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참고문헌에 제시된 저서 중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선택하여 독후감을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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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음 참고문헌에 제시된 저서 중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선택하여 독후감을 쓰시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세균설·인종주의·강제격리

2. 식민지 조선과 한센병

3. 한센병 치료를 향해

4. 소록도

5.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

6. 개혁과 반동의 시간

7. 음성나환자촌

8. 지금 한센인은 어디에 있는가?

8. 독후감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국가와 시민사회의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센인에 대한 강제격리라는 역사적 경험은 아직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여전히 강제격리는 당시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한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것처럼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한센병 문제의 해결이라는 결과에 근거하여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센병 문제의 해결에 있어 강제격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생활수준의 향상이었다. 소록도병원에서의 인권침해는 장애인시설, 부랑아시설, 1980년대에 이르면 형제복지원,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정신장애인시설에서의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강제격리와 사회적 타자의 낙인, 그리고 차별에 대한 통시적인 연구가 앞으로 요구된다.
『질병, 낙인』은 ‘불치병’으로 여겼던 한센병이 ‘완치’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학의 발전사이자 치료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한센병균을 제거하는 성분과 약제를 개발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 그 결과 등장한 대풍자유·다이안손·MDT에 대한 이야기, 웨이드법을 비롯한 균 검출 방법, 신체 절단·눈썹 빠짐·수하수·족하수 등 완치 후에도 복원되지 않는 외모 변형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등 근대 의학의 지식과 치료기술이 흘러온 시간을 찬찬히 소개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효과적인 치료제와 검사방법이 꼭 ‘완치’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센병의 경우 완치 판정을 받더라도 균의 검출 부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고 약에서 내성균이 만들어지는 일도 있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 역시 격리와 치료를 마친 확진자가 다시 양성 판정을 받거나, 백신이 무용해지는 일도 예고 없이 변이바이러스 생성되는 일도 있다. 질병이 온전히 의학의 몫일 수 없다면, 그 빈틈에 방역체계를 세우고 일상적 차별을 줄이는 일은 국가와 더불어 우리의 일일지 모른다.
변화된 한센병 정책에서도 폭력의 표출은 불가피하였다. 이시기 정부 정책에서 핵심은 치료 중심의 체계를 구축하고, 계몽 활동을 통해 한센병과 관련된 사회 인식을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액면 그대로 보았을 때, 이는 인도주의적인 것이었고 종래의 강제격리 정책보다 개선된 형태였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정부의 정착촌 사업이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WHO는 한국의 정착촌 사업을 구속의 연장으로 간주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착촌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근거로 정부는 연간 재정의 부족뿐만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 그리고 한센인의 현실기피 현상을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정부의 주장은 단지 명분에 불과하였다. 이는 정착촌 사업의 실질적인 단면과도 연결된다. 원칙적으로 한센인을 퇴원시키는 과정에서 두 가지의 요소가 필수적이었다. 하나는 퇴원하는 한센인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직업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인식을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한센인들의 퇴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직업 훈련은 결여되었다. 사회 인식 개선은 ‘나병의 날’ 행사나선명회 등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그 이상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특히 정착촌이 들어서게 될 지역민에 대한 설득 혹은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지역 사회에서의 폭력이 존속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음성 한센인의 퇴원마저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1960년대 소록도병원의 인원 중 음성 한센인은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열악한 기반과 사회 편견 때문에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되지 못하였다. 이는 음성 한센인들이 시설 내에서 장기 체류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설령 퇴원하였더라도 적지 않은 한센인들은 퇴원을 전후로 국가로부터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실질적인 지원이 결여된 속에서 정부가 강조하였던 것 중의 하나는 한센인들의 자활이었다. 즉 단순히 인식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센인 당사자들의 자립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실질적인 지원의 결여 속에서 나온 정부의 공식 구호는 모순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는 많은 한센인들에게 폭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통제하고 완치를 향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동시에 질병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변의 이웃을 쉽게 배제하고 혐오하며 낙인찍을 수 있다는 것. 한센병과 한센인이 힘겹게 깨우쳐준 메시지가 이 책을 읽는 분들께 가닿기를 바라본다.
Ⅲ.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다음 참고문헌에 제시된 저서 중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를 선택하여 독후감을 써 보았다. 국내의 억압적인 정책은 1960년대에 치료 중심의 정책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이와 같은 변경은 1950년대 원조기구들의 활동을 통한 미국의 개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처음에 한센병에 무관심하였던 미국은 1952년부터 한국의 한센병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였고, 본격적인 구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들의 구호활동의 이면에는 한국이 지닌 전략적인 가치를 인식하게 된 미국의 세계 전략과, 한센병이 극복될 수 있다는 WHO의 공식 입장이 작용하고 있었다. 이 시기 원조구들은 단순히 한국에 방역에 필요한 자금 및 약품의 지원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의 양성과 이동진료반 활동에까지 관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1950년대 후반 한국에서의 가시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의 한센병 관련 활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권고하였다. 원조기구들의 개입은 비록 한국의 강제격리 정책과의 마찰을 피하지는 못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국내 한센인의 수가 감소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참고문헌
김재형(2021),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돌베개.
대한나학회, 『나병학』, 한국한센복지협회, 2004.
김기주, 「소록도 자혜의원 나환자정책의 성격」, 『역사학연구』44, 호남사학회, 2011.
김미옥·최수연, 「여성한센인의 삶에 관한 생애사 연구」, 『사회복지연구』44, 한국사회복지연구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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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10.17
  • 저작시기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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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26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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