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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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 론

◈ 생명공학의 유용성과 문제점

◈ 유전공학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윤리적 입장

◈ 결 론

본문내용

자의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 결과 약자를 예속시키는 것이 강자의 권리에 속한다는 사회적 다위니즘(Darwinism)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여 개개인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말 것이다.
남성 불임을 이겨내기 위해 생식복제를 이용하는 경우 윤리적 문제도 제기된다. 아기를 갖기 위해 복제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오로지 그 자체가 목적인 인간을 생성해 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어느 누구도 타인의 특성들이나 심지어는 겉모습을 결정할 권리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인간의 외관과 수많은 특징들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복제에 의한 생식은 아이의 겉모습에서 유전형질의 특성들에 이르기까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필연적으로 미리 구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 태어날 인간을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미 이전에 있었던 육체와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유전적인 차원이 우연에 의해 이루어질 때 아이가 어떤 특성들을 가졌는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경우에 비로소 아이는 부모의 과잉 보호를 받는다거나 아이가 부모의 의지대로 끌려 다니지 않게 되어 참다운 인간의 의미를 갖게 해주는 독립성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복제된 아이의 경우 겉모습에서 유전적 특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미 구상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독립성과 존엄성이 보장되어질 수 없다. 인간복제를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마지막 이유는 인간복제의 학문적이며 기술적인 수준의 발전을 위하여 인간의 배아나 태아를 가지고 행하는 실험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데에 있다. 많은 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도 인간 생명의 시작을 수정되는 순간으로 보고 있다.
물론 신학자들은 의학자들과는 달리 생명의 시작을 ‘영혼의 주입’과 연결시키고 있다. 즉,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영혼을 가진 한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것에 근거하여 교회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는 과정을 이미 시작한 수정란 자체를 인간 생명체로 인정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배아도 역시 인간 존엄성의 보호라는 사고에 의해 절대적으로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치료를 위한 목적을 지녔다 하더라도 배아나 태아를 희생시키는 것은 인간 생명을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윤리적인 사고에 어긋나는 것이다.
한 생명을 위하여 다른 생명을 희생시킬 권리는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애초부터 인간의 태아를 연구 목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은 생명의 발전을 저지하고 살해를 할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창조주 하느님의 뜻에도 어긋나는 생명파괴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오늘날 이용되는 유전공학적인 조처는 단지 한정된 성공률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든다면 복제양 돌리는 277번째 실험만에 비로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식 세포들이 한정된 성공률로써 조작되어진다면 아마도 비정상 개체가 발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의 경우는 비정상 개체 발생시 이를 폐기 처리할 수 있으나 인간복제 결과물은 기형체라 할지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를 폐기할 수 없게 된다. 한편, 동물과 인간의 체세포 복제에서 기형체는 인간의 경우 약 수백 배 수준으로 높은 발생률을 나타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인간복제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성립되는 시점에서도 과학적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단지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인간의 배아 조작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들에 의해서 다시금 유전공학은 생명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목적에만 이용되어야 하며, 생명을 조작하고 인간 존엄성을 파멸시키는 인간복제는 용납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로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12월 5일 이탈리아 법조인 협회에서 행한 훈화에서 “어떠한 사회적 또는 과학적 유용성도 그리고 이상적인 목적도 그것이 치료 목적이 아닌 한 정당화될 수 없다. 즉 유전자 개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인 성장이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계속>
. 결론
제3의 기술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생명공학은 식량과 자원 문제의 해결, 난치병과 유전적 질병의 치유, 생태계 문제의 극복 등과 같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긍정적인 측면만 가지고 따져본다면 가히 인류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또 그 속에 핵무기나 화학 무기보다도 더 가공할 만한 잠재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 중대한 윤리문제에 지속적으로 부딪쳐 왔다. 생명공학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윤리문제는,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유전공학적인 조작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을 발전시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는 인간이 단순히 기술이나 유용성에 연관된 계산에 의해 삶을 영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개량된’ 인간을 생산하려는 시도는 ‘죄의 지배’에 놓여 있는 인간의 행위로 해석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교의 윤리는 과학과 기술이 오로지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인간에게 봉사할 때만 그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생명공학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고양시키면서 유용한 성과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생명공학의 목표설정은 일반적인 인간성의 획득이라는 목적을 가진,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치유로 보아야 한다.
그 외에도 삶의 질의 증가와 개선, 그리고 질병의 치료와 생명의 보호도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목표 설정에 의하여 그 결과들에 대하여서도 역시 숙고해야 한다.<끝>
1) 황상익, 〈생명체 복제와 생명윤리〉, 《기독교사상》제463호(1997. 7), p.59.
2) 교황청생명학술원, 〈인간복제에 관한 성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제9호(1999), p.281. 3) 위의 책, p.282. 4) 앞의 책, p.279. 5) 앞의 책, p.280.
구 경 국
신부. 오스트리아 인스브룩 대학교 졸업. 신학박사(윤리신학 전공). 현재 부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윤리신학). 논문으로 〈그리스도교 환경 윤리〉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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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10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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