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춤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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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북한에 간 최승희는 1946년 평양에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 무용 교육에 힘썼다. 전쟁 중인 1950년 말에는 중국으로 가 북경 중앙희극원에서 무용반을 설립하여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1955년 북한 인민배우가 되었으나, 1958년 안막이 숙청 당하자 그녀도 숙청 당하게 되었다. 1967년 이후 그녀의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가 숙청된 이후 북한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다시 그녀의 작품이 살아났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무용수들의 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무용이라고 하면 발레나 현대무용이 먼저 떠올랐었다. 하지만 최승희의 춤을 접하자 궁중무용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분명 최승희의 춤은 넘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 매력은 민족적인 느낌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세계를 무대로 그녀가 춤출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무용이 큰 힘과 매력, 가능성을 내재함을 보여준 최승희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너무도 자랑스러운 한국 무용을 좀 더 접하고 세계인에게 알리는 일에 힘쓰고 싶다. 선생님이 말했듯이 외국에 나갔을 때 우리의 춤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는 한국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용으로써 전 세계에 코리아를 알린 최승희처럼 나도 내 분야에서 발전하고 분발하여 우리나라를 알리고 싶다.
*참고문헌*
http://www.arirang-net.com
재일 교민 시사정보지 <아리랑>
채희완(1991),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길사.
최청자 편저(1991), 안무와 움직임, 금광.
허순선(1991), 한국의 전통 춤사위, 형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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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2.09.24
  • 저작시기2002.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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