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창업과 쟁패의 신화적 표현
2. 향가의 전통과 그 행방
3. 불교 문학의 방향 모색
2. 향가의 전통과 그 행방
3. 불교 문학의 방향 모색
본문내용
부귀를 누릴 때 홀로 벼슬을 버리고 노장 사상을 숭상하면서 시를 지었다. 그의 문학은 은거와 도피의 문학으로 그 맥락이 뒤에까지 계속 이어진다.
⑵ 동조자와 비판자
朴浩는 국왕이 하는 일을 찬양하던 문인으로 '賀八關會表' 등의 작품이 전한다. 權適은 박호와 같은 글을 짓는 한편, 자신의 내면 세계도 함께 나타낸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현실의 비판은 찾아볼 수 없고 안온한 조화만이 있다. 그에 비해 崔 은 예종의 도가적인 문학관을 비판하면서 도학적인 문학을 주장하였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鄭克永은 최약보다도 더한 비판을 한 인물이었으나 그의 주장 역시 수용되지 않았다.
⑶ 격동의 와중에서
이자겸의 난이 평정된 뒤 조정은 문벌 귀족 세력의 개경파와 하층민의 유대를 가진 세력인 서경파로 분열, 대립되었다. 서경파는 처음 득세하는 듯했으나, 곧 주도권을 개경파에 빼앗겼고 妙淸의 난 이후 무너져 버렸다. 李之 는 서경을 찬양하는, 중국 전래의 춤을 추고 놀이를 할 때 부르는 口號나 致語를 지었다. 그러나 뒤에는 서경파를 비난하고 개경파의 입장에 섰다. 尹彦이는 중간 노선을 견지했으나 김부식 일파의 횡포에는 반발하고 나섰고, 뒤에는 서경 천도파의 주장에 동조했으며 말년에는 불교를 믿으며 참선에 몰두했다. 鄭知常은 묘청과 함께 서경 천도를 본격화한 인물이다. 그는 자기 향토의 정서를 살리면서 아름다운 표현을 쓰고자 하였다. 대표작인 '送人'에서 그러한 시풍을 능히 엿볼 수 있다.
⑷ 김부식의 시대
김부식 일파는 유학의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 데에서 문학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金富佾은 송나라에 유학생을 파견할 것을, 金富儀는 금나라에 事大할 것을 각각 주장했다. 김부식은 문학이란 도의와 명분을 바르게 하는데 소용이 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내용도 널리 규범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변려문을 삼가고 古文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 기발한 표현을 하지 못했던 탓에 그의 작품들은 상식적 착안에 고사를 적절히 삽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⑸ 문신 귀족의 말로를 장식하는 정서
인종의 뒤를 이어 방탕한 의종이 즉위하자 그 때까지 이룩된 김부식의 안정도 깨어지게 되고 급기야는 무신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문인들은 왕에게 박해를 당한 쪽과 함께 휩쓸린 쪽으로 나뉘게 된다. 鄭襲明은 의종의 잘못을 서슴없이 간하다가 독약을 먹고 자살한 인물로 '石竹花' 등의 작품이 전한다. 申淑은 내시가 득세하는 것을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갔는데 그 때 지은 시가 남아 있다. 崔惟淸은 처신을 잘하여 어느 쪽에서도 미움을 사지 않았다. '初歸故園'이라는 시에서 시골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 자신을 노래했다. 高兆基는 이 때 지위와 이름을 얻은 인물로 오언시에 특히 능했다. '珍島江亭'이라는 시가 전한다. 의종 때 득세한 인물로는 金敦中을 꼽을 수 있다. 김부식의 아들로 鄭仲夫의 수염을 그을린 장본인이다. 절을 찾아 근심을 없앤다는 '宿安樂郡禪院' 등의 시가 전한다.
⑵ 동조자와 비판자
朴浩는 국왕이 하는 일을 찬양하던 문인으로 '賀八關會表' 등의 작품이 전한다. 權適은 박호와 같은 글을 짓는 한편, 자신의 내면 세계도 함께 나타낸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현실의 비판은 찾아볼 수 없고 안온한 조화만이 있다. 그에 비해 崔 은 예종의 도가적인 문학관을 비판하면서 도학적인 문학을 주장하였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鄭克永은 최약보다도 더한 비판을 한 인물이었으나 그의 주장 역시 수용되지 않았다.
⑶ 격동의 와중에서
이자겸의 난이 평정된 뒤 조정은 문벌 귀족 세력의 개경파와 하층민의 유대를 가진 세력인 서경파로 분열, 대립되었다. 서경파는 처음 득세하는 듯했으나, 곧 주도권을 개경파에 빼앗겼고 妙淸의 난 이후 무너져 버렸다. 李之 는 서경을 찬양하는, 중국 전래의 춤을 추고 놀이를 할 때 부르는 口號나 致語를 지었다. 그러나 뒤에는 서경파를 비난하고 개경파의 입장에 섰다. 尹彦이는 중간 노선을 견지했으나 김부식 일파의 횡포에는 반발하고 나섰고, 뒤에는 서경 천도파의 주장에 동조했으며 말년에는 불교를 믿으며 참선에 몰두했다. 鄭知常은 묘청과 함께 서경 천도를 본격화한 인물이다. 그는 자기 향토의 정서를 살리면서 아름다운 표현을 쓰고자 하였다. 대표작인 '送人'에서 그러한 시풍을 능히 엿볼 수 있다.
⑷ 김부식의 시대
김부식 일파는 유학의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 데에서 문학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金富佾은 송나라에 유학생을 파견할 것을, 金富儀는 금나라에 事大할 것을 각각 주장했다. 김부식은 문학이란 도의와 명분을 바르게 하는데 소용이 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내용도 널리 규범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변려문을 삼가고 古文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 기발한 표현을 하지 못했던 탓에 그의 작품들은 상식적 착안에 고사를 적절히 삽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⑸ 문신 귀족의 말로를 장식하는 정서
인종의 뒤를 이어 방탕한 의종이 즉위하자 그 때까지 이룩된 김부식의 안정도 깨어지게 되고 급기야는 무신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문인들은 왕에게 박해를 당한 쪽과 함께 휩쓸린 쪽으로 나뉘게 된다. 鄭襲明은 의종의 잘못을 서슴없이 간하다가 독약을 먹고 자살한 인물로 '石竹花' 등의 작품이 전한다. 申淑은 내시가 득세하는 것을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갔는데 그 때 지은 시가 남아 있다. 崔惟淸은 처신을 잘하여 어느 쪽에서도 미움을 사지 않았다. '初歸故園'이라는 시에서 시골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 자신을 노래했다. 高兆基는 이 때 지위와 이름을 얻은 인물로 오언시에 특히 능했다. '珍島江亭'이라는 시가 전한다. 의종 때 득세한 인물로는 金敦中을 꼽을 수 있다. 김부식의 아들로 鄭仲夫의 수염을 그을린 장본인이다. 절을 찾아 근심을 없앤다는 '宿安樂郡禪院' 등의 시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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