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구원과 무절제한 환멸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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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도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영광상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어려운 시절엔 <그저 숨 죽이고 사는 게 제일>이라는 것, 계숙의 어머니가 한 말처럼 <있는 거나 알뜰하게 챙겨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억만은 타락한 세계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영혼의 비상을 소망하며, 이를 자신의 복잡한 성격 탓이라 말한다.
한 여자를 사랑하기엔, 그리고 그것으로 행복하기엔, 나는 너무 복잡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회로 나아가서 시련과 좌절을 겪다가 마침내 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만들고 이웃한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 이런 평범한 삶을 두고 헤겔은 속물적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억만의 복잡한 성격은 억압적인 현실의 원리를 거부하고, 속물적인 삶의 행복보다 자유를 향하는 낭만적 열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방금, 시련을 이겨내는 계숙의 단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행복을 추구한다면, 복합적 내면성을 지닌 억만은 자유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억만이 죽음으로써 역사적 시간의 잔인함을 초월하고자 한다면, 계숙은 낯설고 비일상적인 죽음을 피해 외부세계의 일체를 긍정한다고 볼 수 있다. 산문적 현실 앞에서 참담하게 좌절한 억만의 시적 내면을 병적이라고만 할 수 없다면, 계숙의 태도는 무가치한 현실과 타협하거나 천박한 속물로 떨어질 위험을 지닌다. 「김문갑전」에 주어진 풍자적 시선이 이를 입증한다. 다른 한편, 속물적 삶을 거부하고 억만의 환멸적 내면을 유보없이 승인한다면, 이는 계숙이의 성격적 단순성이 지닌 건강한 힘을 부정하고, 자기연민에 몰두하는 병적 징후라고 할 것이다.
이처럼, 계숙과 억만이 드러내는 삶의 태도는 서로를 용납하기 어렵다. 황전도사, 계숙, 억만이 보여준 삶의 방식은 겉돌면서 서로를 부정하고 지워버린다. 이는 무엇보다 김영현의 소설에서 환멸의 심리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이번 소설에서 90년대의 변화된 상황이 폭풍처럼 할퀴고 지나간, 외롭고 황량한 영혼의 절규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삶이 무가치하며 그래서 이를 가차없이 폭로한다 해도, 무절제한 환멸심리란 시간에 굴복한 소설가의 무기력을 가장 참담하게 드러냄이 아닐까. 꿈과 현실, 본질과 삶을 분리시키고 때로는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는 시간, 이 역사적 시간에 맞선 싸움이 부질없는 것이되 그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 여기에 소설가의 운명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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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1.12.19
  • 저작시기200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0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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