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삼위일체의 비밀(秘密)
1. 기독교적 일신론의 비판
2. 찬미의 삼위일체
3. 내재적 삼위일체
4.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오는가 ?
II. 몰트만의 삼위일체론
1. 삼위일체론에 대한 역사적 변천
2. 몰트만(J. Moltmann)의 삼위일체론
3. 평가
1. 기독교적 일신론의 비판
2. 찬미의 삼위일체
3. 내재적 삼위일체
4.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오는가 ?
II. 몰트만의 삼위일체론
1. 삼위일체론에 대한 역사적 변천
2. 몰트만(J. Moltmann)의 삼위일체론
3. 평가
본문내용
다'. 말씀하신다. 즉 한분을 보면 세분의 영광이 동시에 빛난다. 성령의 역사속에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을 동시에 보는 특징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세분이신데 독립적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로 계신다 그래서 삼위일체이시다. 몰트만은 주장한다. 삼위일체(Dreieinigkeit)는 셋이 하나됨을 말한다. 삼위일체는 절대로 모순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이성적 논리를 초월하는 신비적인 것이 아니다. 성서적으로 삼위일체론은 분명히 나타난다고 몰트만은 주장한다. 성령을 떠나서는 예수를 알 수 없고 예수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 보이셨다. 신명기 6장의 쉐마는 하나님을 한분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참신으로 이해하며 여호와 외에는 다른 참신이 없음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단일신이 아니라 세분 하나님의 사귐 가운데 계시는 삼위일체라는 것이 몰트만이 말하는 삼위일체론이다. 십자가 고통안에 같이 고통을 당하신 사건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난으로 묘사하며 아들이 죽었으나 예수의 인성과 신성까지도 죽으셨으니 우리의 죄가 구속되었으며 이것은 바로 역사속에 같이 계신 신성의 고난이었다는 것이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인 것이다.
3. 평가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신비스런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벗겨내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속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어리석음이 존재하는 합리주의적인 삼신론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은 신학의 틀과 철학적 구조로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우리안에 내재하시는 큰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굳이 단일신론의 이단들 처럼 범위를 정하여 광대하신 하나님을 억지로 지성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는 느낌을 많이 갖게한다. 우리는 흔히 신학이니 교리라는 말로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나름대로 이해하려는 오류를 범한다. 신앙이란 어떤 교리나 학문의 습득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지존자 이시며 창조주이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주체 또한 인간이 아니라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심을 가만할 때 일부학자들의 삼심론 평가를 자기신학을 잘못이해했다고 주장하는 몰트만의 변명은 오히려 학문하는 이유를 퇴색시키는 곤란을 동반한 관념론적 이기주의로 보는 것이 타당치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많은 학설과 주장들이 난무하는 교리적 현실 속에서 어쩌면 한 연구의 귀한 장을 열어 많은 신학도들을 자극 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한 점을 보잘 것 없는 소견으로 제시해 본다.
3. 평가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신비스런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벗겨내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속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어리석음이 존재하는 합리주의적인 삼신론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은 신학의 틀과 철학적 구조로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우리안에 내재하시는 큰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굳이 단일신론의 이단들 처럼 범위를 정하여 광대하신 하나님을 억지로 지성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는 느낌을 많이 갖게한다. 우리는 흔히 신학이니 교리라는 말로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나름대로 이해하려는 오류를 범한다. 신앙이란 어떤 교리나 학문의 습득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지존자 이시며 창조주이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주체 또한 인간이 아니라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심을 가만할 때 일부학자들의 삼심론 평가를 자기신학을 잘못이해했다고 주장하는 몰트만의 변명은 오히려 학문하는 이유를 퇴색시키는 곤란을 동반한 관념론적 이기주의로 보는 것이 타당치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많은 학설과 주장들이 난무하는 교리적 현실 속에서 어쩌면 한 연구의 귀한 장을 열어 많은 신학도들을 자극 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한 점을 보잘 것 없는 소견으로 제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