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제 목 : 철학적 신학과 기독교 철학
□ 총 페이지수 : 13
□ 목 차:
기독교 철학은 창조, 타락, 구속, 극치의 기본적인 기독교 세계관적 틀을 가지고서 철학적 작업을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넓은 의미의 기독교 철학에는 이와는 다른 관심을 가지고 좀 다른 과제에 관심하는 이들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은총의 이원론적 구조를 가지고서 기독교 철학을 하는 토미즘과 네오토미즘의 로마 가톨릭적 철학(짜끄 마리땡이나 에띠엔 질송, 또 들자면 코플스톤 등의 노력)이 있고, 이런 입장에의 철학과 깊이 연관지으면서 발전해 온 소위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의 전통이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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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기독교 철학은 창조, 타락, 구속, 극치의 기본적인 기독교 세계관적 틀을 가지고서 철학적 작업을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넓은 의미의 기독교 철학에는 이와는 다른 관심을 가지고 좀 다른 과제에 관심하는 이들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은총의 이원론적 구조를 가지고서 기독교 철학을 하는 토미즘과 네오토미즘의 로마 가톨릭적 철학(짜끄 마리땡이나 에띠엔 질송, 또 들자면 코플스톤 등의 노력)이 있고, 이런 입장에의 철학과 깊이 연관지으면서 발전해 온 소위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의 전통이 있습니........
본문내용
으로 공부하기 위해' 새벽 5시에 데까르트가 자신에게 철학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던 데까르트에게 북부의 매서운 새벽 공기는 치명적이었고, 마침내 그는 스웨덴으로 간지 6개월만에 폐결핵으로 죽고 만다. 그때 그의 나이는 54세에 불과했다.
-3-
영웅은 난세(亂世) 속에서 탄생한다. 그가 살던 시대는 철학적으로도 난세였다. 중세의 제도와 세계관은 변화하는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격하게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대신할 확고한 세계관이 세워진 것도 아니었다. 데까르트는 이제 새로운 과학의 방법으로 무너진 세계관을 다시 세우려 했다. 그러나 성서에 입각한 지식이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면, 지식은 새로운 방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데까르트에게 그 구성 방법은 '수학'이었다.
수학적 방법은 분명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 출발점이 되는 공리(公理)만 확실하다면, 이로부터 연역되는 모든 지식은 마찬가지로 확실하다. 그는 이러한 수학적 방법을 존재의 본성을 밝히는 데 사용하려 하였다. 그는 성서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뒤엎어 버리고 첫 번째 기초부터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지식의 출발점이 되는 가장 확실한 지식을 도출해 내어, 이로부터 연역적으로 세계에 대한 지식을 다시 구성하려 한 것이다.
출발점이 되는 '가장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그는 '방법적 회의'를 전개한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그런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의심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꿈'에 불과하지 않은지조차 의심해 본다. 나아가 '2+3=5'와 같이 확실한 지식도 악마가 우리를 속이는 것일 수 있다고 의심해 본다. 이런 과정을 계속한 끝에 그는 마침내 이토록 철저하게 의심해 보아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이 모두 '꿈'에 불과한 거짓이라고 해도 적어도 '그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있다. '2+3=5'가 거짓인데 참이라고 악마가 속이고 있다고 해도 '속고 있는 나'는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이 사실로부터 유명한 다음의 명제를 도출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그는 이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명제를 기초로 이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이런 명증(明證)한 개념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개념은 완전한 존재인 신(神)에게서부터 왔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은 있다. 그리고 완전한 신이 우리를 세상의 모습이 거짓되도록 속이지는 않으리라는 점에서 세계의 모습은 거짓일 수 없다. 이로써 그는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세계와 지식에 새로운 확실성의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4-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사상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확실성의 근거를 신에서 인간으로 돌려놓았다는 점이다. 중세적인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 지식의 확실성은 신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명제에 의하면 확실성의 최종 근거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신을 옹호하기 위해 철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에게서 절대적 확실성의 권좌를 빼앗아 인간 이성에게 주었던 셈이다. 이 것이 그가 '신과 교회에 영광을 위해 싸운 철학자', '그리스도교 사상에 봉기하는 반란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나아가, 이 명제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res cogitans)로 규정함으로써 인간 이성의 지위를 더 한층 높였다. 인간 외의 다른 존재들은 물질적 존재(res extensia)일 뿐이다. 인간도 '육체'라는 물질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물을 비롯한 다른 존재들은 단순한 '물질'일 뿐이다. 그것들은 태엽으로 움직이는 시계와 같이 정교하게 움직이는 '자동 기계(automata)'일 뿐 결코 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 반면, 인간만이 이성을 갖고 있으며 바로 이점 때문에 인간은 다른 여타의 존재들 보다 존엄한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합리론'이라는 사상의 흐름을 낳았고 이후 150년간 계속된 정신과 육체를 둘러싼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나 보다 길게 보면, 그의 사상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집약되는 서양 근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근대 문명은 불합리한 권위에 저항하며 인간의 합리적 판단에 호소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근거하여 인간의 평등을 주창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은 인류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그의 사상은 인간 이성에 과도한 지위를 줌으로써 이성을 갖지 못한 존재들을 인간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제 자연은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 아닌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연 파괴는 정당화되었다. 또한, 인간의 감정은 정신이 물질에 영향받은 '저급한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 철저하게 탄압 받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사조가 최근에 등장한 탈근대(post-modern)이다. 탈(脫)근대는 더 이상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인간의 욕구를 억눌러야 할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인간을 벗어나 자연을, 이성이 아닌 감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 시대를 지배했던 데까르트 사상은 이제 공격받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영웅은 주목을 받고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시대가 지나면 무대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철학의 영웅은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상의 그늘은 시대에 깊게 드리우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지배한다. 사회를 지배하는 '합리성' 밑에 데까르트의 사상은 항상 우리에게 영향을 끼쳐왔다. 만약 우리가 받아들인 서구 근대 문명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데까르트와 무관할 수 없다. 이 것이 우리가 데까르트를 지금 이 시대에 관심을 갖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이다. 시간이 된다면, 그의 '방법서설'을 읽어보자. 그리고 그 사상의 의의와 한계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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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난세(亂世) 속에서 탄생한다. 그가 살던 시대는 철학적으로도 난세였다. 중세의 제도와 세계관은 변화하는 세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격하게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대신할 확고한 세계관이 세워진 것도 아니었다. 데까르트는 이제 새로운 과학의 방법으로 무너진 세계관을 다시 세우려 했다. 그러나 성서에 입각한 지식이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면, 지식은 새로운 방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데까르트에게 그 구성 방법은 '수학'이었다.
