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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전, 군사적 팽창, 민주화와 안보 강화 등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입장 차이 사이의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상주의적인 비무장론을 내세우는 ‘양학 신사’, 현실주의적인 팽창론을 주장하는 ‘호걸군’, 그리고 이에 중립적인 의견을 보이는 ‘남해 선생’의 입장을 근거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토론자 세 인물의 주장을 통해 말하는 세 요소는 당시 일본 현실 속에 있었던 세 요소가 이른바 분해하고 대립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 전개 과정에서 일본 근대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內田義彦, \"ユトピア物語としての三醉人 綸問答\" 筑摩書房, 1977.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일본 사회를 다시 돌아보면 ‘호걸군’의 전략이 옳다고, ‘양학 신사’의 주장이 맞았다고 볼 수 없다. 또 한편으로 ‘남해 선생’이 혜안을 보여줬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주의가 아무리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주의가 주장되지 않으면 국가의 진로는 오로지 힘에 의한 국제 정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위의 논문, 야가사키 히데노리.
, 그 결과가 곧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의 결말을 낳게 되었다는 것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반대로 이상주의의 주장만으로는 실현되기가 어렵고 쉽게 와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극은 여전히 일본의 헌법으로 남아있고, 이상의 의미가 퇴색되어 그 이상을 실현하지 않으려는 정당들만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이 그러한 평화국가로서 반세기 가량 여러 국민들과의 협조 속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주의자의 주장처럼 미일안보조약에 의한 힘의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위의 논문, 야가사키 히데노리.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카에 조민은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자유, 도의, 혁명에 대해 지속적으로 되묻는 행위 자체가 결과적으로 미래에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도정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논문, 이예안
아직까지도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인 맥락에 맞춰 민주화와 평화의 가치를 적용한다면 보다 나은 선택과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출처 및 참고문헌
『일본사개설』, 김현구, 지영사, 1994.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민음사, 2014.
『國民之友』, 3, 1887.
「나카에 쵸민(中江兆民)의 평화이념과 맹자」, 박홍규, 정치사상연구 11.2, 2005.
「나카에 조민의 『삼취인경륜문답』 다시 읽기 - 자유도의혁명을 둘러싼 문답과 민주주의
비전」, 이예안, 인문논총, 72(2), 2015.
「근대일본정치사상에 나타난 이상과 현실」, 야가사키 히데노리, 國際政治論叢 44.2, 2004.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제와 大韓國國制의 비교 전제군주권적 측면에서-」, 장영숙, 한국민족
운동사연구 0.85, 2015.
內田義彦, \"ユトピア物語としての三醉人 綸問答\" 筑摩書房, 1977.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일본 사회를 다시 돌아보면 ‘호걸군’의 전략이 옳다고, ‘양학 신사’의 주장이 맞았다고 볼 수 없다. 또 한편으로 ‘남해 선생’이 혜안을 보여줬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주의가 아무리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주의가 주장되지 않으면 국가의 진로는 오로지 힘에 의한 국제 정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위의 논문, 야가사키 히데노리.
, 그 결과가 곧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의 결말을 낳게 되었다는 것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반대로 이상주의의 주장만으로는 실현되기가 어렵고 쉽게 와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극은 여전히 일본의 헌법으로 남아있고, 이상의 의미가 퇴색되어 그 이상을 실현하지 않으려는 정당들만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이 그러한 평화국가로서 반세기 가량 여러 국민들과의 협조 속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주의자의 주장처럼 미일안보조약에 의한 힘의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위의 논문, 야가사키 히데노리.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카에 조민은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자유, 도의, 혁명에 대해 지속적으로 되묻는 행위 자체가 결과적으로 미래에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도정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논문, 이예안
아직까지도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인 맥락에 맞춰 민주화와 평화의 가치를 적용한다면 보다 나은 선택과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출처 및 참고문헌
『일본사개설』, 김현구, 지영사, 1994.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민음사, 2014.
『國民之友』, 3, 1887.
「나카에 쵸민(中江兆民)의 평화이념과 맹자」, 박홍규, 정치사상연구 11.2, 2005.
「나카에 조민의 『삼취인경륜문답』 다시 읽기 - 자유도의혁명을 둘러싼 문답과 민주주의
비전」, 이예안, 인문논총, 72(2), 2015.
「근대일본정치사상에 나타난 이상과 현실」, 야가사키 히데노리, 國際政治論叢 44.2, 2004.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제와 大韓國國制의 비교 전제군주권적 측면에서-」, 장영숙, 한국민족
운동사연구 0.85, 2015.
內田義彦, \"ユトピア物語としての三醉人 綸問答\" 筑摩書房,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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