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칠지도가 지닌 의의
2.연대문제
3.후왕문제
4. 칠지도의 명문해석
5.칠지도와 역사의 진실
참고문헌
이도학, <새로쓰는 백제사>, 푸른역사, 1997
이기동, <백제사 연구>, 일조각, 1996
한일관게사학회 지음, <한국과 일본, 왜곡과 콤플랙스이 역사>, 자작나무, 1998
2.연대문제
3.후왕문제
4. 칠지도의 명문해석
5.칠지도와 역사의 진실
참고문헌
이도학, <새로쓰는 백제사>, 푸른역사, 1997
이기동, <백제사 연구>, 일조각, 1996
한일관게사학회 지음, <한국과 일본, 왜곡과 콤플랙스이 역사>, 자작나무, 1998
본문내용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따라서 <일본서기>의 기술은 4세기 중엽 백제가 가야를 통하여 왜와의 외교관계를 시작하였던 역사적 사실이 일본 또는 백제 중심적으로 꾸며진 결과이다. 즉 <일본서기>만으로 칠지도 명문의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동시대의 자료인 칠지도 명문을 기초로 <일본서기>의 내용을 바로 잡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칠지도 명문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주고 받는 주체의 기술이다. 주는 사람이 백제의 왕세자로 되어있고, 받는 사람이 왜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따라서 왜왕은 백제왕세자에 대응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칠지도는 백제가 친선외교의 제안으로 왜에게 주었던 일종의 하사품이었으며, <일본서기>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일본 중심적으로 왜곡하여 기술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근년의 일본학계는 과거의 주장에서 일보 후퇴하여 "칠지도 명문을 가지고 백제와 왜의 상하관계를 논단하는 것은 잘못이며, 백제와 왜 사이의 초기 교류를 보여주는 것으로 제한해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현존하는 칠지도 명문에 의한 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칠지도 명문의 역사적 진실이란 4세기 중.후엽에 백제가 왜와 우호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이전까지 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수한 모양의 칼을 제작하여 보냈던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도학, <새로쓰는 백제사>, 푸른역사, 1997
이기동, <백제사 연구>, 일조각, 1996
한일관게사학회 지음, <한국과 일본, 왜곡과 콤플랙스이 역사>, 자작나무, 1998
따라서 <일본서기>의 기술은 4세기 중엽 백제가 가야를 통하여 왜와의 외교관계를 시작하였던 역사적 사실이 일본 또는 백제 중심적으로 꾸며진 결과이다. 즉 <일본서기>만으로 칠지도 명문의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동시대의 자료인 칠지도 명문을 기초로 <일본서기>의 내용을 바로 잡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칠지도 명문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주고 받는 주체의 기술이다. 주는 사람이 백제의 왕세자로 되어있고, 받는 사람이 왜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만큼 분명한 것은 없다. 따라서 왜왕은 백제왕세자에 대응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칠지도는 백제가 친선외교의 제안으로 왜에게 주었던 일종의 하사품이었으며, <일본서기>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일본 중심적으로 왜곡하여 기술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근년의 일본학계는 과거의 주장에서 일보 후퇴하여 "칠지도 명문을 가지고 백제와 왜의 상하관계를 논단하는 것은 잘못이며, 백제와 왜 사이의 초기 교류를 보여주는 것으로 제한해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현존하는 칠지도 명문에 의한 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칠지도 명문의 역사적 진실이란 4세기 중.후엽에 백제가 왜와 우호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이전까지 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수한 모양의 칼을 제작하여 보냈던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도학, <새로쓰는 백제사>, 푸른역사, 1997
이기동, <백제사 연구>, 일조각, 1996
한일관게사학회 지음, <한국과 일본, 왜곡과 콤플랙스이 역사>, 자작나무,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