수학적 방법은 분명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 출발점이 되는 공리(公理)만 확실하다면, 이로부터 연역되는 모든 지식은 마찬가지로 확실하다. 그는 이러한 수학적 방법을 존재의 본성을 밝히는 데 사용하려 하였다. 그는 성서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뒤엎어 버리고 첫 번째 기초부터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 지식의 출발점이 되는 가장 확실한 지식을 도출해 내어, 이로부터 연역적으로 세계에 대한 지식을 다시 구성하려 한 것이다.
출발점이 되는 '가장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그는 '방법적 회의'를 전개한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그런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의심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꿈'에 불과하지 않은지조차 의심해 본다. 나아가 '2+3=5'와 같이 확실한 지식도 악마가 우리를 속이는 것일 수 있다고 의심해 본다. 이런 과정을 계속한 끝에 그는 마침내 이토록 철저하게 의심해 보아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이 모두 '꿈'에 불과한 거짓이라고 해도 적어도 '그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있다. '2+3=5'가 거짓인데 참이라고 악마가 속이고 있다고 해도 '속고 있는 나'는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이 사실로부터 유명한 다음의 명제를 도출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그는 이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명제를 기초로 이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이런 명증(明證)한 개념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개념은 완전한 존재인 신(神)에게서부터 왔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은 있다. 그리고 완전한 신이 우리를 세상의 모습이 거짓되도록 속이지는 않으리라는 점에서 세계의 모습은 거짓일 수 없다. 이로써 그는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세계와 지식에 새로운 확실성의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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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사상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확실성의 근거를 신에서 인간으로 돌려놓았다는 점이다. 중세적인 스콜라 철학에 있어서 지식의 확실성은 신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명제에 의하면 확실성의 최종 근거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신을 옹호하기 위해 철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에게서 절대적 확실성의 권좌를 빼앗아 인간 이성에게 주었던 셈이다. 이 것이 그가 '신과 교회에 영광을 위해 싸운 철학자', '그리스도교 사상에 봉기하는 반란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나아가, 이 명제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res cogitans)로 규정함으로써 인간 이성의 지위를 더 한층 높였다. 인간 외의 다른 존재들은 물질적 존재(res extensia)일 뿐이다. 인간도 '육체'라는 물질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물을 비롯한 다른 존재들은 단순한 '물질'일 뿐이다. 그것들은 태엽으로 움직이는 시계와 같이 정교하게 움직이는 '자동 기계(automata)'일 뿐 결코 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 반면, 인간만이 이성을 갖고 있으며 바로 이점 때문에 인간은 다른 여타의 존재들 보다 존엄한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합리론'이라는 사상의 흐름을 낳았고 이후 150년간 계속된 정신과 육체를 둘러싼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나 보다 길게 보면, 그의 사상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집약되는 서양 근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근대 문명은 불합리한 권위에 저항하며 인간의 합리적 판단에 호소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근거하여 인간의 평등을 주창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은 인류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그의 사상은 인간 이성에 과도한 지위를 줌으로써 이성을 갖지 못한 존재들을 인간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제 자연은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 아닌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연 파괴는 정당화되었다. 또한, 인간의 감정은 정신이 물질에 영향받은 '저급한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 철저하게 탄압 받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사조가 최근에 등장한 탈근대(post-modern)이다. 탈(脫)근대는 더 이상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인간의 욕구를 억눌러야 할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인간을 벗어나 자연을, 이성이 아닌 감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 시대를 지배했던 데까르트 사상은 이제 공격받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영웅은 주목을 받고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시대가 지나면 무대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철학의 영웅은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상의 그늘은 시대에 깊게 드리우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지배한다. 사회를 지배하는 '합리성' 밑에 데까르트의 사상은 항상 우리에게 영향을 끼쳐왔다. 만약 우리가 받아들인 서구 근대 문명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데까르트와 무관할 수 없다. 이 것이 우리가 데까르트를 지금 이 시대에 관심을 갖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이다. 시간이 된다면, 그의 '방법서설'을 읽어보자. 그리고 그 사상의 의의와 한계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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