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제 목 : 사무엘상하를 읽고
□ 총 페이지수 : 9
□ 목 차:
Ⅰ. 요약
1. 사무엘 상
2. 사무엘 하
Ⅱ. 감상 및 논평
1. 사무엘의 탄생
2. 사울의 변심
3.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
4. 다윗의 의로움
5. 기뻐서 춤추며 하나님을 높이는 다윗
6. 다윗의 부정과 하나님의 정죄하심
7. 사무엘 상, 하를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점과 대답
1)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이 패전하도록 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기게 하셨을까
2) 하나님은 왜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을까
3) 하나님도 후회하실까
4) 요나단은 왜 도망가는 다윗에게 자비를 배풀어달라고 했을까
□ 총 페이지수 : 9
□ 목 차:
Ⅰ. 요약
1. 사무엘 상
2. 사무엘 하
Ⅱ. 감상 및 논평
1. 사무엘의 탄생
2. 사울의 변심
3.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
4. 다윗의 의로움
5. 기뻐서 춤추며 하나님을 높이는 다윗
6. 다윗의 부정과 하나님의 정죄하심
7. 사무엘 상, 하를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점과 대답
1)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이 패전하도록 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기게 하셨을까
2) 하나님은 왜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을까
3) 하나님도 후회하실까
4) 요나단은 왜 도망가는 다윗에게 자비를 배풀어달라고 했을까
본문내용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천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춘 춤을 그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내 아버지의 영광을 기뻐하는 것이므로 잘못됨이 없다고 말한다. 다윗의 기쁨은 순수한 아이의 것과 같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순진한 아이처럼 행동하였다. 그는 그가 다스리는 백성들 앞에서는 권위를 세워야 했지만 그를 왕으로 만든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는 그의 영에 복종하는 순수한 아이와 같아애 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울이 교만한 죄를 지어 하나님에게서 떠난 것과 대조된다. 또한 다윗은 자신이 좋은 궁에 거하면서 여호와의 궤가 천막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죄송하게 여겼다. 다윗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마음 속에 그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고 귀하신 분임을 인정하는 신앙심이 굳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다윗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그의 중심에 진실함과 겸손함이 있음을 아시고 크게 기게 기뻐하셨다.
6. 다윗의 부정과 하나님의 정죄하심
다윗은 우연히 우리아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 적의 손에 죽게하고 미망인이 된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의 부정한 행동을 보시고 노하신다. 다윗은 뒤늦게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한다. 그러나 정확하신 하나님은 다윗이 우리아에게서 얻은 첫아이를 빼앗아 버리신다. 또한 다윗의 아들이 누이동생을 범하고 그로인하여 형제간에 살육이 벌어지며 후에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쫑기게 된다. 그러나 다윗의 지혜롭고 신실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동시에 욕심이 있는 한 인간이었다. 그는 한순간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남의 아내를 부정한 방법으로 뺏는 죄를 범했다. 결국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서 얻은 아이가 앓아서 죽어가게 된다. 다윗은 이 아이가 신음할 때에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죽었다. 다윗은 아이가 죽기 전에는 슬퍼하며 간구하였으나 아이가 죽고난 다음에는 오히려 정신을 추스렸다. 다윗은 잘못하고 실수하고 엉뚱한 일을 한 인간이었으나 그의 삶에 다른 점이 있었다. 일상 생활에서 일일이 하나님께 물어, 하나님의 표정을 살피는데 아주 빨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치가 심상치 않으면 두 손 들고 하나님께 급히 회개했다. 눈치가 빨라서 하나님의 표정을 살피는 영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다윗이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을 가고 실수하고 범죄에 빠지지만, 급히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도 일일이 하나님께 묻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다윗처럼 하나님 뜻을 묻지 않고 부정한 일을 행하며 이를 회개한다면서 얼마나 내마음대로 쉽게 자신을 용서하는지 생각해볼 때 부끄러울 따름이다.
7. 사무엘 상, 하를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점과 대답
1)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이 패전하도록 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기게 하셨을까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가면 자동적으로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크게 패하고 언약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긴다.(삼상 4:1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사람이 정해 놓은 장소에 얽매이는 분이 아님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쟁에서 패하게하고 언약궤를 빼앗기게 하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언약궤를 주술적, 미신적으로 의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한 징계였다. 또한 그 당시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빼앗기도록 그냥 내버려두셨던 것은 엘리 가문의 죄 때문이기도 했다.(삼상 4:17-18)죄를 짓고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 받으려 할 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느냐 아니냐는 신앙 태도와 직접 관련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참 믿음만이 하나님의 도움과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2) 하나님은 왜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소리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왕이 다스려주길 바라는 인간적인 생각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하나님이 세우신 사무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은 아시면서도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주셨다. 그 이유는 왕의 통치로 인해 겪을 어려움을 통해 진정으로 자신을 구원해주는 왕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3) 하나님도 후회하실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며 완전한 분이시다.(삼상 15:29) 하나님께 있어서 후회란 있을 수 없다.(민 23:19)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후회하셨다'라는 말은 매우 슬퍼하셨다는 뜻으로, 이후에는 하나님이 이전과 다르게 취급하시고 행동하셨다는 말이다. 사울이 처음 왕이 될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교만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임명하셨던 것을 후회하셨다. 사무엘도 죽을 때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고 다윗을 찾아가 기름부어 왕으로 삼았다. 이 외에도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신 32:36), 다윗에게 온역을 내리셨던 일(삼하24:16)등에도 쓰였다.
