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계시의 삼위일체적 성격
A.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의 계시
B. 그리스도의 선재와 성육신으로서의 계시
C. 성령, 교회와 계시
Ⅲ. 나가는 말
Ⅱ. 계시의 삼위일체적 성격
A.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의 계시
B. 그리스도의 선재와 성육신으로서의 계시
C. 성령, 교회와 계시
Ⅲ. 나가는 말
본문내용
의 主性의 담지자임이 드러난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함께 함의 친교의 행위이다. 성령은 성부, 성자, 상호간의 사랑이며, "이전에 자기 자신 안에서" 이미 교제, 사랑, 은사이다. 따라서 성령은 계시 안에서 우리에게 작용하는 主이며 구속자이다.
) K, Barth, CD I/1, pp.469-471.
둘째, "삶을 주는 자, 성령을 믿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성부와 함께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성령의 신성을 말한다.
) K, Barth, CD I/1, pp.471-473.
셋째, "성부, 성자로부터 유래한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은 피조물이 아니라, 성부, 성자와 같은 본질임을 여기서 나타낸다. 그렇지만 성령은 성부, 성자, 구별된다. 서방교회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발현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부로부터 직접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Barth는 "아들에게서도(filioque)"라는 추가구까지 열렬히 변호한다. Barth의 삼위일체론을 보면 계시 중의 하나님은 영원한 현실 중의 하나님과 같기 때문이다.
) K, Barth, CD I/1, p.473-487.
넷째, "성부, 성자와 함께 숭배되고 찬양되는 성령을 믿습니다." 숭배와 찬양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적 인간사이의 거리를 표시한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된 것은 성령의 신성이다.
) K, Barth, CD I/1, pp.487-489.
이상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피조물의 역사는 오직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존재안에 포괄되어 있으며 이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Barth는 계시의 주관적 현실을 위한 공간이 교회임을 강조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근원을 가진다. 교회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으로부터 유래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하나님 자녀의 생활은 교회의 현실, 즉 계시의 주관적 현실이다.
) K, Barth, CD I/2, pp.212-215.
교회는 하나님이 말씀하고 인간의 응답이 일어나고 선포되는 곳이다. 교회의 설교는 세 가지 제한성을 가지는데, 첫째, 하나님이 임의로 말씀하실 때, 말씀하는 곳에서만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유한 말씀이 설교의 한계이다. 둘째, 설교는 인간의 말이므로 언제나 오류를 초래한다. 따라서 설교는 언제나 자아비판과 반성을 요하며, 여기에 교의학의 필요성이 있다. 셋째, 설교와 교의학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서의 증언에 의거해서 말해야 한다. 설교는 현재 하나님이 말씀하기기 때문에 현재적 사건으로서 성서의 진리가 된다.
) 박순경, op. cit., pp.24-25.
Barth는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방식을 각각 설명하는데 여기서 근본적인 것은 Barth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중성을 창조자, 화해자, 구속자의 삼중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Ⅲ. 나가는 말
Barth는 어느 신학자보다도 더 강력하게 삼위일체 교리가 교의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강조하였다. Barth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은 그의 본질적 존재, 본체, 혹은 본성에 있어서 하나이고, 하나님은 하나되심속에 셋이 있으며 삼위일체론은 교회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성서의 계시는 삼위일체론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삼위일체론의 뿌리는 계시이며 삼위일체론은 계시에 대한 해석이라고 보았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삼위일체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성서에 나타난 계시를 무시하고 새로운 철학에 의해 제시된 사상을 활용함으로써 합리주의와의 관련에서 발전된 이상들을 따라 신앙고백적 전통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인 종교와 신학을 재건하려고 하였다. 이에 반해 Barth는 형이상학적 이론이나 철학적 사변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으로 삼위일체론을 말한다.
Barth에게 있어서 신학적 중심은 19세기 인간중심적 신학을 거부하고 하나님 중심적 신학을 수립하는데 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모든 본질적 연결성을 거부하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을 확립하며, 인간과 하나님의 교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하여,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외에 하나님 계시에 대한 어떤 접촉점이 인간에게 있음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리고 Barth는 "삼위일체 하나님" 단락에서는 계시 안에서의 주체문제, 즉 계시자 자신을 다루었다. "말씀의 성육신"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일어나는 움직임인 계시의 객관적 현실인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였다. "성령"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우리의 깨우침, 즉 계시의 주관적 현실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참 고 문 헌
1. Barth, Karl. : The Doctrine of the World of God Vol. I. 1. trans. by G.W. Bromiley, Edinburgh:T&TClark, 1975.
2. Barth, Karl. : The Doctrine of the World of God Vol. I. 2. trans. by G. W. G. T. Thomson Horold Knight, Edinburgh : T&TClark, 1975.
3. Weber, Otto.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김광식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1982.
4. 니이브,J.L. <기독교 교리사>Ⅰ. 서남동역. 서울 : 대한기독교
서회, 1972.
