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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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구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1. 선택 배경
2. 동구릉 소개

II. 본론
1. 제1대 태조 왕릉, 건원릉(健元陵)
2. 제5대 문종 왕릉, 현릉(顯陵)
3. 제14대 선조 왕릉, 목릉(穆陵)
4. 제18대 현종 왕릉, 숭릉(崇陵)
5. 제21대 영조 왕릉, 원릉(元陵)
6. 제24대 헌종 왕릉, 경릉(景陵)

III. 결론
1. 현장답사를 통해 느낀점

본문내용

까지 외척들의 세도정치에 시달렸다. 왕비 효현왕후 김씨는 1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계비 효정왕후 홍씨는 74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경릉의 상설제도는 영조때 제정된 ‘국조상례보편’을 따르고 있는데, 세 봉분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을 터서 연결하였으며 각 능 앞에 상석만 따로 마련했을 뿐 모든 제도를 단릉과 마찬가지로 조영하였다. 또한 능 앞의 3단이 2단으로 생략되어 장명등과 문인석, 무인석이 같은 단에 마련되어 있으며, 문인석과 무인석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b. 풍수적 특징
조선 왕릉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경릉의 ‘잉’ 그러나 파혈로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우측 봉분에 헌종이, 중간에 효현왕후 김씨가, 좌측에는 효정왕후 홍씨가 묻힌 삼연릉. 조선 왕릉에 공동묘지격인 삼연릉(三蓮陵) 양식까지 출현하게 된 경릉. 경릉 역시 우상(右上) 매김질에 따라 헌종을 안장시켰는데 풍수상 가장 큰 문제가 걸린 왕릉이다. 자세히 보면 하나의 난간석 안에 모든 능침들이 들어있는 조선 옹릉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헌종
III. 결론 - 현장답사를 통해 느낀점
조만기 : 풍수지리설 과제를 부여받아 현장 답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조선의 왕릉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조선최대의 왕릉인 만큼 관람하면서 웅장하고 대범한 모습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왕권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9개의 왕릉이 다 똑같이 생겨서 가는 곳마다 같은 곳을 답사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토대로 하여 동구릉 이곳저곳을 답사하면서 ‘조선시대의 왕들이 이곳을 왜 터로 잡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풍수지리설이란 과목배우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 것은 우리의 시야로 보아야 보입니다. 서구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 것은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역설일 수도 있으나 서구적 지식으로 우리 것을 보려할 때 우리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풍수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시야이며 조선 왕릉과 조선 왕조의 역사 역시 우리 시야로 볼 때 비로소 속살들이 보일 것입니다. 조선 왕릉이야 말로 풍수지리설이란 과목에 가장 부합되는 명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석환 : 왕릉을 선택하고 답사를 하기 전 군 시절 왕릉에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습니다. 군 복무를 국정원에서 했는데 국정원 옆에는 헌인릉이 있으며 국정원 영내에는 옛 세종대 왕릉(영릉) 터가 남아있었습니다. 국정원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바로 산 중턱에 위치했었습니다. 국정원 영내에 있던 곳이라 사진을 찍어 보관할 수는 없었지만 왕릉 터라고 할 만큼 볕이 잘 들고 앞이 탁 트인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터가 불길하기 때문에 예종 1년 (1469년)에 현 위치로 천장했다고 들었는데 실제 그곳에서 많은 일화들이 있었습니다. 세종대 왕릉터를 조금 더 올라가서 외곽 초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야간 경계근무를 서다 실제 아기 귀신을 봤다던 국정원 직원, 후임이 졸다가 창문에 비친 사당을 봤던 일화와 저 또한 그곳에서 졸 때면 항상 가위에 눌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몸소 터의 기운이 불길함을 느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군 시절 경험으로 왕릉에 관심이 있었고 이번기회에 동구릉을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동구릉을 답사하면서 과연 왜 한 곳에 왕릉이 9개나 존재하는지 느낄 수 있었는데 방문했던 6곳 모두 볕이 잘 드는 곳이었으며 지형이 앞이 탁 트인 곳이었습니다. 또한 동구릉 내에 흐르는 수로와 둘러싸인 숲은 상쾌한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왕릉의 규모면에서는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구릉 답사 1주일 전 개인적으로 가족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천마총, 태종무열왕릉의 엄청난 규모의 왕릉에 인상을 받았는데 그에 비해 규모가 작은 왕릉을 보니 소박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왕릉을 답사하면서 왠지 모를 엄숙함과 조선의 정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탁월한 풍수 지리적 안목을 얇게나마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근찬 : 구리시에 왕릉이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갖고 방문하였습니다. 풍수지리의 명당은 수업시간에 배운 수원 화성, 귀에 익히 들었던 용인이나 옛 한성 근방의 종묘와 같은 위치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릉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풍수지리의 초보적인 지식을 가진 저로서도 ‘이런 곳이 명당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하였습니다. 세, 형, 혈의 풍수원리를 그대로 적용한 동구릉은 물줄기가 산을 둘러싸고 흐르고 있고 아늑한 산들이 9개의 왕릉을 안아주고 있었기에 ‘절대 권력을 자랑하던 조선 왕들이 여기를 선택 하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9개의 왕릉이 한곳에 모여져 있어서 비슷한 듯 하면서 각 무덤마다의 특징이 있다는 점이 이번 답사를 즐겁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왕조의 무덤답게 일반인의 능에서는 볼 수 없는 출입구인 홍살문에서부터 봉분까지 다양한 격식 속에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에 다시 한 번 감탄하였습니다. 특히 각 무덤마다 다르게 생긴 여러 석상들이 인상에 남습니다. 동구릉을 둘러보면서 남부러울 것이 없던 왕들도 죽으면 한줌 재가 되어 무덤하나 남는 것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금 음미 할 수 있었고 조선 왕조역사의 한 부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왕릉을 답사하면서 아직까지는 어떤 무덤에 묻힐지를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풍수적 명당을 보는 안목을 더욱 더 길러야겠다는 다짐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론적인 수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학습을 통하여 직접 눈으로 보고 명당을 느낄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참고문헌
고제희『한국의 묘지 기행』 자작나무 1997
김두규『우리땅 우리 풍수』 동학사, 1996
목을수『고려, 조선릉지』 문성당, 1988
유종근, 최영주『한국 풍수의 원리』동학사, 1997
이세복, 이우영『정통 풍수의 이론과 방법』동학사, 1997
장영훈『한국의 풍수지리와 건축』월간『건축세계』
최창조『청오경, 금남경』민음사, 1993
한국문원『왕릉』한국문원, 1995
『조선왕조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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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2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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