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속의 108과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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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선행연구 요약
가. 108
1) 訓民正音 御旨의 글자수
2) 月印釋譜 제 1 권의 張數
나. 54
다. 27
라. 기타
1) 270
2) 33
3. 朝鮮王朝實錄 속의 108
가. 佛事
나. 敬老行事
다. 人選
라. 禮物
마. 戰果報告
바. 音樂
사. 上疏
4. 정리
參考文獻

본문내용

8이라는 숫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은 이 수가 訓民正音 창제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심상치 않은 수여서 그 배경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따라서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임이 분명한 예로만 엄격히 한정하여 조사해 보니 108이라는 수가 實錄에는 적어도 34 회 이상이나 등장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佛事, 敬老行事, 人選, 禮物, 戰果報告, 音樂, 上疏' 등으로 다양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국사들이었다. 이 행사들은 성격상으로는 다양해 보이나 잘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었는데, 대개 왕이나 부처님 같은 절대자에게 무엇인가를 바치는 성격의 행사들이거나 그에 준하는 의미를 지니는 행사들이었다. 이 하나 하나의 행사는 이 행사의 주체, 즉 무엇인가를 바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막중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극진한 정성과 경건함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였을 것이며, 이를 위하여 선택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108이라는 수를 도입하는 일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 자료들로부터 조선시대 사람들이 108이라는 수에 부여했던 의미를 내용면과 형식면에서 귀납해 낼 수 있다. 그들은 이 수를 내용상으로 '많은 것', '완전한 것', '신성한 것'을, 형식상으로는 '지극한 정성'을 상징하는 수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08에 결부되어 있는 이러한 의미로 말미암아 이 수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국사를 운용하는 장면에서 빈번하게 선택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수는 특별한 목적 하에 용의주도한 배려를 배경으로 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이같은 조사를 하게 된 이유는 역시 한글 창제의 주변에 등장하는 108 수들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글을 창제한 당사자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주변에 108이라는 신성한 수와 관련되는 흔적들을 남겨놓은 것일까? 우리가 이번에 행한 조사는 이러한 의문에 한 가지 해답을 제공해 준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그들이 이러한 일련의 주도면밀한 노력을 기울인 첫 번째 이유는 새 문자를 창제하면서 이 과업에 임하는 자신들의 극진하고 정성스런 태도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 둘 필요가 있었던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추론이 가능한 근거는 바로 이번에 조사된 실록 속의 108 수들의 다양한 출현 환경이 대부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신문자를 창제하려 한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불교의 보급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 증거들로 보아 한글 창제에 관계했던 당사자들의 대부분이 우선 불교인들이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거니와, 한글 창제 당시의 여러 가지 기록들을 살필 때 한글 창제 작업은 하나의 佛事였다. 그들이 그렇게 정성껏 열심히 신문자 창제에 진력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 작업을 하나의 佛事에 버금가는 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내용의 불사 중에서, 문자 만들기를 불사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가? 그 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음소 문자를 개발하면서 漢文으로 되어 있는 여러 분야의 많은 典籍들이 더 쉬운 문자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매우 신실한 불교 신자들이었던 훈민정음 창제 당사자들, 즉 世宗과 世祖는 이 新文字에 의해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불교의 경전들을 '어리석은 백성'들에게까지 더 널리 전파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같은 확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글 창제의 배경에 깔려 있는 종교적인 목적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을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그들은 조선 건국 초기의 이른바 斥佛崇儒의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꾸준히 그들의 감시를 받는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분위기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신문자 창제의 또 다른 목적을 지극히 은밀한 방법으로 표현해 두고자 했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108과 그에 관련되는 수들을 표나지 않게 조절하여 둠으로써 정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한글 창제의 동기가 불교 보급에 있었다는 주장은, 실제로 그들이 만든 한글을 사용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를 보급하는데 앞장을 섰던 사실로 증명되고도 남는다. 訓民正音의 창제 뒤에 진행된 각종 전적의 諺解 사업 중에서 불교 경전의 언해가 양적으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安秉禧, 1992)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108과 54의 숫자가 발견되는 책이 바로 月印釋譜인데, 주지하다시피 이 책은 釋譜祥節과 月印千江之曲을 합한 책으로서 이 자체가 이미 불교 경전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저작자들의 불교에 대한 信心과 한글 창제의 또 다른 목적 사이의 관계를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參 考 文 獻
姜信沆(1987), 訓民正音硏究, 成均館大學校 出版部.
姜信沆(1992), "한글創制의 背景과 佛敎와의 關係", 佛敎文化硏究 제3집, 靈鷲佛敎文化硏究院.
金光海(1983), 訓民正音의 우연들 ,大學新聞, 1982.11.19.
金光海(1989), 訓民正音과 108 , 周時經學報 제 4 집.
金光海(1990), 訓民正音 창제의 또다른 목적 , 姜信沆 교수 회갑기념 논문집.
金光海(1992), "한글 創制와 佛敎信仰", 佛敎文化硏究 제3집, 靈鷲佛敎文化硏究院.
金敏洙(1971), 注解 訓民正音 ,通文館.
金完鎭(1975), 訓民正音 子音字와 加劃의 原理 , 語文硏究 7.8호, 一潮閣.
安秉禧(1976), 訓民正音의 異本 , 震檀學報 42, 震檀學報.
安秉禧(1992), "初期佛經諺解와 한글", 佛敎文化硏究 제3집, 靈鷲佛敎文化硏究院.
안춘근(1991), 옛 책, 빛깔 있는 책들, 대원사.
李東林(1973), 諺文字母俗所爲 反切二十七字' 策定根據 , 梁柱東博士 古稀紀念 論文集.
李萬(1992), "朝鮮初期 佛敎界의 狀況과 諺解經典의 性格", 佛敎文化硏究 제3집, 靈鷲佛敎文化硏究院.
李成九(1985), 訓民正音硏究, 東文社.
국역본 朝鮮王朝實錄 Ⅰ-Ⅲ (CD롬), 서울 시스템.
訓民正音
月印釋譜
訓蒙字會
  • 가격2,300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02.06.02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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