5. 윤성범. <칼 바르트>.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77.
6. 박순경. "칼 바르트의 역사이해",<칼 바르트 신학연구>,한국바르 트학회 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9. pp9-51.
7. 박형룡. <기독론>. 서울 :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3.
8. 불트만, R. <신약성서신학>. 허혁역. 서울 : 성광출판사, 1976.
9. 김균진. <헤겔철학과 하나님나라>. 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80
10. <개역성서>. 서울 : 대한성서공회, 1990.
) K, Barth, CD I/1, pp.469-471.
둘째, "삶을 주는 자, 성령을 믿습니다." 여기서 성령이 성부와 함께 창조의 주체라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성령의 신성을 말한다.
) K, Barth, CD I/1, pp.471-473.
셋째, "성부, 성자로부터 유래한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은 피조물이 아니라, 성부, 성자와 같은 본질임을 여기서 나타낸다. 그렇지만 성령은 성부, 성자, 구별된다. 서방교회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발현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부로부터 직접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Barth는 "아들에게서도(filioque)"라는 추가구까지 열렬히 변호한다. Barth의 삼위일체론을 보면 계시 중의 하나님은 영원한 현실 중의 하나님과 같기 때문이다.
) K, Barth, CD I/1, p.473-487.
넷째, "성부, 성자와 함께 숭배되고 찬양되는 성령을 믿습니다." 숭배와 찬양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적 인간사이의 거리를 표시한다. 여기서 분명히 강조된 것은 성령의 신성이다.
) K, Barth, CD I/1, pp.487-489.
이상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피조물의 역사는 오직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존재안에 포괄되어 있으며 이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Barth는 계시의 주관적 현실을 위한 공간이 교회임을 강조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근원을 가진다. 교회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으로부터 유래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하나님 자녀의 생활은 교회의 현실, 즉 계시의 주관적 현실이다.
) K, Barth, CD I/2, pp.212-215.
교회는 하나님이 말씀하고 인간의 응답이 일어나고 선포되는 곳이다. 교회의 설교는 세 가지 제한성을 가지는데, 첫째, 하나님이 임의로 말씀하실 때, 말씀하는 곳에서만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유한 말씀이 설교의 한계이다. 둘째, 설교는 인간의 말이므로 언제나 오류를 초래한다. 따라서 설교는 언제나 자아비판과 반성을 요하며, 여기에 교의학의 필요성이 있다. 셋째, 설교와 교의학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서의 증언에 의거해서 말해야 한다. 설교는 현재 하나님이 말씀하기기 때문에 현재적 사건으로서 성서의 진리가 된다.
) 박순경, op. cit., pp.24-25.
Barth는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방식을 각각 설명하는데 여기서 근본적인 것은 Barth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중성을 창조자, 화해자, 구속자의 삼중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Ⅲ. 나가는 말
Barth는 어느 신학자보다도 더 강력하게 삼위일체 교리가 교의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강조하였다. Barth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은 그의 본질적 존재, 본체, 혹은 본성에 있어서 하나이고, 하나님은 하나되심속에 셋이 있으며 삼위일체론은 교회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성서의 계시는 삼위일체론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삼위일체론의 뿌리는 계시이며 삼위일체론은 계시에 대한 해석이라고 보았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삼위일체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성서에 나타난 계시를 무시하고 새로운 철학에 의해 제시된 사상을 활용함으로써 합리주의와의 관련에서 발전된 이상들을 따라 신앙고백적 전통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인 종교와 신학을 재건하려고 하였다. 이에 반해 Barth는 형이상학적 이론이나 철학적 사변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으로 삼위일체론을 말한다.
Barth에게 있어서 신학적 중심은 19세기 인간중심적 신학을 거부하고 하나님 중심적 신학을 수립하는데 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모든 본질적 연결성을 거부하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을 확립하며, 인간과 하나님의 교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하여,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외에 하나님 계시에 대한 어떤 접촉점이 인간에게 있음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리고 Barth는 "삼위일체 하나님" 단락에서는 계시 안에서의 주체문제, 즉 계시자 자신을 다루었다. "말씀의 성육신"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일어나는 움직임인 계시의 객관적 현실인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였다. "성령"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우리의 깨우침, 즉 계시의 주관적 현실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참 고 문 헌
1. Barth, Karl.
2. Barth, Karl.
3. Weber, Otto.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김광식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1982.
4. 니이브,J.L. <기독교 교리사>Ⅰ. 서남동역. 서울 : 대한기독교
서회, 1972.
5. 윤성범. <칼 바르트>.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77.
6. 박순경. "칼 바르트의 역사이해",<칼 바르트 신학연구>,한국바르 트학회 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9. pp9-51.
7. 박형룡. <기독론>. 서울 :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3.
8. 불트만, R. <신약성서신학>. 허혁역. 서울 : 성광출판사, 1976.
9. 김균진. <헤겔철학과 하나님나라>. 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80
10. <개역성서>. 서울 : 대한성서공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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