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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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연구과제 - 일본
전쟁중의 일본인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메이지 유신 (明治維新)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기리(義理)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오명(汚名)을 씻는다
인정의 세계
덕의 딜레마
자기 수양
어린아이는 배운다
패전 후의 일본인

본문내용

자유로운 영역이다.
일본에서는 분만은 성교와 마찬가지로 은밀히 행해져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갓난아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기 때문에, 빨리 영리해지고 흥미있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자기를 등에 없고 있는 연상의 아이들의 유희를, 실제로 졸고 있는 당사자처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나타낸다. 일본의 갓난아이는 보통 걷기보다는 먼저 말을 하게 된다. 기어다니는 것은 보통 좋지 않다고 여겨졌다. 또한 갓난아이는 만 한 살이 될 때까지는 서거나 걷도록 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전통적으로 있어서 그 이전에 모친은 갓난아이가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켜려 했다. 젓 먹이는 것은 어머니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감정은 변함없지만, 서서히 새로운 습관을 따르는 사람들은 수유 기간을 줄이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참아야 하는 어머니의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인이 된 일본인에게 현저하게 나타나는, 조소와 배척에 대한 공포심을 기르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자신의 놀림을 받고 있다는 걸 몇 살이 되어야 할게 되느냐를 단정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늦든 빠르든 아이는 자신이 놀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조롱받고 있다는 의식과 함께 일체의 안전한 것, 익숙해져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이들의 무서운 공포의 하나가 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타인에게 조롱을 당하게 될 경우라도 이 유아기의 공포가 어디엔가 남아 있게 된다.
아버지에게 대해서 아이는 언제나 존경의 태도를 나타낸다. 아버지는 아이에겐 높은 계층적 지위를 대표하는 훌륭한 모범으로서, 항상 쓰여지는 일본식 표현을 빈다면, 이 아이는 예의 범절을 익히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적절한 경의를 표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훈계와 놀려 댐의 수단 외에 아이들 훈육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수단은,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어 이들의 주의를 목적물에서 다른 데로 옮기는 방법이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태도를 배운다. 신관이나 스님은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들이 조직적으로 종교와 접하게 되는 것은 철따라 행해지는 명절놀이에 가서 참예자 일동과 함께 간누시로부터 정화수를 뿌려 받은 경우에 한한다. 어떤 아이는 불교의 참배에 따라가기도 하나, 이것 또한 무언가 특별한 축제가 행해질 경우에 국한된다. 계집아이의 예의 범절에 대한 훈련도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는 사내아이와 별 차이가 없다. 근대 일본의 중학교나 군대에서 불 수 있는 이러한 사태가 그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는 이유는 조소와 모욕에 관한 옛날부터 일본에 내려오는 습관에 기인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의 재건에 있어서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는 지도자들은 국민들이 청춘 시대를 보내는 여러 학교나 군대에서의 학대와 소년들을 괴롭히는 습관에 특별한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13. 패전후의 일본인
대일 전승일 이래, 미국인은 그들이 일본을 관리함에 있어 행한 역할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길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랑의 훌륭한 근거가 미국의 신문지상과 라디오에서 당략적인 칭찬이나 비난으로 자주 거론됨에 따라 맹 애매해졌다. 그리고 어떤 주어진 정책이, 바람직한가 그렇지 못한가의 여부에 확신을 가지고 판단할 만큼 일본 문화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썩 드물었다.
일본 문화에서는 심한 강권주의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거의 모든 서구인 관찰자가 느껴 온 것처럼, 서구의 경험 속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배려와 사랑으로써 자식을 대하는 인간이다. 일본의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사이에 어떤 종류의 참된 우애 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 또 아버지를 공공연히 자랑스럽게 여기므로 아버지는 다만 한 번 목청을 돋우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자기 뜻대로 행동하게 할 수가 있다. 일본인은 그들의 세계를 이런 식으로 보기 때문에 사리나 부정에 대해 반항하기는 하나 결코 혁명가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세계의 조직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 행한 것같이 제도 그 자체에는 조금도 비난을 퍼붓지 않고도 가장 철저한 변혁을 실현할 수가 있었다.
일본은 일찍이 강대국을 이긴 바 있다. 일본이 전승국으로 되었을 때, 적이 마침내 항복하고 그 적국이 일본을 조소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세심한 마을을 써서 패배한 적에게 모욕을 주지 않으려 애쓴 증거가 있다. 미국의 최종적 승리는 일본인의 사태를 다시 변화시켰다. 일본인은 궁극적 패배에 직면함으로써, 그들의 생활 관습에 따라 여태껏 취해온 방침을 포기했다. 그 독특한 윤리 덕택으로, 일본인은 장부에서 일체의 숙원 기록을 지워 버릴 수 있었다. 미국 정책과 함께 맥아더 장군의 점령 정책은 모처럼 깨끗해진 새로운 장부에 새롭게 모욕을 기입하는 일을 피하고, 단지 일본인의 눈에 패전의 당연한 결과로 비춰지는 일반 이행하도록 한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이것이 효과적이었다. 일본에게는 이제는 그들에게 옛날과 같은 특권적 지위를 주지 않는다.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 및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평화로운 나라들 사이에서 존경 받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평화가 실현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할것이다. 그렇지 않게 되면, 무장된 진영으로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하리라.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하다면, 일본은 스스로의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이리라. 만일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 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뼈저리게 채득하였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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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1.06.06
  • 저작시기200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8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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