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해당 자료는 10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0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제6장 요약

Ⅱ.제6장 번역

본문내용

."
"그들은 자신 안에서 헛되고 그림자 같은 이미지이며, 좀더 나은 결론에 대하여 유일한 현실성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고도의 확신은 사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진실을 얻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법은 기독론적인 의미가 없는 종교적 부가물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과 연관성이 없는 마술이나 조작의 한 종류가 아니다. 그것의 의미는 예기적인, 효과적으로 예기된 죽음과 부활이며 "모두를 위해 한 번" 일어난 일에 있는 것이다. 그 죽음과 부활의 이익은 믿음에서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기에, 의식의 "힘 (power)"은 신앙에 의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깔뱅은 하나님께서 어떤 내적인 의미를 두고 의식들을 명하신 것이 아니라, 대신 "고대 사람들을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실로, 의식의 유일한 목적은 신앙을 돈독케 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의 요점은 강조 되야 한다. 의식들의 이익은 예수 그리스도가 의식의 실체 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관계에 이익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단지 의식을 실행함으로 이익이 얻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결코 "축복"의 마술적인 조작이 아니며, 대조적으로 새 언약의 축복은 신앙이 가장 중요하기에 깔뱅은 "우리의 구원의 약속은 신앙을 평범하게 찬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의식적인 율법과 복음에 관하여 깔뱅은 말씀 또는 신앙에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고 주장한다. 신앙의 조상들은 의식을 통해서 의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깨끗한 마음"으로 획득한 것이다.
놀랍지 않게도, 깔뱅은 다시 하나님의 의식의 주관하심을 하나님 자신을 인간들과 화해하시는 방법이라고 되풀이해서 주장한다. 제물들은 우발적인 것이며, 이것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존중해 주신 것"이며 그것은 자신의 중보자의 모습을 결정하고 있지 않은 "초보"의 인간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그의 겸손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중보자의 실체에 속해 있지 않으며; 실체는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화해의 필요성이 지났을 때 그림자의 통과는 실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깔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그는 의식의 본체시며 진실이시다) 의식의 사용을 끝나게 하였으며; 그의 열정의 결과를 봉인하였고, 또한 폐지하였다. 의식들의 완성은 의식들을 쓸모 없이 만들었다. 복음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베일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라고 하시며, 그가 "베일을 벗은"것 말고 그를 주목하는 시도는 부적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모양으로 묘사된 것" 외에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볼 때, 모양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시의 뜻은 의식적인 율법이며, 외면적인 모습은 복음과는 틀리며, 이 것은 끝이 났다; 실로, 그가 일찌기 "유형들"로 명시되었지만 이것은 반드시 중지되어야만 했다; 의식을 지속하는 것은 독특하고 충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의식의 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은 오직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화합하였고 예배의 도덕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며, 그들의 전조가 되는 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지속하는 것은 그들의 얄팍한 불 신앙인 것이다. 사실, 신앙의 본질은 모양이며 그림자를 그림자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림자는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며, 신앙에 반대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의식적인 관습은 사실 순종(경건)하는 교리에 속해 있다. 때문에 이것들은 유대인의 교회를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존경심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순종(경건)과 분별할 수 있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식 없이도 순종(경건)자체로 충분하다.
깔뱅은 문서가 율법으로 오해받기 쉬운 것 같이 그림자 역시 실체로 오해할 수 있는 것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말한다. 그림자를 실체로 오해했을 때의 영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하는 불신앙들은 율법의 실체이신 한 분을 율법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영적인 예배" 또는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을 실행함으로써 찾을 수 없고, 그 대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것들을 질질 끌고가며 성령대신 육적인 것을 추구한다. 한 마디로, 불 신앙들은 그들의 머리에 잘못된 멍에를 지고 가는 것이다. 불 신앙은 그림자만 가지고 숙고하며, 자비를 상실한다. 깔뱅은 제사는 이스라엘이 그의 죄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예배의 부분이라고 논하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와 죽음의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다. 불 신앙들이 그림자를 응시하며, 중보자를 응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신에 그들의 죄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 그림자는 죄를 증명할 수는 있지만, 근절시킬 수 는 없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빼면 그리스도가 없는 능력이 된다: 죄의 능력과 죄의 선고. 실은, 의식들은 죄의 선고를 증인한다. 그 결과, 깔뱅은 "인간을 죄의 사슬에 매어 놓지 않은 의식들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결론 짓는다. 그리스도가 인간을 향한 기록된 죄의 사슬을 지워 버릴 때, 그리스도가 빠진 의식들은 사슬을 다시 쓰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깔뱅은 의식 안에 죄가 '기억'되며, 의식 그것들 자체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죄를 확실하게 다루지 않으셨다라고 주장한다. 죄를 고백하지 않은 신자들은 그들의 타락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하는 것과 희생의 필요성이 치료제라고 기억해야 한다고 깔뱅은 주장한다. 믿음은 그의 죄를 "기억"한다(그리고 감히 '기억'하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 신앙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 신앙들은 죄에 의해서 결정된다. 불 신앙들은 '기억된' 죄(그림자)를 바라보며; 기억하지 않는 믿음들은 하나님을 바라본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를 응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신" 것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께 다시 고하는 것이다.

키워드

율법,   복음
  • 가격3,300
  • 페이지수32페이지
  • 등록일2002.10.03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14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