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작곡한 사람이 그때까지 없었다는게 아니고, 작곡한 사람의 이름이 밝혀지고, 그의 작품과함께 알려지게 되는 것이 늦었다는 말입니다. 12세기 말에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레오닌, 페로틴 같은 사람들이 아마도 역사상 처음 작곡가다운 작곡가로 알려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수도사들이 한 일 중에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노래들을 수집하고 기록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왜 여태까지 교회음악에 관한 얘기만 했을까요? 교회 밖에 나가면 전혀 음악이 없었단 말은 설마 아니겠지요?
전축이나 라디오가 없던 시절, 음악을 직접 하지 않고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 문만 나서면 음악이라고는 들을 수 없는 적막강산이라
장바닥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악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래로 밥을 먹고 살아야 했던 직업 음악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선배나 다른 동료들에게서 노래를 배워서 부르기도 했지만 스스로 노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때 듣는 사람과 분위기에 맞춰서 노래를 즉흥적으로 바꿔 부르거나 만들어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음유시인(吟遊詩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음악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때 그들은 여러 곳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장거리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잔치나 작은 모임들에서도 환영을 받았습니다.
귀족들 중에서 그들의 재주를 부러워해서 스스로 음유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트루바도르, 트루베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이 귀족 출신 음악가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정말로 음악재주가 있어서 노래까지 직접 만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기는 가사만짓고 노래는 직업적인 음유시인들이 짓고 부르게 하였던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개 13세기 무렵부터 생겨난 이런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노래가사들을 수도사들이 모아서 기록해 두었던 덕분에 우리는 그때쯤 세상 음악이 얼마나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수도사들은 그 노래의 가락까지는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노래가 정말 어땠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독일에는 미네쟁거라든가 마이스터징거 같은 아마추어가수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마이스터징거는 귀족계급이 아니고 중간계층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이죠, 음악은 귀족만이 할 수 있었던게 아니죠. 일반인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세에 가정용으로 쓰여졌던 여러가지 악기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음악이 일반인들의 가정에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읍니다. 그렇지만 그런 음악에 관한 기록은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수도사들도 그런 음악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노래들을 수도사들이 좋아했을 수는 있지만, 그걸 값비싼 양피지에다 정성들여 기록할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이 글 첫머리에 말했듯이 역사를 쓰는 사람은 기억될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해서 그것들을 가려뽑아 씁니다. 그런데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려 뽑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정확하게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중세 사람들이 교회에서 무슨 음악이 나오건 하품만 하다가 장터에서 신나는 판이 벌어졌다거나, 마을에서 큰 잔치가 벌어져 집집에서 악기들을 가지고 나와 마을에서 재주있는 사람들이 같이 뜯고 노래하거나 할 때는 흥겨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음악들이 교회음악보다도 훨씬 기억될 만한 음악들이 아니었을까요? 교회에서 듣는 맥없는 성가대원의 노래소리보다는 하루의 피곤한 일과가 끝난 후 집에 왔을 때 아내나 딸이 조용조용 읊조리듯 불러주는 가락들이 훨씬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오르가눔이니 작곡가 레오닌, 페로틴 이런 사람들의 이름보다도 지금은 영영 없어져버린 다정한 민요가락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중세음악까지는 기록된 자료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을 살찌워줬을 음악들에 대해 많이 쓰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 시대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에 대한 기록들은 대부분이 '위대한' 음악들에대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음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음악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물론이고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 줄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음악사가 쓰지 않는 음악, 쓸 수 없는 음악들 중에도 얼마든지 소중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매일 듣는 음악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독자에게는 '이야기 음악사'도 즐거움을 줄 수 없습니다.
수도사들이 한 일 중에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노래들을 수집하고 기록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왜 여태까지 교회음악에 관한 얘기만 했을까요? 교회 밖에 나가면 전혀 음악이 없었단 말은 설마 아니겠지요?
전축이나 라디오가 없던 시절, 음악을 직접 하지 않고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 문만 나서면 음악이라고는 들을 수 없는 적막강산이라
장바닥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악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래로 밥을 먹고 살아야 했던 직업 음악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선배나 다른 동료들에게서 노래를 배워서 부르기도 했지만 스스로 노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때 듣는 사람과 분위기에 맞춰서 노래를 즉흥적으로 바꿔 부르거나 만들어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음유시인(吟遊詩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음악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때 그들은 여러 곳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장거리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잔치나 작은 모임들에서도 환영을 받았습니다.
귀족들 중에서 그들의 재주를 부러워해서 스스로 음유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트루바도르, 트루베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이 귀족 출신 음악가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정말로 음악재주가 있어서 노래까지 직접 만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기는 가사만짓고 노래는 직업적인 음유시인들이 짓고 부르게 하였던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개 13세기 무렵부터 생겨난 이런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노래가사들을 수도사들이 모아서 기록해 두었던 덕분에 우리는 그때쯤 세상 음악이 얼마나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수도사들은 그 노래의 가락까지는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노래가 정말 어땠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독일에는 미네쟁거라든가 마이스터징거 같은 아마추어가수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마이스터징거는 귀족계급이 아니고 중간계층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이죠, 음악은 귀족만이 할 수 있었던게 아니죠. 일반인들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세에 가정용으로 쓰여졌던 여러가지 악기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음악이 일반인들의 가정에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읍니다. 그렇지만 그런 음악에 관한 기록은 더욱 찾기 어렵습니다. 수도사들도 그런 음악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노래들을 수도사들이 좋아했을 수는 있지만, 그걸 값비싼 양피지에다 정성들여 기록할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이 글 첫머리에 말했듯이 역사를 쓰는 사람은 기억될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해서 그것들을 가려뽑아 씁니다. 그런데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려 뽑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정확하게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중세 사람들이 교회에서 무슨 음악이 나오건 하품만 하다가 장터에서 신나는 판이 벌어졌다거나, 마을에서 큰 잔치가 벌어져 집집에서 악기들을 가지고 나와 마을에서 재주있는 사람들이 같이 뜯고 노래하거나 할 때는 흥겨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음악들이 교회음악보다도 훨씬 기억될 만한 음악들이 아니었을까요? 교회에서 듣는 맥없는 성가대원의 노래소리보다는 하루의 피곤한 일과가 끝난 후 집에 왔을 때 아내나 딸이 조용조용 읊조리듯 불러주는 가락들이 훨씬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오르가눔이니 작곡가 레오닌, 페로틴 이런 사람들의 이름보다도 지금은 영영 없어져버린 다정한 민요가락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중세음악까지는 기록된 자료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을 살찌워줬을 음악들에 대해 많이 쓰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 시대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에 대한 기록들은 대부분이 '위대한' 음악들에대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음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음악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물론이고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 줄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음악사가 쓰지 않는 음악, 쓸 수 없는 음악들 중에도 얼마든지 소중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매일 듣는 음악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독자에게는 '이야기 음악사'도 즐거움을 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