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史書로서의 삼국유사
3. 역사적 위치
4. 현대적 의의
5. 끝맺는 말
2. 史書로서의 삼국유사
3. 역사적 위치
4. 현대적 의의
5. 끝맺는 말
본문내용
연한 일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또 문학적 측면이 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삼국사기에는 단 한편도 수록되어 있지 않는 향가가 10여편이나 수
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불교문화사로서 독자적 지위를
갖고 있음은 이미 지적한 바였다. 그러므로 도덕의 선악과 정치의 흥망과를 직결시켜
생각하는 좁은 안목의 도덕적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삼국유사와 근대
사학은 궤를 같이하는 것이고, 따라서 삼국유사는 근대사학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세째로는 삼국유사가 민족적 자주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한국의 고유문화에 대한 존중은 곧 그것이 민족적 자주성의 표시였다. 더구
나 우리나라 역사의 시발점을 고조선에 두고, 단군왕검의 건국신화를 적음으로써 한국
의 역사가 天과 연결되는 독자적인 것임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위씨
조선,마한을 거쳐 삼국으로 연결되는 민족사 발전의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근대에 민족적인 자각이 커가면서, 배외적인 경향을 띤 중국 중심의 사관에 대한 비판
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점도 근대사학과 삼국유사는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따라서 근대사학에서 삼국유사가 높이 평가되게 되었다.
삼국유사에 대한 이와 같은 근대사학의 평가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
나 이와 같은 평가에도 제약이 있다는 점을 잊을 수는 없다. 우선 사료적 가치는 그것
이 애초에 사료집으로 편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연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에 속
한다. 만일 원사료들이 망실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면, 사료적 가치에 대한 문제
는 거론되지 않을 성질의 것이다. 가령 감산사의 두 조상명(造像銘)은 실물이 남아 있
어서 훨씬 자세하고 정확한 원문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약기(略記)되었을 뿐만 아니
라 잘못된 판독조차 섞여 있는 삼국유사의 인용문은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 또 도덕적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삼국유사와 근대사학이 궤를 같이하지만, 그렇
다고 삼국유사에서 제시된 신이사관(神異史觀)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가 없다
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신이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새로이 시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른 반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현대사학에서 삼국유사가
지니는 의의를 올바로 인식하기가 힘들 것이다.
5. 끝맺는 말
필자는 위에서 주로 사학사적인 관점에서 삼국유사를 생각하여 보았다. 보는 사
람의 현재적 입장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비추어서 삼국유사를 평가하는 것에 필자는 비
판적이었다. 그 결과 삼국유사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와 현대적 의의를 구분하여 고찰
하게 되었다. 본고의 제 3장과 제 4장이 각기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방법이 역사가가 취해야 할 올바른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역사가들에 의해서조차 종종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실로 서글픈 일이다.
이러한 이해를 위하여는 사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삼국
유사의 사서로서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작업이 본고의 제
2장에 해당한다. 이에 더하여 사학사의 조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데, 이는 제 3장과
제 4장에서 각기 언급되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삼국유사가 사학사에서 지니는 역사적 위치가 전진적이기보
다는 복고적이었지만 현대에서 지니는 의의는 도리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떻
든 삼국유사도 그것이 하나의 역사적 소산이요 또 현재에도 그 생염이 살아 있는 하나
의 사서인 만큼, 그 긍정적인 면이나 부정적인 면이 아울러 학문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있다. 무엇보다도 삼국사기에는 단 한편도 수록되어 있지 않는 향가가 10여편이나 수
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불교문화사로서 독자적 지위를
갖고 있음은 이미 지적한 바였다. 그러므로 도덕의 선악과 정치의 흥망과를 직결시켜
생각하는 좁은 안목의 도덕적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삼국유사와 근대
사학은 궤를 같이하는 것이고, 따라서 삼국유사는 근대사학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세째로는 삼국유사가 민족적 자주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한국의 고유문화에 대한 존중은 곧 그것이 민족적 자주성의 표시였다. 더구
나 우리나라 역사의 시발점을 고조선에 두고, 단군왕검의 건국신화를 적음으로써 한국
의 역사가 天과 연결되는 독자적인 것임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위씨
조선,마한을 거쳐 삼국으로 연결되는 민족사 발전의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근대에 민족적인 자각이 커가면서, 배외적인 경향을 띤 중국 중심의 사관에 대한 비판
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점도 근대사학과 삼국유사는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따라서 근대사학에서 삼국유사가 높이 평가되게 되었다.
삼국유사에 대한 이와 같은 근대사학의 평가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
나 이와 같은 평가에도 제약이 있다는 점을 잊을 수는 없다. 우선 사료적 가치는 그것
이 애초에 사료집으로 편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연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에 속
한다. 만일 원사료들이 망실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면, 사료적 가치에 대한 문제
는 거론되지 않을 성질의 것이다. 가령 감산사의 두 조상명(造像銘)은 실물이 남아 있
어서 훨씬 자세하고 정확한 원문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약기(略記)되었을 뿐만 아니
라 잘못된 판독조차 섞여 있는 삼국유사의 인용문은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 또 도덕적
합리주의 사관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삼국유사와 근대사학이 궤를 같이하지만, 그렇
다고 삼국유사에서 제시된 신이사관(神異史觀)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가 없다
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신이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새로이 시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른 반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현대사학에서 삼국유사가
지니는 의의를 올바로 인식하기가 힘들 것이다.
5. 끝맺는 말
필자는 위에서 주로 사학사적인 관점에서 삼국유사를 생각하여 보았다. 보는 사
람의 현재적 입장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비추어서 삼국유사를 평가하는 것에 필자는 비
판적이었다. 그 결과 삼국유사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와 현대적 의의를 구분하여 고찰
하게 되었다. 본고의 제 3장과 제 4장이 각기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방법이 역사가가 취해야 할 올바른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역사가들에 의해서조차 종종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실로 서글픈 일이다.
이러한 이해를 위하여는 사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삼국
유사의 사서로서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작업이 본고의 제
2장에 해당한다. 이에 더하여 사학사의 조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데, 이는 제 3장과
제 4장에서 각기 언급되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삼국유사가 사학사에서 지니는 역사적 위치가 전진적이기보
다는 복고적이었지만 현대에서 지니는 의의는 도리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떻
든 삼국유사도 그것이 하나의 역사적 소산이요 또 현재에도 그 생염이 살아 있는 하나
의 사서인 만큼, 그 긍정적인 면이나 부정적인 면이 아울러 학문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