4) 요나단은 왜 도망가는 다윗에게 자비를 배풀어달라고 했을까
요나단은 사울에 의해 위험에 처해있는 다윗을 도와주면서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다윗에게 요청하였다.(삼상 20:14-15) 왕자의 신분이었단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러한 부탁을 한 이유는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삼상 23:17) 비록 왕자의 신분이었을지라도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으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겸손히 받아들였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안전하게 피신하도록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후에 왕이 될 때 자신의 후손에 대해 자비를 잊지 않도록 간청했던 것이다.
6. 다윗의 부정과 하나님의 정죄하심
다윗은 우연히 우리아의 아내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 적의 손에 죽게하고 미망인이 된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의 부정한 행동을 보시고 노하신다. 다윗은 뒤늦게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한다. 그러나 정확하신 하나님은 다윗이 우리아에게서 얻은 첫아이를 빼앗아 버리신다. 또한 다윗의 아들이 누이동생을 범하고 그로인하여 형제간에 살육이 벌어지며 후에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쫑기게 된다. 그러나 다윗의 지혜롭고 신실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동시에 욕심이 있는 한 인간이었다. 그는 한순간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남의 아내를 부정한 방법으로 뺏는 죄를 범했다. 결국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서 얻은 아이가 앓아서 죽어가게 된다. 다윗은 이 아이가 신음할 때에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죽었다. 다윗은 아이가 죽기 전에는 슬퍼하며 간구하였으나 아이가 죽고난 다음에는 오히려 정신을 추스렸다. 다윗은 잘못하고 실수하고 엉뚱한 일을 한 인간이었으나 그의 삶에 다른 점이 있었다. 일상 생활에서 일일이 하나님께 물어, 하나님의 표정을 살피는데 아주 빨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치가 심상치 않으면 두 손 들고 하나님께 급히 회개했다. 눈치가 빨라서 하나님의 표정을 살피는 영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다윗이 그러했듯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을 가고 실수하고 범죄에 빠지지만, 급히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도 일일이 하나님께 묻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다윗처럼 하나님 뜻을 묻지 않고 부정한 일을 행하며 이를 회개한다면서 얼마나 내마음대로 쉽게 자신을 용서하는지 생각해볼 때 부끄러울 따름이다.
7. 사무엘 상, 하를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점과 대답
1)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이 패전하도록 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기게 하셨을까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가면 자동적으로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크게 패하고 언약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긴다.(삼상 4:1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사람이 정해 놓은 장소에 얽매이는 분이 아님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쟁에서 패하게하고 언약궤를 빼앗기게 하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언약궤를 주술적, 미신적으로 의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한 징계였다. 또한 그 당시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빼앗기도록 그냥 내버려두셨던 것은 엘리 가문의 죄 때문이기도 했다.(삼상 4:17-18)죄를 짓고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 받으려 할 때,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느냐 아니냐는 신앙 태도와 직접 관련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참 믿음만이 하나님의 도움과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2) 하나님은 왜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소리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왕이 다스려주길 바라는 인간적인 생각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하나님이 세우신 사무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은 아시면서도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주셨다. 그 이유는 왕의 통치로 인해 겪을 어려움을 통해 진정으로 자신을 구원해주는 왕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3) 하나님도 후회하실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며 완전한 분이시다.(삼상 15:29) 하나님께 있어서 후회란 있을 수 없다.(민 23:19)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후회하셨다'라는 말은 매우 슬퍼하셨다는 뜻으로, 이후에는 하나님이 이전과 다르게 취급하시고 행동하셨다는 말이다. 사울이 처음 왕이 될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교만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임명하셨던 것을 후회하셨다. 사무엘도 죽을 때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고 다윗을 찾아가 기름부어 왕으로 삼았다. 이 외에도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신 32:36), 다윗에게 온역을 내리셨던 일(삼하24:16)등에도 쓰였다.
4) 요나단은 왜 도망가는 다윗에게 자비를 배풀어달라고 했을까
요나단은 사울에 의해 위험에 처해있는 다윗을 도와주면서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다윗에게 요청하였다.(삼상 20:14-15) 왕자의 신분이었단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러한 부탁을 한 이유는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삼상 23:17) 비록 왕자의 신분이었을지라도 그는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으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겸손히 받아들였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안전하게 피신하도록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후에 왕이 될 때 자신의 후손에 대해 자비를 잊지 않도록 간청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