신이 거주하는 주변 지역을 답사한 후 답사기를 작성해 주세요 (30점).
※아래의 내용(①~⑤)을 반드시 포함하여 작성해 주세요.

3. 참고문헌

본문내용

살아도 이상하게 바다를 가지 않게 되는 것처럼, 고향 진주는 오랜 역사의 고장인 만큼 다양한 유물과 유적들이 많은데, 지금까지는 그것들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 같다. 따라서 이번 과제물을 명분 삼아 일정을 잡아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할 겸, 진주를 답사지로 선택하게 되었다.
진주시는 35만명 인구의 중소도시로 특정 성씨가 집단 거주하는 세거지는 아니다. 진주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꽤 큰 지방행정구역이었다. 특히 1896년 행정개편에 따라 진주군은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어 관찰사가 상주하는 지역이었다. 고려 초기에는 전국의 12목 중 하나로 진주목이 있었다. 신라시대에는 청주, 강주, 청주 등의 이름으로 불릴 만큼 남부지방의 주요 요충지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일제시대 경상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된 후 된 후에는 진주면이 진주읍으로 승격되고, 다시 진주읍이 진주부로 승격되면서 시장에 해당하는 부윤을 두었다. 이후 진주군은 진양군으로 개칭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진주부는 진주시가 되었다가, 1995년 ‘도농복합형태의 시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주시와 진양군을 각각 폐지하고 현재의 통합 진주시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출생지 강남동은 2013.5.1자로 천전지구 3개동(망경동, 강남동, 칠암동)이 천전동으로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3년 00월 00일, 드디어 당일치기지만 고향 진주로 떠났다. 오전 늦게 출발했는데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점심도 해결하다 보니 진주까지 승용차로 3시간 넘게 소요되었다. 몇 년만에 보는 고향이지만 진주는 변함없이 편안함을 준다. 진주시의 대표적인 유적은 진주성와 촉석루가 있다. 진양호은 유적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제외한다. 유년 시절 강남동에서 강 건너 편을 바라보면 촉석루가 어렴풋이 보였다.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촉석루의 좌측 편을 바라보면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진주성이 자리 잡고 있다. 촉석루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남강의 바위 벼랑위에 솟은 영남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다.
옛날 추억을 되살리려고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강남동 옛집이 있었던 위치에서 촉석루로 출발했다. 가는 길은 단순하다. 촉석루를 만나기 위해서 집 근처의 천전초등학교에서 출발하면 대략 1.4km 거리다.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출발에 앞서 인근의 남가람 문화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여정이다. 이곳은 역사·문화 ·예술의 도시 진주의 전통과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지닌 도심 속의 문화, 휴식 공간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범 문화예술거리로 지정, 조성되었다.
남가람 문화거리에서 다시 출발한다면, 문화예술회관교차로에서 진주교차로까지 남강을 옆에 끼고 직진하면 된다. 진주교차로에서 남강을 아래에 두고 진주교를 건너면 진주교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200여 미터 걸어가면 진주성삼거리가 나온다. 진주성삼거리에서 다시 100여 미터 걸어가면 촉석루에 도착한다.
촉석루는 진주성관리사업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기 논개가 촉석루의 의암 바위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꽃잎처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촉석루에서 진주성까지는 300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진주성내의 오르막길은 유치원 시절 소풍갔던 곳으로 지금도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진주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임진왜란 당시의 치열했던 전장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1차 진주성 전투(1592년 11월 9일)에서는 민관이 하나가 되어 왜적의 침입을 막아냈지만, 제2차 진주성 전투(1593년 7월 19일)에서는 중과부적으로 결국 진주성에 있던 수 만명의 사람들 모두가 죽는 비극으로 끝났다. 그래서 진주성을 돌아보는 내내 그때의 장면이 상상이 되어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진다.
진주성을 내려오면서 과제물을 명분으로 오랜만에 진주를 찾았는데 왜 진작 찾아오지 못했는지 조금은 고향 진주에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다음 번에는 시간을 넉넉하게 마련하여 여유롭게 진주의 유물과 유적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진다. 진주는 선사시대의 유적도 많다. 예를 들면 청동기시대 경작지와 마을이 발견된 진주 대평리 유적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평리 유적은 남강댐으로 수몰되어 현재는 유적지를 볼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진주 청동기문화 박물관은 꼭 한 번 들려고 싶다. 선사시대 진주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3. 참고문헌
역사의현장을찾아서, 송찬섭 외 9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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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23.10.21
  • 저작시기202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2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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